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파식적] 흑기사vs백기사

임석훈 논설위원 2015. 1. 28. 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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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기사(black knight)는 원래 검은색 갑옷을 두르고 검은 말을 탄 기사를 이르는 말이다. 중세의 결투재판, 즉 원고와 피고가 싸워 이긴 쪽이 옳다고 결론을 내리는 재판에서 피고를 대신해 나서는 사람을 지칭했다고 한다. 원고 대리인은 백기사(white knight)라 불렀다. 신화·전설이나 문학작품에도 흑기사·백기사가 자주 등장한다.

월터 스콧이 쓴 '아이반호'에서 영국 존 왕의 전횡에 맞서는 기사 아이반호가 흑기사다. 검은 가면에 검은 망토를 휘날리며 스페인 총독의 폭정에 대항하는 쾌걸 조로도 흑기사로 나온다. 성격이 정반대지만 조지 루카스가 영화 '스타워즈'에서 투구와 가스 마스크로 창조해낸 흑기사가 다스베이더다.

백기사도 만만찮다. 프랑스를 구한 잔 다르크, 정의감이 강한 좌충우돌형 인간 돈키호테 역시 백기사로 묘사된다. 그런데 백기사가 흑기사보다 살갑게 다가오는 이유는 뭘까. 흰색은 밝고 환한 분위기인 데 비해 검은색은 어둡고 칙칙한 모습이 연상되기 때문일 듯하다. 경제 분야에서 언급되는 흑기사·백기사의 이미지도 비슷해 보인다.

적대적 인수합병(M&A)이 진행될 때 현 경영진에 힘을 보태는 주주가 백기사다. 2003년 외국계 자본인 소버린이 SK 경영권 인수를 시도했을 당시 신한·하나·산업은행이 대표적인 사례다. 반면 흑기사는 경영권을 뺏으려는 측을 돕는 주주로 부정적인 의미가 떠올라서인지 겉으로 드러내지 않으려는 경향이 있다.

국내 게임업계 선두인 넥슨이 엔씨소프트 경영 참여를 선언하면서 지분 싸움이 벌어질 것이라는 예상이 나온다. 20여 년 우정을 이어온 김정주 넥슨 대표와 김택진 엔씨 대표의 대결이어서 자못 흥미롭다. 협상 가능성이 있지만 갈등 봉합이 쉽지 않을 거라는 관측이 많은 것 같다. 넥슨은 흑기사를, 엔씨는 백기사를 찾아야 할 판이다. 엔씨 지분 6.88%를 가진 국민연금과 소액주주의 의사가 방향타가 될 전망이란다. 나라 관계에서나 기업 경영에서나 영원한 친구도 영원한 적도 없는 모양이다.

임석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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