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 스트랜딩 3 - 우리는 네트워크다
- 데스 스트랜딩 마지막 글입니다. 이 글은 특별한 스포일러가 없도록 쓰였습니다.
[게임의 법칙-166]
◆모든 연결은 근본적으로 물리적 연결이다
아주 오래전, 어린 시절 읽었던 뱀장어가 나오는 동화가 있었다. 아기 뱀장어는 너무 길어 머리와 꼬리가 보이지 않는 긴 엄마 뱀장어의 몸통 옆에서 살았는데, 엄마 얼굴이 보고 싶다는 이유로 긴 여행을 시작한다. 검고 기나긴 몸통을 따라 끝까지 헤엄쳐 태평양을 건넌 아기 뱀장어는 끝내 엄마 얼굴을 보지 못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왜냐하면 그 기다란 엄마 뱀장어는 사실 뱀장어가 아니라 국제전화를 이어주는 거대한 통신 케이블이었기 때문이었다.
1980년대 동화였으니 국제전화 케이블이 등장했지, 요즘이었다면 그 케이블은 아마도 해저 광케이블이었을 것이다. 우리가 지금 이렇게 인터넷으로 글을 읽을 수 있고 아마존에서 물건을 살 수 있는 배경에는 튼실하게 전 세계를 이어주는 거대한 해저 광케이블 연결망이라는 물리적 기반이 존재한다.

네트워크라는 개념은 다소 추상적이고 형이상학적으로 다가오지만, 그 본질은 대단히 물리적 기반에 기초한다. 한국으로 들어오는 저 네트워크망이 물리적으로 끊어지면 실제로 대한민국 인터넷이 순식간에 마비될 수 있다. 우리는 늘 사이버 스페이스를 가상공간이라고 부르지만 그 연결 기반은 여전히 물리적 연결에 근거한다.
◆해저케이블, 대륙횡단철도, 그리고 카이랄 네트워크
'데스 스트랜딩'이 이야기하는 연결은 정신적·정보적 연결이면서 동시에 마치 오늘날 해저케이블처럼 실제로 물리적 연결을 요구하는 네트워크다. 주인공 샘 포터는 연결이 끊어진 각 셸터와 센터를 직접 찾아가 연결하며, 구성된 네트워크로 전송이 불가능한 실물은 직접 배송해 연결한다. 이 개별의 연결 과정은 무너진 미국 동부에 있는 캐피털 시티에서 시작해 대여정을 거쳐 최종적으로는 '해변'이 존재하는 미국 서부를 향하며, 게임은 동부에서 서부까지를 이어가는 일종의 로드무비 형식과 같은 전개를 취한다.
실제로 동서 간 연결은 미국 대륙을 상정할 때 이미 연결 그 자체로 대단히 상징적인 사건으로 의미가 부여됐다. 1869년 5월 처음으로 개통된 미국 대륙횡단철도는 캘리포니아 새크라멘토에서 네브래스카 오마하까지를 잇는 2800㎞가 넘는 대연장을 자랑한다. 동부와 서부에서 서로 다른 회사가 각자 이어나가며 중부에서 서로를 연결한 이 대공사를 통해 미국은 비로소 서부를 개척이 아닌 영토의 이름으로 부를 수 있게 됐다('레드 데드 리뎀션 2'가 다루는 서부개척시대 말엽이 1899년에서 1900년임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데스 스트랜딩'은 대륙횡단철도와 같은 의미에서 흩어진 미국 대륙을 다시 이어가는 과정을 이야기 전개의 중심축으로 삼는다. 철도의 연결과 동축·광케이블의 해저 연결, 그리고 가상의 물질인 카이랄 네트워크를 통한 연결까지 이 모든 연결은 공통적으로 연결을 통해 만들어진 가상의 통합환경이 아니라 그 연결을 만드는 과정이 무척 험난하며, '데스 스트랜딩'에서 플레이어에게 주어지는 극복의 대상, 곧 난이도는 바로 이 건설의 험난함에서 온다.
◆연결의 인프라는 특정한 개인, 기업의 노력에 근거하지 않는다
게임 시작부터 끝까지 플레이어가 달려야 하는 필드에는 평탄한 이동이라는 게 저절로 주어지지 않는다. 평야도 온통 바위투성이라 오토바이도 돌부리에 걸리기 십상이고 트럭 같은 경우는 아예 바퀴가 바위에 걸리는 일도 부지기수다. 국도를 제대로 깔기 전까지 모든 배송 루트는 험난하며, 아차 해서 등에 맨 짐이라도 쏟으면 화물이 피해를 본다. 후반부에 다가가면 대폭설이 쏟아지는 산마루를 올라야 하고, 올라갈 수 있는 루트를 찾지 못하면 산 중턱에서 눈만 맞으며 빙빙 도는 경우도 속출한다.
이 연결의 험난함을 돕는 것이 바로 다른 플레이어들의 설치물들이다. 온라인을 통해 연결되는 경우 '데스 스트랜딩'은 게임 안에서 다른 플레이어들이 미리 설치해 둔 여러 시설물을 게임 안에 등장시킨다. 절묘하게 건너갈 수 없는 지형에 놓인 다리 하나, 빙 돌아갈 필요가 없게 설치한 사다리 하나가 주는 고마움은 게임 안에서 직접적인 '좋아요'를 누르는 피드백을 통해 표현되며, 이 '좋아요'는 실제 게임 레벨업에 영향을 주기도 한다.

국도와 다리, 중간중간 타임폴을 피할 수 있는 셸터와 숙소, 후반부에 이르면 높은 산을 순식간에 돌파할 수 있는 집라인 설비에 이르기까지 험난한 지형을 극복하는 다양한 연결수단은 '누군가 깔아둔', 혹은 '내가 직접 설치한' 개념으로 게임 안에서 나타난다. 자연은 근본적으로 연결에 호의적이지 않으며, 그 자연을 극복 대상으로 두고 이어져 온 것이 철도망 연결이고 해저케이블 연결이었으며 '데스 스트랜딩'의 카이랄 네트워크 연결이었다. 초창기 미국에서 철도 부설 노동에 종사했던 수많은 노동자, 해저케이블 설치와 보수를 위해 오늘도 밤낮으로 일하는 케이블 노동자, 카이랄 네트워크를 연결하기 위해 움직이는 샘 포터는 험난한 연결을 수행하며 오늘날 우리 사회의 기초 인프라를 만드는 사람이라는 측면에서 같은 선상에 선다.
베이스캠프를 토대로 한 발 한 발 앞으로 나아가는 탐험대처럼, 험난한 지형을 뚫고 도시와 도시를 연결해 나가는 과정을 통해 게임은 편리한 연결을 만들기 위해 쏟아야 했던 노력이 결코 한두 사람의 개인적 노력이 아닌, 수많은 사람 간에 상호부조로 일어나는 것임을 상기한다.
◆이윤 없는 상호부조: 인터넷 초창기의 메타포
이 험난함을 뚫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언뜻 보기엔 농담처럼 말하는 '쿠팡맨' 같은 배송업체 직원, 혹은 인터넷 설치기사와 같은 현대 노동을 상징하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데스 스트랜딩'에서 연결에의 노동은 조금 더 이상적인 설정하에 놓인다. 이들이 서로 만들어가는 협동은 그냥 협동이 아니라 상호부조다. 게임 설정은 지속적으로 '포터'라는 그 연결의 매개자들이 특정한 기업에 소속돼 있는 것이 아니라 온전히 자발적으로 움직이며 별도의 보수도 받지 않는다는 사실을 언급한다. 플랫폼 기업에 속해 이윤하에 움직이는 사람이 아니라 말 그대로 자발적인 노력을 통해 점과 점을 연결하고 있는 것이다.
딱히 별다른 개인적 이익이 없어도 자발적으로 노력을 기울여 기틀을 만드는 과정으로 게임 속 포터들이 설정된 것은 실제 인터넷상에서 자발적으로 무언가를 쌓아 나가는 네티즌의 모습을 담아냈다고 봐도 무방할 듯싶다. 요즘에 와서는 그러한 노력들이 여러 플랫폼 안에서 광고수익이나 게재료 등을 통해 개인의 보상으로 이어지고 있고 또 그 수익도 어마어마하지만, '데스 스트랜딩'이 바라보는 연결의 긍정적 측면은 그러한 네트워크 수익화가 아님이 포터라는 집단에 대한 설정을 통해 드러난다. 아무도 인정해 주지 않는 와중에 누군가가 자료를 모아 리스팅한 포스트를 작성하고, 위키피디아에 자발적으로 정보를 정리해 올리는 온라인 상호부조는 개인의 결과물에 머무르지 않고 그 자료를 딛고 나가는 다음 사람의 초석으로 기능하며 비로소 네트워크로서의 의미에 이른다.
◆우리는 네트워크다, 좋은 의미로도 나쁜 의미로도.
3부에 걸쳐 '데스 스트랜딩'이라는 게임에 대해 긴 이야기를 해 왔다. 정리하자면, 이 게임이 이야기하는 것은 연결이라는 이름이지만 조금 더 동시대적 구체성을 포함해 이야기한다면 우리가 인터넷이라고 부르는 수단을 사용하게 된 뒤에 얻게 된 거대한 연결망 안에서 벌어지는 이야기가 곧 '데스 스트랜딩' 주제가 된다. 눈에 보이지 않지만 이 네트워크는 촘촘한 해저케이블이라는 물리적 기반하에 이뤄졌고, 그 설치 과정은 매우 험난했으며, 설치 이후 구성된 네트워크의 의미는 자발적이고 상호부조적인 네티즌의 이윤 없는 협조로 이뤄졌다. 그러나 그 네트워크는 단지 우리에게 긍정적인 의미만을 제공하는 것도 아님을 우리는 게임 속에서는 '뮬'이라는 존재를 통해, 게임 밖에서는 쉼 없이 쏟아지는 가짜 정보와 트롤링, 악플과 비난으로 서로 고립돼 가는 개별 그룹들의 변화를 통해 깨닫는다.
'데스 스트랜딩'은 그 연결된 전체에 대해 좋다 나쁘다는 식으로 가치판단을 하지 않는다. 여러 메타포를 통해 게임은 '연결된 세계' 그 자체를 계속 은유하려고 시도한다. 연결하는 행위 자체도 개별 플레이어들을 고립시키기보다는 협력시킴으로써 이뤄지고, 모든 연결은 지속적인 유지보수가 없으면 시간에 따라 결국 소모되고 부식된다. 그나마 남아 있는 가치판단을 종합하자면, 오늘날 우리 세계의 연결은 모든 구성원의 자발적인 노력을 통해 건설되고 유지되는 것이며 이러한 연결은 어떤 이상적인 지고지선이라기보다는 선과 악을 함께 품는 필연의 과정이라는 정도일 것이다.
이따금씩 인용되는 한자 '사람 인(人)'의 의미에 대해 두 사람이 서로 기댄 모습이라는 해석부터 연결된 사람들이라는 의미는 시작돼 왔다. 부족과 도시를 이루고 국가를 만들어 온 연결의 과정은 한편으로는 효율을 높이고 공동의 행복을 추구하는 기폭제였지만 또 한편으로는 독과점과 전쟁을 부르는 참상이기도 했다. 과거의 연결이 걸어온 길처럼 오늘날의 연결 또한 맥락에서 다르지 않다. 자본과 이윤을 초월한 자발적 상호부조가 인터넷 위에 쌓아 가는 지식과 소통의 흐름은 타인을 몰래 비방하고 거짓된 이야기를 조작하는 일들과 함께 존재한다. 과거와 현재의 네트워크를 미래로 상상한 '데스 스트랜딩'은 카이랄 네트워크라는 소재를 통해 역으로 인류가 지금까지 걸어온 연결의 이야기를 되짚는다. 기쁨과 슬픔, 선과 악, 가능성과 좌절을 모두 포함하는 이 이야기는 그래서 한편으로 단순하다. 단절이 곧 멸종이라는 이야기는 우리가 곧 네트워크로부터 살아가고 죽어가는 공동체적 운명에 놓여 있음을 이야기한다. 우리는, 네트워크다.

- '데스 스트랜딩' 이야기를 마지막으로 '게임의 법칙'은 정식 연재를 마무리하게 됩니다. 다음주 마지막 글에서는 그간의 이야기를 정리하는 글로 인사드리겠습니다. -
[이경혁 게임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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