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취재]5,000km 미만 '민트'급 60%, 푸조·시트로엥 인증중고차

국내 최대 중고차 매매단지, 장안평



자동차가 나오기 전 인류의 주요 이동수단은 말이었다. 둘의 인연은 지금껏 이어진다. 자동차의 출력 단위인 ‘마력(馬力)’이 대표적이다. ‘스테이션왜건’ ‘슈팅 브레이크’ ‘쿠페’ 등 자동차 장르나 맞춤제작업체를 의미하는 ‘카로체리아’ 등의 용어도 마차에 뿌리를 뒀다. 포르쉐와 메르세데스-벤츠의 고향, ‘슈투트가르트(Stuttgart)’는 ‘종마 사육장’이란 뜻이다. 

말과 자동차, 둘과 인연 깊은 지역이 국내에도 있다. 중고차 시장의 대명사 서울 장안평(長安坪)으로, 조선 시대 군마를 키우던 방목장이자 기마훈련장이었다. <한국지명유래집>에 따르면, 서울 성동구 송정동과 동대문구 답십리동 사이에 있던 평야다. 중랑천(과거 한천)을 끼고 발달한 평야라는 의미로, 장한벌 또는 현재 지하철역 이름인 장한평으로도 불렀다. 

1979년 11월, 서울 변두리 미나리 밭을 갈아엎고 3층 4개동 규모의 건물이 들어섰다. 장안평 중고차매매단지의 시작이었다. 1983년 6월엔 4개동으로 구성한 부품상가 단지까지 개장하면서 국내 최대 자동차 타운으로 거듭났다. 움트기 시작한 이후 40년이 흐르다 보니 낙후된 이미지도 짙다. 하지만 중고차 시장에서 장안평의 존재감은 여전히 꼿꼿하다. 

현재 장안평에는 중고차 매매와 부품, 정비 등을 아우른 1만8,000여 개 업체, 5,400여 명이 모여 있다. 최근엔 수입차 브랜드가 앞 다퉈 인증중고차 전시장을 세우고 있다. 수입차 중고차 수요가 늘어나고 있는 까닭이다. 2019년 5월, 공식 홈페이지를 개편하고 본격적으로 인증중고차 사업에 나선 푸조·시트로엥·DS 수입·판매원 한불모터스도 그 중 하나다. 

이윤을 남기지 않고 파는 중고차?



자동차 잡지사에서 중고차 담당은 대개 ‘초짜’가 맡는다. 발품 팔아야 할 취재가 많아서다. 나 역시 그랬다. 장안평 중고차 매매단지는 신입 때 첫 출입처 중 하나였다. 장안평을 취재로는 20년 만에 다시 찾았는데, 깜짝 놀랐다. 시간이 멈춘 공간처럼 풍경이 크게 다르지 않아서다. 다만 서울 내 대형 중고차 매매단지로 수요가 분산되면서 예전보단 한산했다. 

한불모터스의 인증중고차 전시장은 지하철 5호선 장한평역 6번 출구에서 도보로 5분 거리인 카서울닷컴 건물 9층에 자리한다. 방문해 보니 푸조와 시트로엥, DS의 인증중고차가 천장에 매단 브랜드별 광고판 아래 줄을 맞춰 서 있었다. 차령이 어리고 컨디션이 좋은 차 위주로 매입하다 보니, 언뜻 봐선 신차 전시장이라고 해도 믿을 만큼 상큼한 상태였다. 



현재 한불모터스는 서울 장안평 대로변에 복합비즈니스센터를 짓는 중이다. 2020년 완공하면 인증중고차 사업부도 새 건물로 옮길 예정이다. 그러면 신차와 중고차, 정비와 수리를 한 자리에서 ‘원스톱’으로 해결할 수 있다. 이날 카서울닷컴 9층의 전시 공간 옆 사무실에서 한불모터스 중고사업부를 이끌고 있는 김종국 부장과 이야기를 나눴다. 

보통 중고차는 딜러가 도매가에 매입한 뒤 소위 때 빼고 광 내는 ‘상품화’ 과정을 거쳐 소매가로 판매한다. 여기서 도매와 소매가 사이의 차이가 이윤이다. 반면 한불모터스 인증중고차 사업은 이 과정을 통해 수익을 추구하지 않는다. 심지어 그는 “마진을 아예 남기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너무 빤히 속 보이는 거짓말 아닌가싶어 자초지종을 들어봤다. 

주행거리 5,000㎞ 미만 매물이 60%



“2018년 기준으로 푸조와 시트로엥, DS의 국내 누적판매가 4만 대를 넘어서면서 보다 체계적인 관리가 필요해졌어요. 엄격한 기준을 통과한 양질의 매물을 중고차 시장에 공급해 고객 만족도를 높이고, 중고차 가격 방어를 통해 궁극엔 신차 구입하는 고객들에게도 혜택이 돌아갈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사업을 시작하게 되었지요.” 김종국 부장의 말이다. 

현재 푸조·시트로엥 인증 중고사업부는 5명의 직원이 매달 30대씩 연간 360대 정도 판매 중이다. 지금 쓰는 공간엔 약 60여 대를 전시하고 있고, 서울 성수동 한불모터스 본사 주차장의 20여 대를 포함해 총 80여 대의 물량을 확보하고 있다. 장안평엔 다른 수입차 브랜드의 인증중고차 전시장도 꽤 자리한다. 그런데 한불모터스와 결정적 차이가 있다. 



김 부장은 “수입차 업체의 인증중고차 사업부는 신차 산 고객이 기존에 타던 다른 브랜드 차를 대신 팔아주는 업무가 주를 이뤄요. 반면 푸조·시트로엥의 인증중고사업부는 회사차만 매각하죠.” 문득 ‘회사차’의 정체가 궁금해졌다. 그는 “회사 임원들이 사용한 업무용 차량과 제주도에서 사용한 렌터카, 판매목표 달성을 위해 미리 등록한 차량 등”이라고 설명한다. 

푸조·시트로엥 인증중고차 매물의 60%가 주행거리 5,000㎞ 미만의 일명 ‘민트’급인 이유다. 참고로 한불모터스는 2015년부터 제주에서 직접 렌터카 사업을 벌이고 있다. 200대 규모로 컨버터블부터 해치백과 세단, 미니밴까지 다양한 장르를 넘나든다. 누적 대여 수는 1만2,000여 대. 지난해엔 제주 서귀포에 푸조·시트로엥 자동차 박물관도 개장했다. 

보증기간 연장 및 무이자 할부 혜택



이제야 모든 의혹과 궁금증이 풀렸다. 인증중고차와 렌터카, 박물관은 푸조·시트로엥·DS 브랜드 인지도를 높이고, 시승경험을 전파하며 물량회전으로 재고를 관리하기 위한 한불모터스의 ‘큰 그림’이었다. 설명을 듣고 나니 더욱 호기심이 동해 매물을 한 대씩 살폈다. 실내 비닐조차 뜯지 않은 샌드 컬러의 시트로엥 그랜드 C4 스페이스 투어러가 눈에 띄었다. 

주행거리는 18㎞로, 중고차의 탈을 쓴 신차인 셈이다. 김 부장은 “너무 주행거리가 짧으면 의심하는 경우가 많아 홈페이지에 올릴 때 오히려 살짝 부풀리기도 한다”고 귀띔했다. 이 같은 선등록 매물은 신차의 90% 정도 가격을 매긴다. 실제 판매가격을 기준으로 하기 때문에 공식 프로모션이 있을 경우 ‘새 차 같은 인증중고차’ 가격 또한 덩달아 떨어진다. 



한불모터스 인증중고차의 장점은 여러 가지다. 회사가 직접 관리해 정비이력이 투명하고, 100가지 점검을 거쳐 믿을 수 있다. 본사 파이낸스를 이용하면 1,000만 원 무이자 할부가 가능하고, 보증기간 연장 및 10㎞ 지정 소모성 부품 지원, 엔진오일 교환 쿠폰 등의 혜택도 제공한다. 중고차 시장 평균 시세보단 10% 비싸지만 선택할 가치가 충분한 셈이다.  

김 부장에게 인증중고차 사업의 목표를 물었다. “푸조·시트로엥·DS의 중고차 잔존 가치를 최대한 지켜 결국 신차 판매에 보탬이 되는 거예요. 양질의 중고차로 고객 만족도와 브랜드 이미지도 높이고요.” 이날 취재를 마치고 돌아서는데, 아까 본 그랜드 C4가 자꾸 눈에 밟혔다. 결국 며칠 뒤 가족으로 맞아들였다. <로드테스트> 영상 시승기에 나온 바로 그 차다. 

글 김기범 편집장(ceo@roadtest.kr)
사진 강동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