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하기 싫어' 병 누구나 한 번쯤은

내가 만약 <실종일기>를 읽지 않았다면 <실종일기2-알코올 병동>을 읽는 일도 없었을 거다. 그렇지만 1권을 읽지 않아도 2권을 읽는 데는 아무런 지장이 없다. 별개의 작품이라고 해도 무방할뿐더러 권말 대담에 실린 도리 미키의 말을 빌리자면 '내용도 묘사도, 솔직히 말해 <실종일기> 이상으로 대단한 작품'이다.
아즈마 히데오는 1969년 데뷔한 일본의 만화가다. 개그물과 부조리극 성향의 SF물, 에로틱한 미소녀물까지 다양한 장르를 섭렵하며 활발한 작품 활동을 펼치던 그는 1989년 11월에 갑자기 실종된다. 원고를 기다리는 편집자에게 잠깐 담배 좀 사오겠다고 말하고 집을 나선 뒤 그 길로 사라진 것이다. 도대체 왜? 그는 ''일하기 싫어' 병, 그리고 숙취 탓이었을지도 모르겠다'라고 하는데, 그렇게 따지면 실종되지 않을 사람이 없다. 솔직히 말해 한 번쯤 사라지고 싶다는 생각을 안 해본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다만 그는 정말로 사라졌을 뿐이다.
몇 번의 자살 시도 끝에 그는 노숙자가 된다. 쓰레기통을 뒤지고 술병에 남은 술을 모아 만든 칵테일을 마시며 몇 달 동안 완벽한 노숙 생활을 하던 그는 경찰의 불심검문에 걸려 집으로 돌아가지만 1992년 4월에 한 번 더 원고를 펑크 내고 달아난다. 이번에는 '머리에서 뭔가가 솟아났기 때문'이라나 뭐라나. 다시금 노숙 생활을 하던 그는 우연한 계기로 배관공 생활을 하게 되는데, 몇 달 후 회사에서 그에게 '철거 책임자'라는 직책을 맡기자 이번에는 집으로 달아난다. 그는 작품 활동을 재개하지만 공허한 마음을 달래기 위해 점점 더 술에 의존하게 된다. 그리하여 1998년, 자는 시간 외에는 계속해서 술을 마시는 연속 음주 상태가 되어 알코올 병동으로 보내진다. 여기까지가 1권의 내용이다.

2권에서는 본격적인 알코올 병동 생활이 펼쳐진다. 아즈마 히데오 본인의 투병기이자 알코올 의존증에 시달리는 다양한 군상들의 이야기라고 할까. '리얼하면 그리기도 괴롭고 어두워지니까'라며 실종의 이유를 적당히 눙치고 넘어갔던 전작과 달리 병을 이겨내려는 의지와 치료 과정을 (출판사의 광고 문구처럼) '초'리얼리즘이라고 할 만큼 세세하게 그려낸다. 주변의 알코올 의존자들에게 강제로 읽히고 싶을 정도다. 보시다시피 나는 벌써 읽었으니까.
단주회나 'AA(익명의 알코올 의존증 환자)' 같은 모임에서 발표를 할 때조차 유머를 잊지 않았다던 아즈마 히데오는 자기 자신을 비롯한 알코올 병동의 인물들과 일정한 거리를 유지한 채 우울하고 고통스러운 이야기를 담담히 들려준다. 회복할 수는 있어도 완치는 불가능한 병에 걸린 사람들의 이야기를, 회복할 수는 있어도 완치는 불가능한 다른 병에 걸린 우리들에게. 그 병의 이름은 권태와 우울 그리고 불안이다. 그는 자기가 가출을 하고 알코올 의존증에 빠지게 된 이유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진지한 사람은 되도록 00하지 않는 게 좋겠어
'자기 모방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면 한없이 위축됩니다. 특히 개그 만화는 전과 똑같은 걸 그리면 먹히지 않으니까요. 그러니까 거꾸로 매너리즘을 두려워하지 않는, '영원한 패턴'을 가진 사람은 강하죠. 그 매너리즘이 참을 수 없는 거지, 그 패턴의 개그가 좋다는 독자도 있으니까요. 하지만 항상 새로운 개그를 생각하려고 하면 점점 정신이 병듭니다. 그리면서 '아, 이거 전에 그렸는데'라는 생각이 들어요. 그렇게 되면 그릴 수 없게 되죠. 하지만 마감은 다가오니까 '아, 이젠 나도 모르겠다'는 식이 되죠. 기본적으로 너무 진지한 성격이면 궁지에 몰립니다. 저도 그런 편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제 술을 끊은 그는 미래를 그다지 생각하지 않고 전망은 되도록 가지지 않은 채 오늘 하루가 즐거우면 된다는 생각으로 살아간다고 한다. 교훈은 이렇다. 진지한 사람은 되도록 만화를 그리지 않는 게 좋다. 글도 마찬가지다. 나도 담배나 사러 가야겠다.
금정연 (서평가) / webmaste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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