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탁상훈 기자의 세상 이야기]연초부터 도전받는 김승연 회장의 '의리 경영'

탁상훈 기자 2015. 1. 23. 14:34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최근 경영 일선에 복귀한 한화그룹 김승연 회장이 연초부터 도전에 직면하고 있다.

김 회장은 지난해 12월부터 서울 중구 장교동 한화그룹 본사로 출근하기 시작했다. 2012년 이후 구속수감·구속집행정지·집행유예·사회봉사명령으로 이어지며 발생했던 장기 공백을 딛고 그룹의 현안들을 직접 챙기기 시작한 것.

그는 복귀 직후 적지 않은 나이임에도 한화건설의 이라크 신도시 건설 현장으로 날아가 직원과 근로자들을 격려했고, 올 1월에는 신년사를 통해 그의 트레이드 마크인 '의리 경영'을 다시 강조하며 올해 한화 그룹이 나아갈 방향을 밝혔다.

김 회장은 신년사에서 "대한민국의 작은 한화에서 세계 속의 큰 한화로 발돋움해 나가야 한다"며 "그것이 바로 국가에 대한 의리, 사회에 대한 의리, 국민에 대한 의리를 지키는 일"이라고 말했다. 이처럼 한화 경영의 전면에 '의리'라는 단어가 강조되면서 재계에서는 김 회장의 존재감이 다시 느껴지고 있다는 이야기도 하고 있다.

국내 그룹 오너나 CEO 가운데 '의리' 라는 말을 쓰는 경우는 거의 없기 때문이다. 다만 이런 표현은 지난해 '으리'라는 표현으로 인기를 모았던 배우 김보성 씨와는 별개로 김 회장이 젊은 시절부터 즐겨쓰던 것이기도 하다. 한화그룹은 예전부터 '의리'를 사시(社是) 중 하나로 정해두고 있으며, 사무실에는 커다랗게 '義理(의리)'라고 쓰인 사시 현판이나 액자가 걸려 있을 정도다.

한화 내부에서는 이런 '의리 경영'이 좋은 제품과 합리적 실적을 통해 직원·사회에 대한 기여와 믿음을 쌓는 기업으로 성장하자는 뜻으로 이해되고 있다. 그러나 한편으론 취임 당시 매출 1조원이었던 한화 그룹을 매출 30조원의 대기업으로 일군 김 회장의 기업 성장에 대한 강한 의지가 담겨 있다는 해석도 적지 않다. 올해 신년사에서도 밝혔듯 사회와 국가에 대한 의리를 지키기 위해서는 그에 걸맞는 성장을 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화를 둘러싼 연초 경영 환경은 전혀 그렇지 못한 형국이다.

가장 큰 고민은 지난해 한화그룹이 의욕적으로 추진한 삼성그룹 계열사 인수 작업이 제대로 진행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한화그룹은 한화로선 주력사업이자 삼성으로선 비주력사업인 삼성의 방위산업·화학 계열사 네 곳을 인수키로 전격 결정했으나, 뜻밖에도 이들 삼성 계열사 직원들의 거센 반발에 부닥치고 있다. 이들 회사들은 노조를 만들면서까지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고 어제(21일)는 서울로 올라와 서초동 삼성 사옥 앞에서 대형 집회도 열었다. 이들이 공동 상경집회까지 연 것은 이번이 처음으로, 삼성토탈·삼성종합화학·삼성테크윈·삼성탈레스 등 매각 대상 4개사 근로자 400여 명이 참가했다.

한화그룹은 이들에게 "기존 삼성에서 받던 대우를 최대한 유지해주겠다"는 입장이지만, 해당 기업 직원들은 여전히 반대 입장을 분명히 하고 있다. 한화그룹은 인수 결정 이후 꽤 시간이 지났지만 여전히 서류 실사만 진행 중이며, 공장을 직접 찾아가는 현장 실사는 아직 하지 못하고 있다. 안 그래도 경기가 좋지 않은 마당에 그룹 주력인 에너지와 방위산업을 강화하겠다는 전략마저 차질을 빚자 한화그룹의 고민도 커지고 있다. 특히 자신이 일군 사업에 대한 자부심이 강한 김 회장이 이런 상황에 대해 당혹스러워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또 다른 어려움은 김 회장이 의욕적으로 투자해온 태양광 산업의 업황이 매우 어둡다는 점이다. 본래 태양광 산업은 원유에 대한 대체재 성격을 띄고 있다. 즉 휘발유 값이 너무 비싸 이를 대체할만한 에너지를 찾는 수요가 있어야 성장하는 것인데, 요즘은 국제 유가가 너무 폭락해서 굳이 이런 대체 에너지를 찾으려는 곳이 별로 없다는 것이다. 태양광 에너지에 가장 의욕을 보였던 유럽마저도 경제 상황까지 좋지 않아 관심이 크게 떨어진 상태다. 이로 인해 2010년 전후로 유가가 폭등하던 시절 태양광 분야에 대대적인 투자를 했던 삼성과 LG등 다른 그룹들도 이 사업에서 대부분 철수를 했고, 웅진그룹은 태양광 산업에 미래를 걸었다가 자금난으로 그룹이 와해되기도 했다. 유가 하락폭은 올 들어 더욱 가팔라지는 중이다.

하지만 한화그룹은 수천억원 단위의 투자를 마다 않으면서 의욕을 높이고 있다. 유가도 순환 사이클 상 언젠가 다시 급등할 테고, 그런 때가 되면 이 분야에서 선행 투자를 단행해 놓은 한화그룹이 그 수혜를 누릴 수 있을 것이란 예상에 따른 것이다. 다만 지금으로선 그런 시기가 언제 올 지 가늠하기 쉽지 않은 상황이다.

재계에서는 김 회장이 오랜만의 경영 복귀와 함께 맞닥뜨린 이런 새로운 도전들을 어떻게 돌파해낼지 주목하고 있다. 특히 김 회장이 재계 인사들 가운데 여러모로 남다른 이력을 갖고 있는 인물이라는 점에서 그 관심의 정도는 더해지고 있다. 그는 1981년 당시 불과 29세의 나이에 그룹을 물려받아 회장이 됐고, 재임 기간 중 폭행 사건으로 구속돼 실형을 사는 등 여러 특이한 사건과 발언으로 세상을 주목케 했으며, 그러나 그런 온갖 우여곡절 속에서도 그룹을 크게 성장시켰다. 그가 승계 받을 당시 자산 규모 1조원이 안 되던 한화그룹은 이제 자산 규모 90조원의 거대 그룹이 됐다. 굴지의 생명보험회사 대한생명(현 한화생명) 인수를 위해서는 그는 국제재판까지 가는 공방을 벌일 정도로 강한 의지를 보이기도 했다.

실제 그는 사업에 관한한 남다른 열정을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김 회장이 사석에서 종종 했었다는 "내가 해 본 일 가운데 사업이 제일 재미있더라"는 말은 직원들 사이에 역설적으로 그의 강한 사업 의지를 보여주는 일화로 전해지고 있다.

재계에서는 30개월 넘는 결코 짧지 않았던 공백기를 끝내고 돌아온 그가 새로운 도전에 맞서 어떤 결과를 만들어낼 지 주목하고 있다.

- Copyrights ⓒ 조선일보 & chosun.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Copyright © 조선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