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나의 사랑, 기생충 [채종일의 기생충 파노라마]
[경향신문] ㆍ어색하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기생충은 앙증맞고 예쁘다
ㆍ성충의 높은 병원성에 비해 충체 모습은 오묘한 신의 조화

‘기생충을 사랑한다.’ 말도 안돼 보이지만 필자에게는 딱 맞아떨어지는 얘기다.
평생을 기생충과 함께 지내왔고, 지금도 집 식구들보다 더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고 있기 때문이다. 세계적으로 처음 발견한 것이거나 희귀한 충체일수록 더욱 애착이 가고 혹시라도 상할까 변질될까 늘 노심초사한다.

‘기생충이 예쁘다’고 표현하는 것도 어색하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흡충류(디스토마), 조충류(촌충), 원충류(원생동물)는 정말 그렇다. 길이 1㎜밖에 안되는 절묘한 신의 창조물(예를 들어 소형 흡충)을 현미경에 놓고 확대하여 들여다보고 있노라면 완전 별세계에 와 있는 느낌이다.
그 작은 몸체 안에도 오밀조밀 있을 건 다 있어서 흡반, 인두, 식도, 장, 난소, 자궁, 충란, 생식공, 고환, 음경낭, 난황소, 배설관, 배설낭 등이 두루 갖춰져 있고 각 구조물 하나하나 그 모양이 앙증맞고 예쁘다.
충체 앞쪽에 붙어 있는 구흡반(빨판)과 중간쯤에 위치하여 튀어나와 있는 복흡반은 숙주 점막에 매달리기 위한 구조물인데 점막(실험실에서는 유리 접시 바닥)에 붙어 있으려 안간힘을 쓰고 있는 모습을 보면 애처롭기까지 하다.
충체 표면에는 주변 물질을 감지하는 작고 동그란 감각유두가 일정한 규칙(배열, 개수 등에서)으로 배열되어 있는데 전자현미경으로 보면 그 배열과 형태가 무척 아름답다. 달걀처럼 생긴 충란도 전자현미경으로 보면 예쁜 창조물이며 종별로 조금씩 다른 독특한 형태를 보이는 것은 오묘한 신의 조화임이 분명하다.
조충류 성충도 살아 움직일 땐 징그럽다. 그러나 고정한 후에 편절을 잘라 표본을 만들어보면 편절 하나하나는 너무나도 예쁜 모습이다. 충란이 가득 들어 있는 동해열두조충의 자궁은 활짝 핀 장미꽃 모양이며 난황소는 나무 아래 낙엽이 두껍게 쌓인 모습이다. 유구조충의 머리 부분에는 흡반 4개가 배열되어 있고 한가운데에 예쁜 갈고리 27~28개가 밀집해 있는데 이 부위의 모습은 다분히 예술적이다. 하지만 높은 병원성에 비해 충체의 모습이 이렇게 아름다운 점은 아이로니컬하기도 하다.
악성 말라리아의 병원체인 열대열원충도 그 형태가 아름답다. 발육단계 중 하나로 반지형(ring form)이 있는데 예쁜 반지 위에 커다란 다이아몬드가 박힌 모습을 하고 있으며, 생식모세포(gametocyte)는 바나나 모양으로 예쁘고, 분열체(schizont)는 국화꽃 모양으로 역시 조화로운 모습을 하고 있다.
필자의 기생충 사랑에는 기생충과 관련된 다른 요소들도 포함된다. 기생충과 숙주를 연구하는 기생충학을 사랑하며, 기생충학을 연구하는 사람들을 사랑한다.
필자가 오랜 기간 편집인으로 활동해 온 학술지(Korean Journal of Parasitology)를 사랑하며, 기생충박물관(한국건강관리협회 소속)에 소장된 기생충과 숙주 표본들, 기생충 관련 고서와 희귀한 문헌들, 그리고 업무를 도와주는 도우미 여러분과 직원, 연구원들을 사랑한다.
이 모두를 모아 ‘기생충 사랑’이라 표현해 보았다.
<시리즈 끝>
채종일 | 한국건강관리협회장·서울대 의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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