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무룡·김지미·옥소리·황수정, 국회의원과 전직 차관 아내까지..간통 때문에 울고 웃었던 사연들
성적(性的) 자기결정권이 우선이냐, 가정보호가 우선이냐.
수십년간 끊임없이 논란이 됐던 간통죄(姦通罪) 운명이 오늘 오후 2시 헌법재판소 9명의 재판관 손에 의해 결정된다.
1953년 제정 형법 때부터 만들어져 지난 62년간 유지된 간통죄는 최근에는 사문화되다시피 했다. 하지만 과거나 지금이나 사회 유명 인사나 연예인들의 간통 사건은 사회적으로 큰 이슈였다. 유명인들은 간통으로 피소(被訴)되는 순간 구속됐고, 예외없이 사회적 명예는 추락했다.

그간 희대의 간통 사건으로 영화배우 최무룡-김지미 사건이 꼽힌다. 1962년 10월 최씨 아내 강효실씨는 "개복 수술로 아이(영화배우 최민수)를 낳은 지 열흘만에 두 사람의 간통사실을 확인했다"고 폭로했고, 이후 "퇴폐한 도덕감을 확립하기 위해 두 사람을 간통혐의로 고소한다"고 했다. 최씨와 김씨는 검찰 조사에서 간통 사실을 시인했고, 함께 구속됐다. 이후 김씨는 집을 팔아 위자료와 채무변제 등을 위해 300만원을 주기로 합의하고 일주일도 안돼 석방됐다.

배우 옥소리씨는 2007년 팝페라 가수와 간통한 혐의로 남편 박철씨로부터 고소되면서 주목을 받았다. 옥씨는 재판 과정에 위헌법률 심판을 신청해 간통죄 폐지 논의에 불을 지피기도 했다.
2000년대 초 드라마를 통해 최고 인기를 누리던 배우 황수정씨도 간통 혐의 등으로 고소를 당하면서 두 달 넘게 구속됐다. 마약 투약 혐의도 받았던 황씨는 이후 연예계 활동을 접어야 했다.

현직 국회의원이나 전직 차관 아내, 판사, 운동선수 등도 간통 사건에 휘말리면서 언론의 관심을 끌었다. 1982년에는 국회의원이 현직 검사 아내와 간통한 혐의로 구속된 뒤 의원직을 사퇴했다. 1984년에는 유명 여배우가 중견회사 유부남 사장과 간통한 혐의로 구속되는 일도 있었다. 이 여배우는 유부남 아내가 고소를 취하하면서 며칠 만에 석방됐다.
1980년대 후반 유독 유명인 간통 사건이 많았다. 현직 국회의원이 간통 혐의로 피소되고, 부부 가수로 활동하던 남편, 유명 탤런트 정모씨, 국가대표 농구선수, 올림픽 금메달리스트 출신 복싱 선수, 프로야구 선수가 간통 혐의로 이름이 오르내렸다.

1959년에는 전직 차관 부인이 17살이나 어린 '춤 선생'과 바람이 난 사건이 관심을 끌었다. 아내를 고소한 전직 차관이 법정에 증인으로 나와 "이혼 목적보다는 아내에 대한 형사처벌을 위해 고소했다"며 증언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부인은 항소심에서 "간통죄를 증명할 수 없다"는 이유로 무죄를 선고받았고, 남편이 제기한 이혼소송에서도 승소해 가정을 유지할 수 있었다. 1975년에는 건설회사 사장 아내가 스무살 이상 아래인 유명 가수와 간통사건이 터지면서 간통죄 존폐에 대한 사회적 논란이 벌어지기도 했다.
간통죄 때문에 웃지 못할 일도 벌어졌다. 1990년대 중반에는 20대 여성이 30대 후반 회사 동료 유부남과 간통 혐의로 피소되자 경찰에 '순결진단서'를 제출해 혐의를 벗기도 했다. 이 여성은 "6년간 유부남 동료와 해외여행도 같이 다녔지만 육체관계는 절대 없었다"고 항변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자 병원 진단서를 제출한 것이다. 이 여성은 결국 불기소처분을 받았다. 1956년에는 병을 고치겠다며 절에 들어간 아내가 여승의 아들과 바람이 났다며 남편에게 고소당한 사건이 신문 가십으로 실리기도 했다.
2000년에는 1년 반 동안 200여명의 여성과 성관계를 맺은 30대 회사원이 아내의 고소로 구속됐다. 이 남성은 비디오 테이프 5개에 성관계 장면을 촬영했고, 수첩에는 여성들의 연락처는 물론 주량까지 적혀있었다. 여성들은 합의하에 성관계를 가졌다고 진술함에 따라 간통죄만 적용됐다.
과거 간통 피의자들은 구속 수사가 원칙이었다. 영장 발부율도 100%에 가까웠다. 2000년 이전까지만해도 징역 10월~1년의 실형 선고가 관행이었다. 대검찰청에 따르면 지난 30년간 간통죄로 기소된 사람은 총 5만2900명에 달한다. 이 중 66.7%인 3만5000명이 구속기소됐다. 1980년대까지만 해도 한 해 수천명씩 간통죄로 구속됐다. 1984년 경북 문경·상주 경찰서에 구속된 형사 피의자 10명 중 3명이 간통 피의자였다고 한다.
검찰은 1990년대 후반 가정파괴 간통의 경우에만 구속하기로 방침을 정했다. 이후 구속자수는 크게 감소했고, 2007년에는 두자릿수로 줄었다. 법원 선고 형량도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1년이 공식화됐다. 하지만 2011년 자신이 주례를 선 신부와 10년 넘게 간통해온 목사가 실형을 선고받고 법정구속되기도 했다. 형사 고소하는 대신 가정을 유지하기 위해 간통한 배우자는 그대로 두고 파트너에게 민사 소송을 통해 위자료를 받아내는 사례도 많아졌다.
헌재가 간통죄에 대해 위헌 결정을 내리면 이는 소급 적용된다. 그동안 처벌받은 사람들은 재심을 통해 무죄를 받을 수 있다. 하지만 헌법재판소법이 개정되면서 위헌의 효력은 헌재의 마지막 합헌 결정이 있었던 날의 다음날까지만 소급 적용된다. 헌재가 간통죄에 대해 마지막 합현 결정을 내린 날이 2008년 10월 30일이기 때문에 이후 간통죄로 유죄가 확정된 사람들만 구제된다.
현재 재판을 받는 피고인들은 검찰이 공소 취소를 하거나 법원이 무죄를 선고하게 된다. 또 수사 중인 피의자의 경우 불기소(혐의없음) 처분이 내려지게 된다.
- Copyrights ⓒ 조선일보 & chosun.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Copyright © 조선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