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의 스피치 라이터..오바마의 '헤밍웨이'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연설에 관한 한 역대 지도자 중에서도 몇 손가락 안에 든다. 그 빼어난 연설문 작성의 중심에 30대 청년이 있다. 코디 키넌(Keenan·34) 연설문 담당 수석 비서관이다.
21일(미국 시각으로 20일 오후) 미 의회에서 오바마가 발표한 신년 국정연설문 초안도 그의 작품이었다. 부자 증세와 중산층 감세에 관한 주요 정책이 다양한 일화와 함께 6000 단어 장문에 담겼다. 청중은 주요 대목마다 박수를 보냈다.
하지만 이날 화려한 연설이 탄생하기까지 키넌 연설 비서관은 피를 말리는 시간을 보내야 했다. 그 이면의 노력을 뉴욕타임스가 소개했다.
키넌은 새해 국정 연설이라는 중대사를 앞두고 긴 시간 '나홀로 고행'에 들어갔다. 주군인 오바마가 하와이에서 휴가 중일 때도 그는 호놀룰루의 호텔에서 두문불출했다. 15일을 그렇게 보냈다. 그 후에도 백악관 서관(西館) 지하 사무실에서 일주일 넘게 칩거했다. 창문도 없는 방이었다.
마지막 퇴고의 순간에는 또다른 동료의 집에 가서 함께 글을 고치며 밤을 샜다. 새벽 5시에야 탈고했다. 연설문은 대통령 앞으로 갔다.
글은 같은 이야기라도 쓰는 사람에 따라 다르다. 키넌의 연설문은 특히 평범한 미국인들의 일상적인 삶을 담아내는 글로 정평이 나있다. 전임자인 존 패브로가 희망과 변화에 관한 원대한 그림을 그렸다면, 키넌은 국민 개개인과 이들의 근면 스토리에 초점을 모은다. 오늘날 미국 사회에서 달성하기 어렵긴 해도 여전히 가능한 것들에 대한 우화로 서민들의 분투를 담아낸다.
가령 이런 구절. "오늘날 미국의 교사는 도움이 필요한 학생을 위해 수업이 끝난 후에도 교실에 남아 함께 시간을 보냅니다. 그런 그의 노력 덕분에 미국의 졸업률이 30년여 만에 최고 수준을 기록했습니다." 작년 국정 연설의 한 대목을 그렇게 장식했다.
오바마 자신이 베스트셀러 저자이자 연설의 '달인'이다. 보통, 비서관이 연설문 초안을 가져갔을 때 오바마가 보이는 반응은 두 가지다. 마음에 들면 원고에 밑줄을 긋거나 여백에 메모만 할 뿐이다. 그렇지 않으면 줄이 그어진 노란색 메모장을 펴들고 직접 전면 개작에 들어간다.
그런 오바마도 키넌의 문장에 대해서는 깊은 신뢰를 보낸다. 백악관 관계자는 키넌의 초안이 오바마로부터 퇴짜를 맞은 적이 최소한 2년 동안 한 번도 없었다고 말한다.
오바마는 글쟁이 키넌을 '헤밍웨이'라고 부른다. 글솜씨를 칭찬하는 말이겠지만, 키넌이 주기적으로 길렀다가(아마도 연설문 초안 작성 중일 때) 다시 밀고는 하는 무성한 턱수염 탓이기도 하다.
정작 키넌의 이력을 보면 전문 작가의 정규 경로를 밟았다고는 할 수 없다. 시카고에서 태어나 부자 동네에서 자랐다. 고교 시절에는 미식축구 쿼터백으로 활약하면서 탐정 소설에 탐닉했다. 그러면서 학생회장까지 지냈다. 정치에 대한 관심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노스웨스턴대 졸업 후 21세에 홀홀단신으로 워싱턴DC 정가에 투신했다.
민주당 메사추세츠주 상원의원인 에드워드 케네디의 사무실에서 두각을 나타내 쾌속 승진했다. 하버드 케네디스쿨(행정대학원)도 다녔다. 2007년 오바마 대선캠프 연설문팀에 합류했다. 오바마가 당선된 후 백악관에서 졸업식 축사와 연설문을 썼다. 2012년 오바마 재선 후에는 전임자가 사직하면서 뒤를 이었다.
동료는 그가 미국의 인기 정치 드라마 '웨스트 윙(The West Wing)'의 샘 시본 같다고 말한다. 극 중 연설문담당 비서관으로 나오는 착하고 단순한 성격의 인물이다.
그런 그를 오바마는 2009년 백악관 출입기자단 만찬장에서 이렇게 치켜세웠다. "내가 그를 신뢰하는 것은 나 자신의 비전을 전파하기 위해서뿐만이 아닙니다. 미국의 이야기를 전하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대통령의 연설이란 그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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