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8일 '원조' 코리안 메이저 리거 레전드 박찬호가 미국 프로야구 스카웃 재단에서 주최한 '야구의 정신' 시상식에서 '야구 개척자' 상을 받았다. 국내 선수로는 어느 누구도 도전하지 못했던 메이저 리그에 과감히 도전장을 던졌고 또 성공 사례가 되어 오늘날 추신수, 류현진, 강정호에 이르기까지 국내 선수들의 메이저 리그 진출의 물꼬를 튼 공을 인정 받은 것이다. 시상은 버드 셀릭 커미셔너가 직접 하였고 용기 있는 선택으로 미국 야구판에 한국 야구를 소개한 박찬호에게 치하를 아끼지 않았다고 한다.

그런데 그와 함께 수상한 또 하나의 인물이 있었다. 바로 90년대 중반 '토네이도' 돌풍을 일으켰던 일본인 투수 히데오 노모가 그 주인공이다. 나중에 박찬호에 의해 깨어졌지만 메이저 리그에서 통산 123승을 거두며 아시아 출신 투수들의 기록 보유자이기도 했다. 박찬호가 LA 다저스의 에이스로 떠오르기 전에 그는 다저스의 간판이었고 박찬호와 함께 아시아 투수에 대한 인식을 바꿔 놓은 공을 인정 받은 것이다.
흥미로운 것은 세월이 무상하다고 하지만 어느덧 국내의 메이저 리그 팬들 중 그의 뛰는 모습을 직접 보지 못하고 최근에 관심을 가진 분들 사이에서는 그가 누군지 잘 모르시는구나 라는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박찬호와 동시대를 메이저 리그에서 뛰며 아시아 야구에 대한 돌풍을 메이저 리그에 가져왔던 노모에 대해서 소개하는 시간을 가지려 한다.
노모는 68년생으로 박찬호보다 5살이 연상이다. 학창 시절 노모는 그리 주목받던 투수는 아니었다. 그의 트레이드 마크인 몸을 극단적으로 비틀어 던지는 '토네이도' 투구폼도 빠른 볼의 구속을 높이기 위해 이때부터 적용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고교 시절 오사카 지역 대회에서 퍼펙트 경기를 달성했지만 큰 주목을 받지 못했다. 결국 본인이 뛰길 원했던 킨데스 버팔로스와의 계약을 포기하고 신일본제철 사카이에 입단하며 사회인 야구로 성인 야구에 발을 디뎠다. 이 때부터 노모의 야구 인생은 바뀌기 시작했다.
특이한 투구폼과 새롭게 장착한 포크볼이 위력을 떨치기 시작한 것이다. 이 때 국가대표로 선출되었고 88올림픽에 참가해 일본팀 에이스로 은메달의 주역이 되었다. 당시 기억에 생생한 것은 대한민국 팀과의 경기에 등판해 초반 위기를 넘기며 포크볼의 위력을 발휘해 우리 타자들이 고전했던 기억이다.
결국 노모는 그 이듬해인 89년 그렇게 원하던 긴데스 버팔로스의 지명을 받고 프로 유니폼을 입을 수 있었고 90년 데뷔와 동시에 돌풍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데뷔 첫 승 경기에서 탈삼진을 무려 17개를 뽑아내며 당시 일본 프로 야구 타이 기록을 세웠고 18승, 2.91의 평균 자책점, 21번의 완투, 235이닝 투구, 287탈삼진등 모두 1위에 오르며 신인왕, MVP, 사와무라상까지 차지하는 괴력의 투구로 순식간에 일본을 대표하는 투수로 떠오른 것이다. 91년에도 17승을 거두며 최다승 투수가 됐고 자신이 지난해 세웠던 5경기 연속 두자리 탈삼진 기록을 6경기로 연장시켰다. 92,93년에도 각각 18승과 17승을 거두며 4년 연속 다승왕에 오르는 동시에 탈삼진왕 역시 계속 지켜냈으며 최단 기간 1000탈삼진을 달성한 선수가 되었다. 94년에는 부상등이 겹치며 부진했지만 일본 프로 야구를 대표하는 투수로 이미 그는 확고한 위치를 굳히고 있었다.
하지만 이면에는 아쉬운 점도 분명히 있었다. 일본 타자들이 노모의 포크볼에 적응을 하기 시작했고 5년간 무려 80번의 완투 경기를 펼친 것이다. 이는 메이저 리그에 진출후 차츰 떨어지는 구속에서 반영이 된다. 그의 포크볼은 낮은 스트라이크 존으로 들어가는 공처럼 보이다 급격히 떨어지는 공이라 속기도 좋지만 타자가 골라내면 거의 볼로 판정되는 스타일이었다. 이 같은 모습은 훗날 미국에서 직구 구위가 떨어지면서 다시 나타나게 된다.
두 번의 미일 올스타전에 참여한 노모에게 당시 미국팀의 에이스 '로켓맨' 로저 클레멘스가 그 정도의 공이면 충분히 메이저 리그에서 통할 수 있다는 말에 희망을 가졌고 미국 진출을 꾀하게 된다. 당시 일본 프로 야구에서는 5년밖에 뛰지 않은 노모의 진출을 허락하지 않았지만 마음을 바꾸지 않고 일본 프로에서 은퇴를 선언하고 LA 다저스와 계약을 마침내 맺게 된 것이다.

우여곡절 끝에 메이저 리그에 진출한 노모는 바로 돌풍의 주인공으로 떠오른다. 1965년 무라카미 마사노리 이후 최초로 메이저 리그 무대에 선 선수가 되었고 실망을 시키지 않았다. 95년 진출 첫해 올스타전에서 내셔널 리그 선발 투수로 낙점이 되었고 13승6패에 2.54의 뛰어난 성적에 236개의 삼진은 리그 1위였다. 신인왕은 그의 차지였고 바로 '토네이도'라는 별명이 붙으며 현지 팬들의 엄청난 관심을 받게 되었다. 메이저 리그 데뷔는 박찬호가 94년에 먼저 했지만 노모는 풍부한 일본 사회인 야구와 프로의 경험을 바탕으로 진출과 동시에 스타돔에 오르게 된다.
96년 노모는 다시 한번 인상적인 경기로 주목을 받는다. 그 해 9월18일 '투수들의 무덤'으로 잘 알려진 쿠어스 필드에서 최초의 노히트 경기를 펼친 것이다. 이 기록은 현재도 유일한 기록으로 남아있다. 97년에도 200개 이상의 탈삼진을 잡아내며 당시 메이저 리그에서 유일하게 데뷔와 동시에 3년 연속으로 200+ 탈삼진을 잡아낸 두 번째 선수가 되었다. 98년 부진에 빠지면서 뉴욕 메츠로 트레이드되었고 그 때부터 노모는 저니맨이 되었다.
하지만 99년 밀워키에서 12승, 2001년 보스턴에서 13승을 거두고 두 번째 노히트 경기를 만들어내며 재기에 성공했다. 다시 다저스로 컴백해 2002년과 03년 연속으로 16승을 거두는 기염을 토하기도 했다. 그 이후는 완연한 내리막 길로 08년 캔자스시티에서 마지막 모습을 보이고 메이저 리그에서 모습을 감추게 된다.
메이저 리그 통산 123승 109패 4.24의 성적을 거두었고 1978개의 탈삼진을 뺏어냈다. 그가 자리를 잡았을 때 박찬호는 좋은 동기 부여가 되며 90년대 후반 다저스의 에이스로 등극을 하게 된다. 그리고 그와 좋은 친구가 된다. 실제로 박찬호가 자신의 동양인 최다승 기록을 깼을 때도 축전을 보냈다고 한다.
박찬호와 노모의 메이저 리그 진출 배경은 다르지만 두 선수는 아시아 야구의 진정한 모습을 메이저 리그에 소개한 진정한 개척자들이다. 이들로 인해 수많은 한국과 일본의 선수들의 메이저 리그 진출 경로가 열렸다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지금도 사나이의 우정을 이어오고 있는 두사람에게 경의를 표하며 이제는 국내에서 잊혀져가는 투수 노모를 다시 한번 돌아보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