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덜란드 에레디비시 닮으려는 K리그, 단점도 공부하라

김태석 2015. 7. 15. 12: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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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스트 일레븐)

최근 스타 선수들이 연거푸 유출되자, K리그를 바라보는 시선에 우려가 섞이고 있다. 주변 아시아 국가의 막강한 자금력에 손쓸 새도 없이 선수를 빼앗긴다는 걱정이 파다하다. 이대로라면 셀링 리그로 전락하는 건 피할 수 없는 상황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그런데 이 상황을 부정적으로 볼 필요가 없다는 주장도 있다. 아시아 축구판 속에서 프리미어리그·분데스리가처럼 선도하는 리그가 되지 못해 아쉽긴 해도, 에레디비시·수페르리가 등 우수 선수 수출 기지로 자리매김해도 나쁘지 않다는 견해다. 실제로 우수한 유스 시스템을 바탕으로 특급 재능을 지닌 선수들을 화수분처럼 쏟아 내는 에레디비시와 수페르리가가 자리한 네덜란드와 포르투갈이 유럽의 소문난 강자로 자리매김하고 있다는 점을 감안할 때, 이 주장은 그럴듯하게 여겨진다.

하지만 너무 예전 얘기를 꺼내는 게 아닌가 싶다. 물론 두 나라가 좋은 재목들을 쏟아 내며 유럽 축구 주류 중 하나로 자리매김하고 있다는 건 참이다. 그러나 2015년 현재 이들은 내부에서 크게 흔들리고 있다는 점 역시 사실이다. 에레디비시 상황은 특히 그렇다. 유럽의 대표적 셀링 리그인 에레디비시는 지금 어떤 상황에 놓여 있는가 짚어 봤다. 에레디비시처럼 전 유럽을 대상으로 한 특급 유망주 수출 기지를 꿈꾼다면, 이들의 어두운 부분도 빠짐없이 배워야 한다는 생각에서다.

골머리를 앓고 있는 에레디비시

"에레디비시는 장점을 잃어버린 지 오래다. 네덜란드 국가대표팀 선수들과 에레디비시 선수들의 격차가 너무 크다."

얼마 전 '오렌지 군단' 사령탑에서 물러난 거스 히딩크 전 감독의 진단이다. 히딩크 감독은 지난해 8월 네덜란드 국가대표팀 사령탑에 부임했을 때 네덜란드 축구의 최대 문제점을 묻는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언뜻 해외파와 국내파의 실력 차를 거론하는 듯한데, 이면에는 더 깊은 뜻이 숨어 있다.

과거 에레디비시는 선수들이 해외에 유출되는 상황에서도 나름의 수준을 유지했기에, 해외파와 국내파 간 실력 차가 우려할 정도로 크지 않았다. 아약스·PSV 에인트호번·페예노르트로 불리는 3강 체제의 뛰어난 유소년 시스템 덕분이었다. 스타가 떠나도 선수가 해외로 떠나도, 못잖은 유망주들이 계속해서 발굴됐다. A급으로 성장한 선수들은 프로 팀으로 승격해 해외로 진출하고, 그렇지 못한 선수들은 팀에 남거나 그보다 중·하위권 팀으로 이적해 에레디비시를 보다 풍성하게 만드는 자원으로 쓰였다. 히딩크 감독이 1990년대 중·후반 네덜란드 지휘봉을 잡았을 때만 해도 이런 선순환 속에서 에레디비시 소속 선수를 선발할 수 있었다.

그랬던 에레디비시가 최근 골치 아픈 문제에 휩싸여 있다.

첫째,그들의 최대 강점으로 널리 알려진 유소년 시스템이 무너지고 있다. 과거 네덜란드는 분명 우수한 유스 시스템으로 유명했다. 하지만 지금은 경쟁력을 잃었다는 평가가 그들 내부에서 나온다. 이유는 간단하다. 과거에는 좋은 선수를 길러 돈 많은 팀에 팔았지만, 지금은 빅 클럽이 풍부한 재정 능력을 앞세워 선수 영입뿐만 아니라 선수 육성에도 엄청난 공을 들이고 있기 때문이다. 과거에는 '황금 어장' 네덜란드를 자주 찾았을지 모르나, 지금은 자신들의 텃밭에서 우수한 재목을 기르고 있다.

여기에 해외 빅 클럽의 네덜란드 유소년 입도선매 현상이 도드라진다. 과거만 해도 네덜란드는 자국 무대에서 족적을 남긴 우수 선수가 해외로 진출했다. 만 29세라는 적잖은 나이에 바르셀로나로 이적하며 첫 해외 무대를 경험했던, 박지성의 전 동료 마르크 판 보멀이 대표적 사례다. 물론 어린 나이에도 나가는 선수가 있긴 했으나, 이때는 뛰어난 장사 수완 능력을 발휘해 그만한 보상을 받았다. 20세 특급 유망주로 주목받으며 성공이 확실시되던 단계였던 아르연 로번이 첼시로 가며 1,800만 파운드(약 321억 원)라는 거액의 이적료를 기록했던 게 좋은 예다. 최근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로 이적한 멤피스 데파이도 에레디비시를 정복하고 거액을 받고 무대로 갔으니 로번처럼 좋은 선례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지금은 그렇지 않은 경우가 더 많다. 루크 카스타이흐노스·루크 더 용·르로이 페르·이브라힘 아펠라이·옐예로 엘리아·로이스톤 드렌터·올라 욘·마르코 판 힝컬 등 수많은 유망주들이 에레디비시에서 뭔가 보여 주기도 전에 리그를 떠나는 경우가 속출하고 있다. 리그 수준은 과거보다 더 떨어질 수밖에 없고, 이들 중 기대만큼 정상급으로 성장한 이도 드물다는 점에서, 네덜란드 축구계 전체에 있어 손해가 너무 컸다.

이상하게 변질한 선수 육성 및 이적 시스템

텃밭인 탄탄한 유소년 시스템도 흔들리고 있다. 과거만 하더라도 에레디비시는 '빅 브라더'라 불리는 아약스·PSV 에인트호번·페예노르트의 구실이 매우 컸다. 선진화한 유소년 시스템을 통해 우수 선수를 길러 냈다. 이 선수 중 두각을 나타내는 선수들을 해외로, 기대에 못 미친 선수들을 하위 클럽으로 각각 이적시켰다. 해외로 보내 선수에게 기회를 줌과 동시에 막대한 수익을 올리고, 그렇지 못한 선수들에게는 뛸 수 있는 기회와 하위권 팀들이 전력 보강하는 데 힘을 불어넣었다. 하위권 팀들도 자신들이 육성한 선수의 성장 디딤돌이 되고 빅 3에서 제대로 성장하지 못한 선수들의 재기 발판 구실을 충실히 했다. 선순환 구조가 이뤄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아니다. 앞서 언급했듯 해외 빅 클럽들이 에레디비시의 우수 선수는 물론 직접적으로 어린 선수들에게 손을 뻗치기 시작했다. 자연스레 네덜란드 축구의 젖줄이던 빅 3의 유소년 시스템은 약화될 수밖에 없다. 이렇다 보니 네덜란드 빅 3는 전력 보강을 위해 하위 클럽에 눈을 돌려야 했다. 끊임없이 자양분을 쏟아 내던 에레디비시 심장이었던 이들이 이제 네덜란드 내 타 클럽 선수를 빨아들이고 있는 것이다. 그것도 과거보다 좋지 못한 환경인 유소년 시스템에서 길러진 선수를 수급한다는 점에서 상황이 나쁘다.

이 때문에 하위 클럽들은 1부리그 경기에 내보낼 선수가 없다. 그래서 네덜란드 1부리그 중·하위권 클럽의 선발 선수를 보면 10대 후반 혹은 20대 초반 선수들이 다수다. 중·하위권 팀들이 1부리그 속에서 실질적으로 과거 빅 3의 유소년팀 구실을 하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리그 전반적 수준이 떨어진다. 리그 수준이 떨어지면 좋은 유망주도 발굴하기 힘들다. 자연히 유럽 클럽 대항전서 경쟁력이 떨어지고, 리그 내 클럽 간 양극화가 극심화된다. 흥행적 면에서도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다.

네덜란드 축구계도 상황의 심각성을 인지하고 있다. 베르트 판 외스테런 네덜란드축구협회(KNVB) 사무총장은 "과거에는 유소년 육성의 노하우 차이가 작용됐을지 모르나, 지금은 충분하지 않다. 유럽 축구계 내에서 막대한 투자의 중요성이 점점 커지고 있다. 우리는 혁신해야 한다"라며 유망주 육성을 통한 선수 장사로는 축구 발전에 한계가 있다고 우려했다.

에레디비시는 K리그와 마찬가지로 거대한 자본과 보다 많은 인구를 가진 주변 국가에 둘러싸인 여건이다. 이 때문에 많이 배울 만한 리그라고 한다. 하지만 다시 그들의 현재를 살펴봐야 하지 않나 싶다. 네덜란드 축구계 전체로 보면 우수한 선수들은 분명히 많다. 하지만 에레디비시에 국한해서 볼 때, 우수 선수는 고갈 상태라 봐도 무방하다.

히딩크 감독이 에레디비시에서 뽑을 선수가 없다고 한탄한 이유다. 게다가 우수한 선수가 사라지는 이 추세로 가면, 자금적 토대가 됐던 해외 빅 클럽들의 관심도 줄어들 수밖에 없다. 과거보다 "믿고 쓰는 에레디비시산"이라는 말이 덜 나오는 현실도 이 때문이다. 선수는 유한한 자원이다. 자금줄마저 줄어들면 자칫 리그가 황폐화될 수도 있다. 에레디비시 모델을 따르려면, 이런 단점도 샅샅히 살펴 한국 실정에 맞게 보완해야 한다. 에레디비시가 하는 고민을 후발 주자인 K리그가 덩달아 떠안는 건 어리석은 짓이기 때문이다.

글=김태석 기자(ktsek77@soccerbest11.co.kr)사진=베스트 일레븐, 네덜란드 <푸트발 프리미어>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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