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줌 인 NBA] 스티브 내쉬와 제이슨 키드, 세기를 수놓은 라이벌리!

양준민 2019. 8. 17. 06: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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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프볼=양준민 기자] 라이벌(rival), 같은 목적을 가졌거나 같은 분야에서 일하면서 서로를 앞서려고 겨루는 맞수를 뜻하는 말이다. 

오늘 칼럼을 통해 소개하려는 선수들도 현역 시절 라이벌 관계를 형성해 많은 주목을 받았다. 바로 스티브 내쉬와 제이슨 키드가 그 주인공이다. 각각 1994년(키드)과 1996년(내쉬) 신인드래프트를 통해 리그에 입성한 두 선수는 NBA를 대표하는 포인트가드로 성장했다. 이들은 정규리그에서만 총 34번의 맞대결을 가지는 등 최고의 포인트가드 자리를 두고 경쟁했다. 2006년 12월 8일(이하 한국시간) 42득점(내쉬)과 38득점(키드)을 올리며 화력 대결을 펼친 두 사람의 맞대결은 지금도 많은 이들에게 회자가 될 정도로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특히, 키드와 내쉬 두 사람은 댈러스와 피닉스에서 선수 생활을 하며 구단 역사에 길이 남을 족적을 남겼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34번의 대결에선 키드가 19승 15패로 앞섰다)

먼저 1994 NBA 신인드래프트 1라운드 전체 2순위로 댈러스에 입단한 제이슨 키드는 데뷔 첫 3시즌을 이곳에서 보내며 적응기를 가졌다. 키드는 1995년 신인왕을 차지하는 등 일찍부터 리그를 대표하는 차세대 스타로 많은 주목을 받았다. 이후 피닉스를 거치며 정규리그 어시스트 1위에 오르는 등 기량이 꽃피기 시작한 키드는 2001년부터 2008년까지 뉴저지의 야전사령관으로 활약해 뉴저지를 동부의 강호로 만들었다. 2008년 2월 트레이드 데드라인을 앞두고 뉴저지에서 댈러스로 둥지를 옮긴 키드는 2011 파이널에서 우승의 기쁨을 누리는 등 선수 생활의 황혼기를 불태웠다. 서른 중반의 나이가 됐지만 키드는 안정적인 경기운영과 패스 공급과 함께 라커룸에서 탁월한 리더십을 발휘해 호평을 받는 등 유종의 미를 거둘 수가 있었다.

그러다 보니 댈러스에 대한 키드의 애정도 남다르다. 공식적인 키드의 커리어 마지막 팀 뉴욕 닉스다. 하지만 키드는 2018 명예의 전당 입성에 대한 소감을 밝히는 자리에서 “아이러니하게도 나는 댈러스에서 커리어를 시작했고, 끝도 댈러스였다. 물론 나는 2012-2013시즌 뉴욕에서 뛰고 난 후 은퇴를 선언했다. 하지만 실질적인 내 커리어는 뉴욕이 아닌 댈러스에서 끝났다고 생각한다. 그 이유인 즉, 댈러스에서 뛰며 많은 것을 배웠기 때문이다. 댈러스는 데뷔 시즌 나에게 성장할 수 있는 기회를 준 팀이다. 마찬가지 2008년 댈러스로 돌아왔을 때는 리더의 자세가 무엇인지 가르쳐줬다. 릭 칼라일 감독의 가르침은 지도자를 하는 내게 매우 값진 경험이었다. 무엇보다 댈러스에선 생애 첫 우승의 기쁨을 맛봤다”는 말을 전한 것으로 알려졌다.



반면 1996 NBA 신인드래프트 1라운드 전체 15순위로 피닉스에 입단한 내쉬는 데뷔 시즌 평균 10.5분 출전에 그치는 등 그저 그런 선수였다. USA 투데이에 따르면 1996년 피닉스가 내쉬를 지명했을 당시, 피닉스 팬들 모두 당황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는 후문. 산타 클라라 대학 출신의 내쉬는 대학 시절 발군의 기량을 뽐냈지만 팀이 약체에 속하다 보니 사람들에게 본인의 기량을 어필할 기회가 많이 없었다. 그런 내쉬의 기량이 꽃피기 시작한 곳이 바로 댈러스였다. 피닉스에선 키드의 백업 포인트가드 역할을 맡았던 내쉬는 1998년 여름 트레이드를 통해 댈러스로 둥지를 옮겼다. 돈 넬슨 감독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은 내쉬는 더크 노비츠키-마이클 핀리와 함께 삼각 편대를 형성, 댈러스를 서부 컨퍼런스의 강호로 이끌며 리그를 대표하는 포인트가드로 거듭났다.

하지만 30살의 노장인 내쉬에게 팀의 미래를 맡기는 것보다는 좀 더 어린 더크 노비츠키를 중심으로 팀을 재편하는 것이 옳다고 판단한 마크 큐반 구단주는 내쉬에게 장기계약을 안겨주길 꺼렸다. 이에 2004년 여름 FA자격을 취득한 내쉬는 자신의 가치를 인정해준 피닉스와 재회했다. 내쉬는 션 메리언·아마레 스타더마이어와 함께 런앤 건 공격 농구의 지휘자로 활약, 피닉스를 서부의 강호로 만들었다. 모두가 30살이 된 내쉬를 두고, 그 기량이 떨어지는 일만 남았다고 평가했다. 그러나 내쉬는 2005년·2006년 백투백 정규리그 MVP를 수상하는 등 나이가 들면 들수록 그 기량이 무르익으면서 리그 최고의 선수로 군림했다. 다만 우승의 기쁨을 맛본 키드와 달리 컨퍼런스 파이널 무대조차 밟아보지 못한 내쉬는 2013-2014시즌 레이커스를 끝으로 18년의 커리어를 마무리했다.

두 선수와 모두 연을 맺은 마크 큐반 댈러스 구단주는 2018년 두 사람이 명예의 전당에 이름을 올린다는 소식에 “두 선수가 리그 역사에 뛰어난 업적을 남긴 선수들이라는 점은 내가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모두가 잘 알 것이다. 두 선수는 통산 어시스트 숫자가 말을 해주듯 리그 역사상 가장 뛰어난 플레이메이커다. 내쉬와 키드 모두 명예의 전당에 들어갈 자격이 충분한 선수들이다. 무엇보다 2004년 내쉬의 기량을 믿지 못하고, 그를 피닉스로 보낸 것은 내 인생 최대의 실수였다. 반면 2008년 키드를 댈러스로 부른 것은 구단주로서 할 수 있는 최고의 선택이었다. 우리는 키드와 2011년 파이널 트로피를 들어 올렸다. 그런 선수들과 인연을 맺었다는 것은 구단주로서 크나큰 영광이다”는 말을 전하기도 했다.

2018년 명예의 전당에 같이 그 이름을 올리는 등 리그 역사에 굵직한 기록을 남긴 두 선수는 사람들이 정통 포인트가드를 논할 때마다 빠지지 않고 등장하고 있다. 다만, 정통 포인트가드라는 큰 범주만 같을 뿐, 세부적으로 살펴보면 두 선수의 스타일이 확연히 다른 것도 사실이다. 이에 기자는 아래 조건들을 바탕으로 키드와 내쉬의 플레이와 커리어를 비교해보는 시간을 한 번 가져봤다.



▲신체조건과 운동능력

현역 시절 신체조건과 운동능력으로 많은 이점을 가져간 이는 키드다. 193cm-95kg의 탄탄한 신체조건을 자랑했던 키드는 내쉬와 다르게 포스트업 공격이 가능하고, 리바운드 장악에도 강점을 드러냈다. 내쉬를 상대할 때도 자신보다 파워가 약하다는 점을 활용해 포스트업 공격을 시도하기도 했다. 여기에 키드는 정규리그 1,391경기에서 평균 6.3개의 리바운드를 기록, 포지션 대비 뛰어난 리바운더로 호평을 받았다. 키드가 리바운드 장악에 강점을 드러낸 건 실패한 슛의 낙하지점을 정확히 파악하는 등 신체조건에 농구 센스가 더해졌기 때문. 그 결과 키드는 통산 107개의 트리플 더블을 기록하며 이 부문 역대 4위에 이름을 올리고 있다. 공격전개의 시발점인 키드가 리바운드를 걷어가며 시간을 단축한 그의 소속팀은 빠른 템포의 공격을 펼칠 수가 있었다.

신체조건과 운동능력은 수비에서도 키드만의 무기가 됐다. 커리어 통산 9번의 올-디펜시브 팀 선정이란 기록이 말해주듯 현역 시절 키드는 리그 정상급의 퍼리미터 수비수로 평가받았다. 대인 수비가 좋은 키드는 상대 메인 볼 핸들러와 스코어러의 수비를 맡는 등 1번과 2번 포지션 수비가 모두 가능했다. 여기에 활동량까지 많아 강한 압박 수비로 상대 메인 볼 핸들러를 압박, 패스 전개를 방해했다. 상대 패스를 끊어먹는 능력도 탁월했던 키드는 통산 2,684개(평균 1.9개)의 스틸을 기록, 존 스탁턴(3,265개)에 이어 이 부문 올-타임 전체 2위를 기록 중이다. 경기의 전체적인 흐름을 읽고 수비 전술을 이해하는 능력이 뛰어난 키드는 팀 수비도 진두지휘했다.(*키드는 수비 효율성을 나타내는 디펜시브 레이팅(DRtg) 102를 기록했다)    

반대로 신체조건과 운동능력이 떨어진 내쉬는 수비에서 약점을 드러냈다. 그나마 전성기 시절 경험이 쌓이며 수비가 좋아졌다는 평가를 들었지만 내쉬는 18년의 커리어 내내 약한 수비력이 발목을 잡았다. 2000년대 초반은 키드를 비롯해 데론 윌리엄스와 크리스 폴 등 신체조건이 좋은 포인트가드들이 즐비했고, 내쉬는 이들 수비에 애를 먹었다. 파워가 좋은 이들은 인사이드에서 내쉬를 공략했다. 그러나 내쉬가 이들을 못 막았다면 반대로 이들도 수비에서 내쉬를 막지 못했다. 그러다 보니 내쉬의 백코트 파트너는 수비가 좋은 선수들이 주로 맡았다. 대표적인 예가 피닉스에서 함께 했던 라자 벨로, 벨은 코비 브라이언트의 전문 수비수로 명성을 떨치는 등 준수한 수비수였다. 더불어 커리어 평균 40.6%(1.4개 성공)의 3점 성공률을 기록할 정도로, 외곽 슛까지 정확했던 벨은 리그를 대표하는 3&D 플레이어였다.



▲공격력

제이슨 키드도 커리어 평균 12.6득점(FG 40%)을 기록, +20득점도 별다른 어려움 없이 해내는 등 위협적인 공격수였다. 키드는 뉴저지에서 뛰던 2002-2003시즌 평균 18.7득점(FG 41.4%)으로 커리어 하이를 기록하기도 했다. 내쉬도 리그 최고의 슈터에게 주어지는 상징이라 할 수 있는 180클럽에 통산 4번이나 가입하는 등 정확한 슛과 다양한 득점 기술을 보여준 공격형 포인트가드였다. 피닉스 시절 내쉬를 지도했던 마이크 댄토니 감독은 내쉬의 공격력을 두고, “내쉬의 공격력은 리그 역사상 최고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특히, 내쉬의 슛은 역대급 재능이란 표현을 쓴다고 해도 전혀 어색하지 않다”는 말을 전하기도 했다.(*180클럽은 야투성공률 50%-3점 성공률 40%-자유투 성공률 90% 이상을 기록한 선수만이 가입할 수 있다)

키드와 내쉬 모두 공격에서 동료를 잘 활용했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다만 차이점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슛이었다. 두 선수 모두 스크린을 타고 공격을 마무리하는 2대2 공격에 능하다. 키드는 데뷔 후 각고의 노력 끝에 슛을 장착했지만 기본적으로 캐치 앤 슛 등을 제외하곤 1대1을 통해 슛을 던지는 것이 어렵다는 한계점을 갖고 있다. 그가 데뷔 초반 ASON으로 불린 것도 이 때문이다. 사람들은 키드에게 점프슛이 없다 하여 그의 이름에서 J를 빼고, ASON이라 불렀다. 키드는 댈러스에서 뛰던 2007-2008시즌 평균 46.1%(1.2개 성공)의 3점 성공률로 커리어 하이를 기록했다. 다만 대부분 3점 라인 정면에서 성공한 캐치 앤 슛이었다. 자유투 성공률도 데뷔 초반 평균 70%를 넘기지 못했다. 그러나 1997년 피닉스로 이적한 후 자유투까지 비약적으로 발전, 키드는 평균 78.5%(2.8개 시도)의 자유투 성공률로 커리어를 마쳤다.(*키드는 커리어 평균 34.9%(1.4개 성공)의 3점 성공률을 기록했다.

#2006-2007시즌 정규리그 스티브 내쉬 야투성공률 분포도



반면 슛이 좋은 내쉬는 피닉스 시절 아마레 스타더마이어 등 빅맨들과 하이 픽앤 롤 플레이를 즐겨 사용했다. 3점 라인 근처에서 시작되는 하이 픽앤 롤은 주로 메인 볼 핸들러가 슛으로 공격을 마무리하거나 스크리너가 픽앤 팝 공격을 시도할 때 사용하는 전술이다. 피닉스에서 내쉬가 전성기를 맞이한 건 댈러스 시절에 비해 비약적으로 늘어난 볼 소유 역시 또 하나의 이유. 커리어 하이를 기록한 2006-2007시즌 내쉬의 정규리그 야투성공률 분포도에서 알 수 있듯 댄토니 감독은 코트 전 지역에서 공격 마무리가 가능한 내쉬에게 공격 전권을 맡겼다. 댄토니 감독의 두터운 신뢰를 받은 내쉬는 피닉스에서 2대2 플레이 마스터로 거듭났다. 이와 함께 커리어 평균 42.8%(1.4개 성공)의 3점 슛 성공률을 기록한 내쉬는 슈터 역할도 맡았다.(*내쉬는 2006년 180클럽에 처음 가입해 2008년부터 2010년까지 3년 연속 180클럽에 이름을 올렸다)
 


▲볼 핸들링과 패스를 비롯한 포인트가드로서 능력

제이슨 키드와 스티브 내쉬 모두 포인트가드의 필수 덕목인 볼 핸들링과 패스능력를 포함한 포인트가드로서 능력은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선수들이다. 볼 핸들링의 경우 정확한 숫자로 표현할 수는 없지만 패스는 그 얘기가 다르다. 포인트가드의 상징이라 할 수 있는 어시스트 숫자를 살펴보면 플레이메이커로서 두 선수의 능력을 확인할 수가 있다. 키드와 내쉬는 각각 12,091개(평균 8.7개)·10.335개(평균 8.5개)의 통산 어시스트를 기록, 올-타임 2위와 3위에 이름을 올리고 있다. 전체 1위는 통산 15,806개(평균 10.5개)를 기록한 존 스탁턴이다. 스탁턴은 1984년부터 2003년까지 유타에서만 활약, 정규리그 1,504경기에서 평균 31.8분 13.1득점(FG 51.5%) 2.7리바운드 10.5어시스트를 기록했다.

세부적으로 살펴보면 키드는 동료 선수들의 득점을 극대화시키는 데 탁월한 능력을 갖고 있다. 키드의 최대 장점은 얼리 오펜스에 능하다는 점이다. 키드는 뉴저지 시절 기동력과 점프력 등 운동능력이 좋은 리차드 제퍼슨-빈스 카터와 달릴 줄 아는 빅맨 케넌 마틴과 함께 플레이하며 능력을 극대화했다. 키드는 돌파 후 코트 곳곳에 패스를 뿌리는 등 하프코트 오펜스 전개에도 능수능란했다. 코트 전체를 보는 시야가 넓은 키드는 순간적으로 상대 골밑을 파고든 선수에게 패스를 배달했다. 2대2 픽앤 롤에 이어 마틴에게로 향하는 앨리웁 패스들은 수많은 하이라이트 필름을 양산했다. 2대2 플레이 전개도 키드의 강점이다. 댈러스로 돌아온 키드는 본인의 떨어진 기동력에 대한 보완책으로 2대2 플레이를 선택, 공격을 진두지휘했다.

지금 휴스턴을 이끌고 있는 마이크 댄토니 감독의 페르소나는 제임스 하든이다. 2016년 여름 댄토니 감독이 부임한 이후 포인트가드로 변신한 하든은 2대2 픽앤 롤 플레이와 아이솔이션 플레이로 댄토니 감독이 추구하는 공격 농구를 구현하고 있다. 휴스턴은 하든을 중심으로 막강한 화력의 양궁 농구를 펼치며 최근 서부 컨퍼런스를 호령하고 있다. 부임 첫해에는 업-템포 공격 농구를 보여줬던 댄토니 감독은 이후 하든의 아이솔레이션 플레이에 기반을 둔 하프코트 오펜스로 재미를 보고 있다. 하지만 하든 이전에 앞서 댄토니 감독의 페르소나는 스티브 내쉬였다. 댄토니 감독이 2016년 휴스턴 부임과 동시에 하든의 포지션 변경을 언급, 포인트가드로서 내쉬와 하든의 게임조립 능력을 비교하는 말을 남긴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제임스 하든은 댄토니 감독이 부임한 후 3시즌 평균 9.1개의 어시스트를 기록했다) 

이미 피닉스 시절부터 2대2 픽앤 롤 플레이를 즐겨 사용한 댄토니 감독은 아마레 스타더마이어와 내쉬의 2대2 픽앤 롤 플레이를 공격 전술의 근간으로 삼았다. 댈러스 시절 트랜지션 게임에 강하다는 것을 보여준 내쉬는 피닉스의 신바람 나는 업-템포 공격 농구를 진두지휘했다. 동시에 세트 오펜스 상황에선 스타더마이어와 내쉬의 2대2 픽앤 롤 플레이를 통해 득점을 노렸다. 두 선수의 픽앤 롤 플레이는 상대 수비가 알고도 못 막는 공격으로, 2000년대 중반 피닉스를 넘어 리그를 대표하는 공격 전술로 자리를 잡았다. 왼쪽과 오른쪽 모두 양손 사용이 자유자재로 가능한 내쉬는 돌파에 이어 양쪽 윙사이드에 위치한 슈터에게 정확한 킥아웃 패스를 빼주는 등 피닉스도 빠른 템포의 농구와 외곽을 활용한 공격 농구로 팬들의 눈을 즐겁게 했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그 누구도 아닌 내쉬가 자리하고 있었다.



▲은퇴 후 이들의 삶은 어떤 모습일까?

2013년(키드)과 2015년(내쉬)를 끝으로 유니폼을 벗은 두 선수는 현역 시절의 다른 플레이 스타일처럼 은퇴 후에도 각자 다른 방식의 삶을 살아가고 있다. 농구계를 떠나지 않고 후배들을 가르친다는 공통점이 있다. 하지만 그 방식에 있어선 확연한 차이가 있다.

먼저 키드는 2013년 은퇴를 선언하기 무섭게 브루클린 네츠의 사령탑으로 부임한다. NBA와 ABA가 합병된 이후 3번째로 선수 은퇴와 동시에 감독으로 부임한 인물에 그 이름을 올린 키드 감독은 데뷔 첫해 브루클린을 동부 컨퍼런스 6번 시드(44-38)로 이끌었다. 크리스마스 전까지 9승 19패를 기록, 하위권에 머문 브루클린은 이후 케빈 가넷과 폴 피어스 등 베테랑들을 중심으로 단합을 이루며 후반기 반전을 만들어냈다. 키드도 조금씩 지도력을 발휘하며 2014년 1월 이달의 감독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플레이오프에서 7차전 가는 접전 끝에 토론토를 꺾은 브루클린은 세미파이널에서 르브론 제임스-드웨인 웨이드-크리스 보쉬의 빅3가 이끈 마이애미를 만나 패배한다.

이후 키드는 2014년 여름 밀워키 벅스의 요청에 따라 브루클린을 떠나 밀워키로 둥지를 옮긴다. 밀워키는 키드 영입을 위해 2015년과 2019년 신인드래프트 2라운드 지명권을 브루클린으로 넘겼다. 밀워키의 감독이 된 키드는 젊은 선수들을 전면에 내세우는 등 대대적인 팀 재편에 들어갔다. 그 결과 밀워키는 젊은 선수들의 에너지와 키드의 지도력이 더해지며 동부 컨퍼런스 6번 시드(41-41)를 기록, 키드는 2014년 올해의 감독상 최종 투표에서 마이크 부덴홀저(ATL)와 스티브 커(GSW)의 뒤를 이어 3위에 이름을 올리는 기염을 토한다. 비록 2015-2016시즌 수비조직력이 무너지며 플레이오프 진출에는 실패했지만 야니스 아데토쿤보를 포인트가드로 기용하는 등 스파르타식 교육으로 그의 성장을 유도했다.(*위 감독들의 소속팀은 당시 시즌을 기준으로 표기했습니다)

2016-2017시즌 밀워키는 크리스 미들턴과 자바리 파커가 부상으로 연이어 선수단을 이탈, 전력 구성에 차질을 빚었다. 그러나 아데토쿤보의 성장과 키드의 지도력이 시너지효과를 내며 플레이오프 무대 복귀에 성공했다. 다만 경험 부족을 드러내며 1라운드 토론토에게 패해 시즌을 마감해야 했다. 아데토쿤보의 성장세가 이어지며 파이널 우승이란 야망을 갖기 시작한 밀워키는 2017-2018시즌 도중 키드 경질이란 강수를 꺼낸다. 밀워키가 키드의 경질 이유로 내세운 건 과도한 주전 의존도였다. 키드 경질에 아데토쿤보가 아쉬움을 드러내는 등 당시 밀워키가 내린 결정은 여러모로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이 많았다. 이후 야인으로 돌아간 키드는 사령탑 구인을 원하는 팀들의 영입 리스트에 꾸준히 이름을 올리는 등 뜨거운 인기를 과시했다. 감독으로 돌아갈 가능성이 열려 있음에도 불구하고, 키드는 2019년 여름 레이커스의 어시스턴트 코치로 현장에 복귀했다.



반면 스티브 내쉬는 어시스턴트 코치나 감독으로 일선에 나서는 것이 아닌 컨설턴트 역할을 맡아 후배 양성에 힘쓰고 있다. 2015-2016시즌 개막을 앞두고 골든 스테이트의 컨설턴트 역할을 맡은 내쉬는 지금까지 그 인연을 이어오고 있다. NBC 스포츠에 따르면 내쉬는 현재 디안젤로 러셀의 개인 지도에 나서고 있다. 내쉬는 러셀에게 포인트가드가 갖춰야 할 기술 부분의 지도와 함께 새롭게 팀을 옮긴 러셀이 골든 스테이트 문화에 잘 적응할 수 있도록 돕는 등 멘토 역할을 자처한 것으로 알려졌다. 러셀도 개인 SNS에 내쉬의 지도를 받는 장면의 사진을 올리며 만족감을 드러냈다. 마찬가지 내쉬도 러셀을 가르치는 것에 대해 “러셀을 가르친다는 건 매우 흥분되는 일이다. 그는 엄청난 재능을 가지고 있다”는 말을 전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 함께 내쉬는 조국인 캐나다 농구대표팀의 컨설턴트 역할까지 겸하고 있다. 내쉬는 현역으로 활동하던 2012년 런던올림픽 때도 농구대표팀 단장을 맡는 등 전부터 대표팀에 대한 애정을 드러내 왔다. 올해 3월에는 닉 널스 감독의 요청에 따라 대표팀에 컨설턴트로 합류했다. 널스 감독은 내쉬와 함께 대표팀 생활을 했던 로완 배럿에게도 대표팀 컨설턴트 역할을 맡긴 것으로 알려졌다. 또 내쉬는 캐나다 유소년 농구 발전에도 힘쓰고 있다. 그 예로, 내쉬는 캐나다 농구협회의 요청이 있을 때마다 행사에 참여해 유소년 선수들의 스킬 트레이너를 자처하고 있다. 지난 4월에도 파스칼 시아캄과 함께 토론토 구단과 캐나다 농구협회가 주관한 유소년 농구캠프에 명예 인사 자격으로 참석해 자리를 빛내고 스킬 트레이너까지 맡은 것으로 알려졌다. 

지금은 일선에 나서진 않지만 美 현지에선 내쉬가 언젠가는 어시스턴트 코치나 감독으로 현장에 복귀할 것이라 내다보고 있다. 내쉬는 2016년 여름 피닉스 감독직이 공석일 때 강력한 차기 사령탑 후보로 거론되는 등 감독 내쉬의 모습을 보길 원하는 사람들의 바람은 커지고 있다. 키드도 지금은 어시스턴트 코치로 보직을 옮겼지만 이는 후일 감독이 됐을 때 추진력을 얻으려는 방편일 뿐, 그가 어시스턴트 코치로 만족할 것이라 생각하는 이들은 아무도 없다. 따라서 미래에 감독 내쉬와 키드가 다시 한번 코트에서 자웅을 겨루는 일도 결코 꿈만 같은 일은 아닐 것이다.
 
*긴 글 끝까지 읽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사진-점프볼 DB, 유튜브 캡처, 나이키, NBA.com(*슛 차트)
#기록참조-NBA.com, BASKETBALL REFERENCE
  2019-08-17   양준민(yang1264@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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