전설의 911, 포르쉐 964

누구에게는 옛날 차, 누구에게는 꿈이다.



무조건 새차가 좋을까? 메커니즘적으로 따지자면 그렇다. 원가 절감을 하더라도 차곡차곡 쌓인 데이터로 이전 보다 더 완성도를 끌어올릴 수 있다. 허나 우리는 감성이 풍부한 인간이 아니던가. 과거에 돈이 없어서, 혹은 어려서 타지 못했던 당시의 드림카를 마음 속에 품고 있을 것이다.

나 또한 그러하다. 어린 시절 잡지에서만 보던 차, 영화에서 봤던 차, 그리고 우연히 길거리에서 본 도련님이 몰던 차 등. 이런 차를 타고 싶다. 당시 부자들의 기분을 체험할 수 있는 방법이다. 이 차들은 어디에 있을까? 지금은 중고차 시장이나 누군가의 차고에 박혀있다.

이제 나이도 먹을 만큼 먹었고 통장 잔고도 부끄럽지 않게 되었다. 꿈꾸던 모델을 바로 구입해서 탈 수 있을까? 당신 얼굴의 주름살이 깊어진 만큼 그 차도 늙었다. 태어나서 적게는 강산이 한 번 많게는 세 번 이상 바뀌었다. 대대적인 공사를 들어가야만 공도에서 끌 수 있다.

물론 컬렉터 차고에서만 보관되어 관리 상태가 끝장나는 경우도 있지만 그러한 매물은 우리가 구입하기가 힘들다. 이미 그 부자의 친구 중 한 부자가 이미 사버렸으니까. 클래식카 동호회나 해외 중고차 사이트를 밤새 뒤져야 건질 수 있을까 말까 한다.

구입을 했다고 가정하자. 여기에서부터는 억 소리 나게 돈이 나간다. 복원의 시작이다. 복원은 순정 부품만으로 하는 경우도 있고 애프터마켓 파츠를 섞어가면서 커스터마이즈하는 경우, 이 두 가지로 나뉜다. 클래식카 마니아들은 전자를 선호하고 엄지를 하늘 높이 치켜들어준다.

복원이라고 불리기는 어려운 경우도 있다. 아예 당시 디자인만 가지고 오고 모든 파츠를 최신의 것으로 제작하기도 한다. 물론 확실한 구매자들이 확보되었기에 가능하다.

이렇게 상상만으로 할 수 있을 것 같은 일을 저지른 브랜드를 소개한다. 독일의 루프(Ruf), 미국의 싱어(Singer)다. 두 브랜드 모두 포르쉐 911을 가지고 꿈을 현실로 만들어준다. 그 중에서도 964 모델을 가지고….

하필 수많은 차 중에서 911, 그 중에서 964일까? 포르쉐 역사상 가장 아름다운 모델이고 가장 911스러운 모델이기 때문이다. 이전 세대인 930과 다음 세대 933과 비교하더라도 미적지수는 압도적이다. 잘 달리는 개구리를 테마로 정말 잘 빚었다.

안 예쁜 구석이 없지만 최고의 매력을 뽑자면 단연 헤드램프다. 지금의 911들은 에어로다이내믹 효율 때문에 헤드램프의 경사는 낮게 가져간다. 964의 것은 바짝 서있다. 이게 마약이다. 이 레전드 964는 1989년부터 1993년까지 생산했으며 보디 타입은 쿠페, 타르가, 컨버터블로 구성되었다. 현 911의 라인업과 같다.

파워트레인은 수평대향 6기통 엔진과 ZF에서 만든 4단 자동변속기와 5단 수동변속기의 조합이다. 배기량은 3.3ℓ와 3.6ℓ가 있었고 터보 모델에만 터빈을 달았다.

가장 파워풀한 모델은 3.6 터보다. 최고출력 385마력, 최대토크 53.0kg·m의 힘을 지녔는데 컨디션만 좋다면 지금도 어디서 맞고 다닐 스펙이 아니다.

사실 최고출력과 최대토크는 상관없다. 964는 공랭식이다. 다음 세대인 993까지 사용했다. 이 냉각방식 때문에 아주 건조한 엔진음이 특징이다.

엔진 위치도 지금보다 훨씬 리어 액슬 뒤에 자리하고 있어 운전하기가 까다로웠다. 돈도 많고 운전도 잘 하는 이에게만 허락되었다. 이러한 전설이 어떻게 현대적으로 해석되었는지 함께 보자.


SINGER



브랜드명이 가수다. 실제로 설립자가 영국 출신 가수 롭 디킨슨(Rob Dickinson)이다. 자신도 가수고 수평대향 엔진 사운드가 음악처럼 들린다 해서 지었다고 한다. 싱어는 정말 멋이 무엇인지를 잘 알고 있는 회사다. 부품 하나하나를 예술로 만든다.

원래 부품보다 더 클래식한 맛을 살려 제작하기에 원래 디자인을 모르는 이는 순정이라고 착각을 할 정도다. 예쁘게만 만지는 줄 알았더니 퍼포먼스까지 환상적으로 다듬었다. DLS의 모델은 500마력의 파워를 가지고 있다. F1에서 유명한 윌리엄스팀과 협업하여 제작한 엔진을 품었기 때문이다.

놀라운 점은 과급기를 사용한 것이 아닌 6기통 수평대향 엔진으로 9000rpm까지 돌려 힘을 생산하기 때문이다. 무게도 1톤이 채 되질 않아 세계 최고의 펀카가 아닐까?


RUF



포르쉐를 이야기 할 때 루프를 빼놓을 수 없다. 포르쉐 튜닝 회사로 시작했지만 이제는 완성차 브랜드로 등록되어 있다. 포르쉐의 성능을 당대 최고 수준을 넘겨 버리는 것으로 유명하다. 964 이야기 중이니 2017에 출시한 CTR을 꺼내왔다.

외관은 깔끔하게 관리된 964처럼 보인다. 허나 모든 파츠들이 새로 제작되었다. 기존의 디자인을 벗어나지 않는 범위 내에서…. 골격부터 다르다. 카본 터브 섀시를 사용했다. 때문에 무게가 1197kg 밖에 되질 않는다. 서스펜션도 푸시로드 타입이다.

겉만 964이지 하드웨어 구성이 현시대 하이퍼카와 같다. 3.6ℓ 수평대향 6기통 트윈터보 엔진은 6단 수동변속기와 맞물려 710마력을 도로에 쏟는다. 정지상태에서 시속 100km까지 도달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단 3.5초, 최고시속은 360km다.


RWB



복원도 아니고 그렇다고 새로 제작하는 것도 아닌 그냥 일본 튜너다. 이 기획에 RWB를 넣은 것은 확고한 스타일 때문이다. 귀엽기만 한 964를 터프가이로 변신시킨다. RWB는 RAUH-WELT- BEGRIFF의 독일어 약자다. 독일어로 난폭한 세계의 개념이란 뜻이다. 독일어 전공자가 알려준 그대로를 썼는데 비문법적이라 한다.

여하튼 과격한 보디 키트를 보면 저 브랜드명에 고개를 끄덕거릴 것이다.휠하우스를 도려내고 한 뼘이 넘는 와이디 보디 키트를 쿨하게 장착한다. 리벳은 노골적으로 놔둔다. 이게 RWB의 매력이다. 유튜브에 보면 말보로 레드 하나 물고 거침없이 차체를 그라인더로 자르는 상남자를 볼 수 있다.

RWB의 대표 아키라 나카이(Akira Nakai)다. 전 세계를 돌며 자신이 제작한 파츠를 직접 장착해주고 있다. FRP 재질 특성상 단차가 맞지 않아 본인이 직접 나서야 한다는 소문이 돌고 있긴 하다.

글 | 안진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