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엠창' '패드립'.. 욕에 무뎌진 학교의 아이들
아이들이 자기 엄마를 창녀로 거는 맹세를 한다면 부모들이 그걸 받아들일 수가 있을까? 아이들끼리 엄지와 새끼손가락을 쭉 뻗어 이마와 혀에 대면서 '엠창(엄창)'이라고 말하면 '내가 이 약속을 안 지키면, 혹은 이 말이 거짓말이면 우리 엄마는 창녀다'라는 뜻이다. '엠창(엄창) 깐다'는 말은 '맹세한다'는 의미이고 대화 도중 '엠창(엄창)?'이라는 말은 '정말?' 정도로 흔히 쓰이기도 한다. 이 말은 초등학교 3∼4학년 아이들도 쓴다. 뜻도 모른 채 쓰는 아이도 많다.
10년쯤 전, 중3 아이들이 격렬하게 싸운 일이 있었다. 간신히 떼어놓고 보니 주먹을 먼저 날린 아이는 상대방이 자기 엄마 욕을 해서 참을 수 없었다고 한다. 아이들 싸움은 쌍방과실인 경우가 많지만 그 아이에게 '네가 좀 참지 왜 먼저 폭력을 썼느냐'고 야단을 칠 수 없었다. 자기 부모 욕을 듣고 격분하지 않는 아이가 더 이상한 거 아닌가? 하여간 그 이야기도 벌써 오래전 일이고 지금은 부모 욕을 했다고 싸움도 잘 일어나지 않을 만큼 아이들 사이에서 이른바 '패드립(패륜적인 발언)'은 흔하디흔하다. 아이들이 매번 엄마 욕에 격분해 싸움을 한다면 지금의 남자 중학교 복도는 피바다가 되었을 것이다.
만약 사람 입에서 나오는 말이 눈에 보이는 색깔이 되어 공간을 채운다면 학교는 <해리포터>에서 악의 무리가 내뿜는 검은 연기 같은 걸로 꽉 차 있을지도 모른다. 아이들은 이제 웬만한 욕은 신경 쓰지도 않는다. '욕 끝마다 가끔 말'을 하는 그 많은 아이들을 일일이 지도할 수조차 없을 정도이지만, 나는 부모 욕과 여자 욕(남자아이들끼리 여자에게 하는 욕도 자주 한다. 남자아이들끼리도 '××놈' 하는 것보다 '××년'이라는 말이 더 모욕적으로 들린다고 한다. 의식하지 못하는 중에 남녀차별적인 사고방식이 반영된 것이라고 여겨진다)을 하는 아이들은 반드시 불러 호되게 야단치고 오래 훈계한다. 단순한 습관의 문제가 아니라 윤리와 인성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교사들이 내뱉었던 말도 스스로 돌아볼 때
그러고 보니 아이들은 '쓰레기'라는 말도 많이 쓴다. 방송에서 연예인도 공공연히 그 단어를 쓰는 것을 보았다. 저 말을 언제 들었더라? 그래, 아주 오래전, 한때 말썽꾸러기 아이들을 일컬어 '쓰레기 같은 자식'이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사는 선생님이 있었다. 아무리 아이가 잘못을 해도 그렇지, 자기가 가르치는 아이를 '쓰레기'라고 부르던 그 선생님, 같은 교사임이 부끄러웠던 그 사람…. 자기도 군대에서 무수히 들었다는 그 말, 그때만 해도 소름이 돋게 싫었던 그런 말의 씨앗이 학교 여기저기에 심어져 있다가 그가 퇴직한 지 오래된 지금 '잭의 콩나무'처럼 싹을 틔우고 미친 듯이 자란 건 아닌가 싶다.
'너희 부모가 그렇게 가르치던?' 하고 아이의 태도를 부모 탓으로 돌리던 담임선생, '네가 그러면 그렇지' '꼴통새끼' '한심한 자식' '네가 죽일 놈이네'라며 기선 제압한답시고 아이를 말로 죽이던 10년 전, 20년 전 나의 선배들, 아니 요즘의 내 동료들과 나 자신이 뱉은 말이 학교 복도에 씨를 감추었다가 밤마다 무럭무럭 자라나 아침에 등교한 아이들 몸속으로 들어가 검은 혀로 솟구치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물론 아이들 입이 저렇게 거칠어진 원인은 좀 더 복잡하고 다양하다. 건강한 사회와 공동체가 무너지고, 가정도 학교도 무너지고, 아이들은 지나친 학업과 경쟁의 무게에 스트레스받고…. 이런 근본적이고 포괄적인 원인 중에서 '학교의 막말'은 일부분에 불과할 수도 있다. 하지만 아이들의 거친 말을 막기 위해 학교는 무엇을 반성하고 무엇을 실천해야 할까 생각할 때, 우리 교사들부터 자신의 언행을 돌아봐야 한다.
오래전 교사들이 아이들에게 함부로 뱉은 욕이 요즘 싹텄다면 지금 우리 교사들이 아이들에게 다정하고 따뜻한 말을 나누어 10년 후를 기약할 수도 있지 않을까. 어쩌면 아이들의 검은 독설(毒舌)을 조금은 따뜻하고 부드러운 혀로 바꿀 수도 있을 것이다.
단, 그 노력은 그 혀가 완전히 썩어 문드러지기 전, 학교가 검은 연기에 질식해 무너지기 전에 서둘러 이루어져야 한다. 또한 교사들의 노력은 아이들을 거칠게 만든 교실 밖의 세상을 조금이라도 괜찮은 곳으로 변화시키려는 의지로 확장되어야 할 것이다.
안정선 (경희중학교 교사) / webmaste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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