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개를 훔치는 완벽한 방법'에 담긴 가족의 의미_굴레를 벗어 던지면 희망이 보인다

김나리 한화생명 은퇴연구소 수석연구원 2015. 4. 15. 10:46
음성재생 설정 이동 통신망에서 음성 재생 시 데이터 요금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글자 수 10,000자 초과 시 일부만 음성으로 제공합니다.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소셜미디어로 풀어보는 인생만사 7]

"엄마 말 안 들으면 망태 할아버지가 와서 잡아간다." 옛날에는 참 신기하게도 어느 동네나 망태 할아버지가 한 명씩은 있었다. 어깨에 커다란 망태기를 메고, 한 손에는 집게를 든 채 새까만 얼굴로 온 마을을 돌아다니는 망태 할아버지는 아이들에게는 그야말로 공포의 대상이었다. 보기만 해도 오금이 덜덜 떨리는데, 엄마 말을 듣지 않으면 날 저 집게로 집어서 망태기에 넣는다니 이 얼마나 무서운 노릇인가. 그 누구도 망태 할아버지의 목소리를 들어본 적도, 진짜 아이를 잡아가는 모습을 본 적도 없지만 '나를 잡아갈 수도 있는 존재'라는 것이 그에 대한 유일한 이해였다.

하지만 어른이 되어 생각을 해보니 참 죄송한 마음이 든다. 온종일 마을을 돌며 폐품을 주워 고물상에 팔아야 간신히 하루를 견딜 수 있던 고단한 생계를 하던 어르신이 아닌가. 귀여운 손자, 손녀뻘 아이들이 자신만 보면 혼비백산을 해 달아나니 외롭고 씁쓸한 마음에 밝은 표정은 지을래야 지을 수도 없었을 게다. 더욱 슬픈 것은 어쩌면 내가 노후에 겪을지도 모를 가난하고 고독한 미래일 수도 있다는 점이다.

- 영화 '개를 훔치는 완벽한 방법'은 책임감에 쫓겨 도망쳐서도 안 되고, 자녀에 집착하고 휘둘러서도 안 된다는 것을 보여준다.

책임감에 짓눌린 아버지家長의 굴레를 벗어 던져라

영화 '개를 훔치는 완벽한 방법'에는 관계에 실패한 현대판 망태 할아버지들이 등장한다. 우선 말 그대로 망태 할아버지처럼 고물을 모으며 노숙을 하는 대포(최민수 분)를 들여다보자.

어른들에게는 기피 대상이자 아이들에게는 두려움의 대상이던 노숙자 대포는 어린 지소(이레 분)가 엄마와 싸워 집을 나왔을 때도, 어렴풋이 개를 훔쳤다는 사실을 눈치 챈 후에도 마치 딸에게 말하듯 다정하게 지소 스스로 잘못을 뉘우치도록 이끌어주는 길잡이 역할을 한다. 하지만 자유분방하고 카리스마 넘치는 그도 결국은 보고 싶은 딸을 두고도 과거의 잘못으로 가족에게 돌아가지 못하는 애틋한 아버지였다. 그 또한 평범한 우리의 아버지들과 다를 게 없는 것이다.

우리 아버지들은 남자는 세 번 운다는 말을 귀에 딱지가 앉도록 들어왔다. 아니, 이게 말이 되는 소리인가. 태어날 때 울음을 기억할 리는 없고, 부모는 두 분이니 한날한시에 돌아가시지 않는 이상 이미 두 번은 울어야 한다. 요즘 같은 세상에 나라가 빼앗길 일도 좀처럼 없을 테니 논리적으로 말 자체가 성립되지 않는다. 게다가 첫 아이가 태어난 순간이나 막내딸의 결혼식, 이루지 못한 첫사랑의 슬픔이나 친한 친구의 죽음 등 눈물 흘릴 일이 어디 한두 번이겠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아버지들은 가장으로서의 권위가 흐트러져서는 안 된다는 책임을 강요 받아왔다.

이러한 가장의 책임감은 요즘 증가하고 있는 가족 동반 자살에서도 드러난다. 올 초 강남에 10억원대 아파트를 보유한 엘리트 가장 강모씨가 아내와 두 딸을 살해한 사건을 보면, 강씨는 자신이 자살한 후 가족이 멸시를 받을 것 같은 불안감에 먼저 살해했다고 한다. 이 사건은 가장의 과도한 책임감이 극단적으로 표출된 사례다. 아내나 자녀를 개별적인 인격체로 보지 않고 심지어 자신의 책임하에 있는 소유물로까지 생각하기 때문에 벌어진 비극이라고 할 수 있다. 최근 결혼을 기피하는 젊은 세대들에서도 이러한 책임감의 무게를 엿볼 수 있다. 여성은 결혼 후 가사와 출산, 육아로 경제활동이 어려워질 것이라는 생각에 결혼을 미룬다. 남성은 경제적인 면을 포함해 가장으로서 가정을 책임져야 한다는 중압감에서 결혼을 기피하려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이러한 사회적인 문제는 남자(아버지)에게 책임만을 강요해온 가부장적 사회의 잘못된 측면이 아닐까.

영화에서 딸이 보고 싶지만 잘못을 저질러서 돌아갈 수 없다고 고백하는 대포에게 지소는 그런 아빠라도 보고 싶어 할 테니 원래 있던 곳으로 돌아가라고 위로해준다. 딸을 그리워하는 대포와 아빠를 그리워하는 지소가 서로의 가족에게 전하는 간절한 바람이었다. 지소의 아빠 역시 가장으로서의 죄책감에 가족을 떠났지만, 사실 11살 소녀에게 아빠의 책임은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그저 내 가족, 사랑하는 아빠로서 이 시간을 함께하길 바랄 뿐이었다.

시대는 흘렀고 가족의 의미도 바뀌었다. 우리 아버지들도 이제 책임감에서 조금은 자유로워질 필요가 있다. 남녀 두 사람이 만나 한 가정을 이루는 만큼, 가정에 대한 책임은 가족 구성원 모두에게 있다. 나의 아내도 나와 동일한 시간을 가정에서 보내며 지혜를 쌓아왔다. 나의 아이도 당신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것을 보고 이해하고 있다는 점을 깨달아야 한다. 가족 구성원 모두가 동등한 위치에서 서로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인다면, 지금도 길 위를 방황하고 있는 대포와 지소는 곧 원래 있어야 할 가정으로 돌아갈 수 있을 것이다.

- 노숙자 대포(최민수 분)는 자유분방하고 카리스마 넘치지만 결국은 보고 싶은 딸을 두고도 과거의 잘못으로 가족에게 돌아가지 못하는 애틋한 아버지였다.

품 안의 자식을 잃어버린 어머니당신의 자녀가 孝子라는 믿음을 버려라

이번에는 두 번째 망태 할아버지, 레스토랑 '마르셀'의 주인인 노부인(김혜자 분)의 삶을 보자.

깐깐한 성격 탓에 등장만으로도 주위 사람들이 벌벌 떠는 노부인은 돈은 많으나 남을 믿지 못한다. 조카 수영(이천희 분)이 유일한 혈육이지만 재산에 눈이 멀어 있을 뿐, 말 못하는 애완견 '윌리'가 그녀의 유일한 벗이자 가족이다. 사실 그녀에게도 아들이 있었다. 아들은 예술을 반대하는 어머니와의 갈등 끝에 집을 나갔고, 그림을 그리다 고독한 죽음을 맞이했다. 그녀는 자신의 욕심대로 자녀의 삶에 간섭하는 독친(毒親·toxic parents)의 전형이다.

팔순이 넘은 노모가 환갑이 넘은 아들에게 차조심하라고 당부하듯이 부모 눈에 자식은 언제까지나 어린 아이일 뿐이다. 하지만 언제까지 자식을 품에 안고 있을 셈인가. 부모가 온실 속의 화초로 애지중지 키운 자식은 부모가 사라지고 나면 금세 시들게 마련이다. 앞서 언급한 서초동 세 모녀 살인사건에 대해 범인 강모씨의 부모는 한 인터뷰에서 "고생을 모르고 편하게 자란 것이 위기 상황에 대한 대처 능력을 떨어뜨려 발생한 사건"이라고 밝힌 바 있다. 내 자식은 편안한 환경에서 편안한 삶을 살게 해 주겠다는 부모의 과도한 사랑이 온전히 성숙하지 못한 '반쪽짜리 어른아이'를 만들어냈다.

일본도 1990년대 버블 붕괴 이후 청년실업이 심각해지면서 부모에게 의존하는 패러사이트 싱글(한국의 캥거루족과 유사)이 사회적 문제로 떠올랐다. 일본의 패러사이트 싱글은 경제적으로 자립하지 못한 케이스가 대부분이다. 그러나 소득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부모님과 같이 살면 밥이나 청소, 빨래도 해 주고, 집값도 안 드는데 왜 굳이 나가 사느냐'는 생각을 가진 자녀도 상당히 많았다. 이러한 현상에 대해 다이도(大同)대학 마쓰오카 요코(松岡陽子) 교수는 "자녀가 성인이 된 후에는 취업, 결혼, 출산, 정년퇴직 등 다양한 생활 사건으로 부모와 자식 간의 관계가 바뀌어야 하지만, 독신의 경우 관계 재구축의 계기가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결혼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부모로부터 독립하려 하지 않지만, 부모가 있으니 다른 가족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는 가족 관계의 악순환에 빠져들게 되는 것이다.

독친이 착각하는 것이 두 가지 있다. 첫째는 맹모삼천지교요, 둘째는 세상에서 가장 착한 내 자식이라는 믿음이다. 독친의 롤 모델 맹자의 어머니는 과연 맹자의 뜻을 꺾고 책상 앞에 앉혔을까. 아니다. 맹자의 어머니는 그저 아들이 공부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었을 뿐, 단 한 번도 눈앞에 책을 들이댄 적은 없다.

영화에서 그려지지는 않았지만, 부유한 노부인은 분명 아들을 소위 '사자(士字) 직업'의 길로 보내기 위해 아들의 캔버스를 찢고, 사교육을 강요했을 것이다. 이는 아들의 죽음 후에 전 재산을 쏟아 부어 아들의 작품을 사들이는 그녀의 열정을 보아도 짐작할 수 있다. 하지만 슬픈 모자(母子)의 결말로 알 수 있듯이, 부모가 생각하는 좋은 환경은 자녀에게 있어서는 최악의 환경일 수 있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또 하나, 자식을 '좋은 길'로 이끄는 독친일수록 내 자식은 평생 내 곁에 있을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있다. 내 자식을 보란 듯이 키워놓기만 하면 좋은 사위, 좋은 며느리까지 들여 대대손손 나를 평안하게 해 주리라는 확신이 지금 당장 허리띠를 졸라매고, 심지어 빚을 내는 고통을 잊게 해준다. 하지만 1998년만 해도 열 명 중 아홉 명(89.9%)이 부모님 부양은 가족이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에 반해 2014년에는 세 명(31.7%)에 불과해 부모 부양을 책임지겠다는 자녀의 생각이 빠른 속도로 옅어지고 있다. 심지어 돈 문제로 부모를 살해하는 패륜 사건도 심심찮게 발생하고 있지 않은가.

씁쓸한 이야기지만, 금이야 옥이야 키운 내 자식이 늙은 나를 부양할 것이라는 착각은 버려라. 자녀 교육과 결혼에 내 노후자금까지 쏟아 부어봤자 돌아오는 건 먹고 살기 힘들어서 이번 명절에도 찾아뵙지 못하겠다는 전화 한 통이 전부일 수도 있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좀 과하게 말하자면, 진짜 내 자식을 평생 내 곁에 끼고 싶다면 차라리 그 돈을 모아 죽을 때까지 내 손에 쥐고 있는 게 낫다. 적어도 마지막 순간까지 경제적으로 당당한 부모로 기억될 것이요, 부모의 돈이 탐이 나서라도 자식들은 한 번이라도 더 부모에게 얼굴을 내밀게 될 것이 아닌가. 나중에 어머니 때문에 내 인생 망쳤다는 원망을 듣는 것보다, 그 때 어머니 말씀 들었다면 이렇게 되지 않았을 것을 하는 후회의 마음에 훗날 더 부모의 말을 듣는 효자가 될 지도 모를 일이다.

영화에서 어린 지소의 눈에 비친 어른들은 무서운 노숙자였고, 도도한 노부인이었으며, 철없는 엄마(강혜정 분)에 불과했다. 하지만 어른들이 지소의 눈에 맞춰 담담하게 자신의 이야기를 꺼내면서 아이는 어른들의 표현 방법이 조금 달랐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어른과 아이의 세상이 소통하기 시작하면서 결국 어른들은 포기했던 희망을 찾고, 아이는 어른에게 다가섰다.

- 노부인(김혜자 분)은 자신의 욕심대로 자녀의 삶에 간섭하는 독친(毒親)의 전형이다.

마음을 여는 곳에 희망이 있어

한국 사회는 가족간 유대감이 강한 만큼 갈등도 많은 사회다. 부모와 자식 관계, 가장의 역할과 아내의 역할이 시대의 흐름에 따라 바뀌면서 전통적인 가치관과 현대적인 가치관이 곳곳에서 상충하고 있다. 이러한 갈등의 해법은 서로를 인간 대 인간이라는 독립된 주체로 보고 각자의 삶을 존중하는 데에 있다. 자녀의 생각보다 부모는 나약하고 상처받은 존재이며, 부모의 생각보다 자녀는 성장해 있다. 대포처럼 책임감에 쫓겨 도망쳐서도 안 되고, 노부인처럼 자녀에 집착하고 휘둘러서도 안 된다.

영화 후반, 윌리는 목줄을 풀어주면 더욱 좋아한다는 지소의 말에 노부인은 처음으로 윌리의 목줄을 푼다. 신나게 꼬리를 흔들며 뛰어다니는 윌리를 보는 노부인의 표정에는 과거에 대한 반성과 아들에 대한 이해, 그리고 새롭게 찾은 희망이 엿보인다. 당신의 외로움을 인정하고, 틀어진 관계는 곱씹어봐야 한다. 당신이 먼저 손을 내밀어 주기를 기다리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당신으로 인해 상처 받아 위로를 바라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당신의 남은 노후를 외롭게 보내고 싶지 않다면 먼저 용기를 내어 손을 내밀기 바란다.

마지막으로 김혜자 씨의 말을 소개하고자 한다. "제가 작품을 선택하는 기준은 '희망'이에요. 부정적인 이야기라도 실낱같은 희망이 있어야 해요. 그렇잖아도 우린 전부 힘드니까." 아무리 힘들어도 분명 당신에게도 희망이 있을 것이다.

Copyright © 이코노미조선.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