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살며] 희로애락 나누는 한국인의 情

황온중 2019. 7. 31. 2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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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 수많은 외국인 며느리 중 한 사람의 네팔 며느리로 한국에 온 지 7년이 돼 간다.

나도 한국인 남자와 결혼해 한국 땅을 밟은 첫날이 나의 생일이라니 적지않게 놀랐다.

우연이었지만 나는 '한국에 온 첫날이 나의 생일이듯 정말 새로 태어난 것으로 생각하고, 새로운 마음으로 시작하자'고 다짐했다.

나는 한국 사람들의 따뜻한 정(情)이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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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 수많은 외국인 며느리 중 한 사람의 네팔 며느리로 한국에 온 지 7년이 돼 간다. 한동안 수원에 살다가 지금은 주소지는 수원에 두고, 대전역 앞에서 작은 네팔·인도식당을 하며 지내고 있다.

내가 인천공항에 첫발을 내디딘 그날은 2012년 9월 1일이다. 오전 7시 한국 비행기에서 내려 밖으로 나온 나는 남편의 발자국을 따라 걷기 시작했다. 하지만 내 마음 한쪽엔 네팔의 가족, 친지, 친구를 두고 새로운 곳을 찾은 두려움, 그리고 설렘이 함께했다.
먼주 구릉 네팔 한국문화센터대표
공항에는 남편의 동생과 시누이 가족이 마중 나와 나를 환영해 주었다. 낯선 한국 땅, 조금은 어색해하는 내게 시아주버니가 ‘오느라고 고생 많았다’며 건네 준 옥수수 음료의 맛은 정말 달콤했다. 이어 남편은 다른 가족이 도착하기 전 그 틈을 타 항공사 마일리지카드를 만들자고 했다. 그래서 마일리지카드를 만들려고 여권을 꺼내 서류를 작성하는데 남편이 깜짝 놀라는 것이었다. 신기하게도 도착한 당일이 내 생일과 날짜가 같았기 때문이었다. 나도 한국인 남자와 결혼해 한국 땅을 밟은 첫날이 나의 생일이라니 적지않게 놀랐다. 네팔에서는 나이가 들면 생일을 특별하게 여기지 않고 지나친다. 잠시 침묵하던 남편은 오늘을 한국에서 다시 태어난 날로 생각하자고 했다. 나도 흔쾌히 동의했다. 매우 즐겁고 행복한 순간이었다.

우연이었지만 나는 ‘한국에 온 첫날이 나의 생일이듯 정말 새로 태어난 것으로 생각하고, 새로운 마음으로 시작하자’고 다짐했다. 나는 남편의 나라인 한국에 오기 위해 수많은 산과 바다를 새처럼 날며 날아왔다. 언어와 문화가 다른 낯선 사회로 온 것이다. 이렇게 나의 한국 생활은 시작됐다.

그날 저녁, 공항 근처 김포에 사는 시누이 집에서는 나를 위해 생일케이크가 준비된 파티가 있었다. 네팔에서는 어린아이의 생일에나 케이크를 구경할 수 있다. 대부분 어른의 경우 생일을 맞으면 가까운 사원에 들러 가족과 자신의 건강을 기원하는 것이 보통이다. 이날 나는 미역국을 처음 맛보았다. 남편은 “한국에서 미역국은 ‘태어난 날’을 상징한다”면서 “아이를 낳은 산모가 가장 먼저 먹는 음식이 바로 미역국이며, 해마다 생일에 먹는 음식 또한 미역국이기 때문”이라고 한국의 미역국 풍습에 대해 설명해 주었다.

시누이 집에 모인 남편의 가족은 모두 18명이었다. 네팔에서의 나의 가족은 아빠와 엄마, 그리고 여동생이 전부여서 가끔 쓸쓸했다. 그런데 이제 대가족의 일원이 된 것이다. 너무 기뻤다. 문제는 많은 가족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데 한국말이 서툴러서 안타까웠다. 그래서 이야기하고 싶을 때마다 마음속으로 빨리 한국말을 배워야 겠다고 다짐했다.
식사를 마치고 과일을 먹고 나니 새벽 1시. 그런데 가족들은 헤어지지 않고 이어서 술을 마시기 시작했다. 나는 다소 놀라워 남편의 얼굴을 빤히 쳐다보았다. 그랬더니 남편이 한국에서는 가족이 아니더라도 기쁘거나 슬픈 일이 있을 땐 술을 한잔하며 희로애락(喜怒哀樂)을 나눈다고 애기해 주었다. 나는 한국 사람들의 따뜻한 정(情)이 느껴졌다. 그리고 참으로 고마운 사람들이란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나의 한국에서의 첫날은 한국 생활에 대한 두려움과 기대감이 교차하며 저물고 있었다.
 
먼주 구릉 네팔 한국문화센터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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