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춘재 "이런날이 올 줄 알았다".. 살인 14건·성범죄 30여건 실토

수원/권상은 기자 2019. 10. 3. 0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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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NA 증거 나왔다니 할 수 없네요" 다른 살인 5건 등 추가로 자백
지도에 장소 표시하며 진술도.. 프로파일러 '친밀감 기법' 통한 듯
경찰, 진위 여부 검증 나서.. 우월감 보이려 허세 부렸을 가능성도

화성 연쇄살인 사건의 용의자 이춘재(56)가 자신이 범인이라며 약 30년이 경과한 살인·성폭행 범죄까지 추가로 자백하자 경찰이 진위 검증에 나섰다. 이춘재는 화성 사건 가운데 증거물에서 일치하는 DNA가 나온 4개 사건은 물론 아직 확증이 없는 나머지 5건도 저질렀다고 실토했다. 특히 화성 사건이 벌어졌던 당시에 8년 동안 살인 5건을 더 저질렀고, 성폭행·성폭행 미수도 30여건에 이른다고 자백했다. 그는 부산교도소에서 대면 조사를 한 수사팀에 "언젠가는 이런 날이 올 줄 알았다. DNA 증거가 나왔다니 할 수 없네요"라며 범행을 털어놓았다고 경찰은 전했다.

경기남부경찰청 수사본부는 2일 "(이춘재가) 현재까지 14건의 살인 및 30여건의 성폭행·성폭행 미수 범행을 자백했다"고 밝혔다. 이춘재의 자백에 따르면 그는 화성 사건 9건에다 화성·수원·청주 지역에서 5건의 살인을 더 저질렀다. 1994년 청주 처제 살인 사건까지 포함하면 8년간 적어도 15명을 살해한 것이다.

경찰에 따르면 부산교도소에서 지난달 18일부터 접견 조사를 받아온 이춘재는 초기에는 자신의 DNA가 검출된 사건에 대해서도 연관성을 부인했다. 그러나 지난주부터 심경의 변화를 일으켜 화성 사건은 물론 경찰이 지목하지 않은 범행도 자백하기 시작했다. 경찰은 화성 5·7·9차 사건에서 일치하는 DNA가 나왔다는 증거를 들이대며 그를 압박했다. 경기남부경찰청 반기수 2부장은 "프로파일러들과 라포르(rapport·친밀감, 신뢰)가 형성된 상태에서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의 증거물 감정 결과를 제시한 것이 자백의 계기라고 판단하고 있다"고 말했다.

'라포르'는 프로파일러들이 주로 강력사건 용의자를 수사할 때 쓰는 기법이다. 처음부터 혐의를 추궁하는 대신 다양한 화제로 대화를 나누며 심리적으로 서로 유대감을 갖도록 한다. 이 같은 과정을 거쳐 라포르가 형성되면 본격 조사에 들어가게 된다. 이수정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는 "이춘재는 성적 일탈이 비상식적인 사람으로, 지속적 관계 형성을 통해 이춘재가 가진 결핍과 마음 속의 벽을 프로파일러 팀이 허물어뜨렸을 것"이라고 말했다.

경찰에 따르면 이춘재가 화성 사건 외에 추가로 저질렀다고 자백한 살인 사건 5건은 모두 그의 주거지 주변에서 발생했다. 화성·수원이 3건, 청주가 2건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는 화성군 태안읍 진안리 토박이로 일대 지리를 꿰뚫고 있었다. 수원은 고등학교를 다닌 곳이며, 청주는 결혼해 이주한 곳이다. 이춘재는 최근 경찰의 대면 조사에서도 살인을 포함해 일부 범행은 지도에 장소까지 표시하며 구체적으로 진술했다고 한다.

이춘재의 자백이 사실이라면 그는 군에서 제대한 1986년 1월부터 처제 살인 사건으로 검거된 1994년 1월까지 8년 동안 50건에 가까운 범죄 행각을 벌였다. 화성 사건(1986년 9월~1991년 4월) 발생 직전인 1986년 2~7월 화성군 태안읍 일대 연쇄 성폭행 사건(7건)은 물론 1987년 12월과 1989년 7월 수원 여고생 성폭행·살해 사건도 이춘재의 범행으로 부각되고 있다. 이춘재는 1989년 9월에는 수원의 가정집에 흉기를 들고 침입했다 검거돼 7개월 동안 구속되기도 했다. 이 기간에 화성 사건은 발생하지 않았다.

이춘재는 1991년 결혼해 처가가 있는 충북 청주로 거처를 옮겼다. 그가 청주로 이사하자 화성 사건은 끝났다. 그러나 1992년 4월 청주의 고속도로 확장공사 현장에서 양손이 스타킹으로 묶여 암매장당한 20대 여자 시신이 발견됐다. 청주시 봉명동에선 30대 술집 여종업원이 식당 주차장에서 살해된 채 발견됐다. 6월에는 청주시 복대동에서 20대 가정주부 피살 사건도 발생했다. 이들 사건 모두 범인이 검거되지 않고 미제로 남아 있다.

경찰은 이춘재의 자백에도 불구하고 "자백 내용이 초기 단계"라며 신중한 태도를 유지하고 있다. 경찰 관계자는 "오래된 일이고 기억에 의존해 진술하다 보니 구체적 사건에 대한 기억이 단편적이거나 사건에 따라 범행 일시·장소·행위에 대해 편차가 있다"고 말했다. 또 당시 수사 기록과 증거, 이춘재의 행적과 피해자·목격자 등 관련자 조사 등을 통해 자백한 개별 사건의 진위 여부를 계속 확인 중이라고 밝혔다.

이 같은 입장은 당시 미제 사건의 목록을 따로 제시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이춘재가 스스로 털어놓아 오히려 신빙성이 의심된다는 판단 때문이다. 일부에서는 모범수로 생활하던 그가 가석방이 무산됐다고 판단해 자포자기 상태에서 진술했다고 주장했으나 사실이 아닌 것으로 밝혀졌다. 법무부는 2일 "성폭력 사범인 이춘재는 가석방이나 특별사면 대상에서 제외된다"고 밝혔다. 그가 우월감에서 허세를 부렸을 가능성도 제기된다. 순천향대 경찰행정학과 오윤성 교수는 "경찰이 공소시효가 지난 연쇄 성폭행 사건까지 파악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심리적으로 위축된 것으로 보인다"며 "자백을 했다고 하나 본인도 헛갈리고 나중에 번복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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