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車 '일감 몰아주기' 더 심해졌다

현대자동차에 승용차 도어 부품을 납품하는 A사는 작년까지 3년 연속 영업적자를 냈다. 지난해 총매출액은 2010년 대비 50% 넘게 늘었지만 3년간 누적 영업적자가 80억원에 달했다. 현대차에 호스 제품을 납품하는 한 1차 협력업체도 지난해까지 3년 연속 영업적자를 기록했다. 매출은 매년 20~30%씩 증가했어도 수익이 갈수록 악화된 탓이다.
현대차 협력업체인 B사는 올 초 현대차와 납품 계약을 맺기 전 '가이드라인'을 받았다. 인건비는 현대차 직원의 80%, 관리비는 제품 원가의 20%를 넘어서는 안 된다는 게 골자였다. 회사 관계자는 "원가(原價)를 산정할 때 어떤 항목은 얼마 이상은 인정해줄 수 없다는 지침이었다"며 "결국은 현대차가 요구하는 가격대에 울며 겨자 먹기로 맞출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같은 현대차에 납품하는 기업이라도 현대차그룹 계열사라면 얘기가 달라진다. 현대모비스를 비롯한 현대차 계열 부품사들은 지난해 평균 9%대의 영업이익률을 올린 것이다. 현대차 계열 부품사 관계자는 "우리의 영업이익률은 모기업인 현대차가 지난해 올린 영업이익률(9.5%) 수준을 그대로 따라간 것"이라고 말했다.
본지가 29일 단독 입수한 산업연구원(KIET) 보고서에 따르면, 현대차에 납품하는 부품회사 가운데 현대차 계열사의 평균 영업이익률(9.3%)은 비(非)계열사(3.3%)보다 3배 정도 높은 것으로 드러났다. 중소부품 업계에서는 현대차가 계열사에 '일감 몰아주기'를 하면서 협력업체를 고사(枯死)시킨다는 볼멘소리가 터져 나오고 있다.
◇계열·비계열 부품사 영업이익률 격차 계속 확대
현대차 계열·비계열 부품사의 영업이익률(營業利益率) 격차는 2010년 이명박 정부가 동반성장 정책 드라이브를 걸었을 당시 4%포인트까지 좁혀졌다. 하지만 계속 벌어져 지난해에는 6%포인트까지 격차가 벌어졌다.
전문가들은 "현대차그룹이 완성차에서 부품까지 수직계열화를 가속화하고 조달 부품 가격 결정을 주도하면서 계열사와 비계열사 간 영업이익 격차가 확대되고 있다"고 지적한다. 여기에 현대·기아차가 현재 국내 자동차 산업의 70% 이상을 차지하는 상황에서 협력업체들이 현대·기아차에 납품하지 않으면 살아남기 힘든 구조라는 것.
김기찬 가톨릭대 교수는 "내수든 수출이든 현대·기아차에 목매여 있는 협력업체 입장에서는 국내에서 수익을 올리지 못하더라도 감수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2000년대 초반부터 현대차그룹이 현대모비스 등 부품 계열사를 통해 부품을 모듈화(modularization·조합부품)하면서 어려움을 호소하는 협력업체도 늘고 있다. 모듈은 작은 부품을 기능에 따라 미리 결합한 조합 부품으로 자동차 공장에서 모듈을 차체에 바로 조립하면 부품을 일일이 결합하는 것보다 생산 효율이 높다. 하지만 현대차는 현대모비스에, 현대모비스는 모듈에 들어가는 세부 부품을 납품하는 협력업체에 각각 원가 절감을 요구하는 구조이다 보니 협력업체들은 이중(二重)으로 쥐어 짜이게 된다.
최근 3~4년간 국내외 자동차 시장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현대차·기아차의 영업이익률이 하락세로 접어든 것도 배경이다. 현대차의 경우 원화 강세에 시달리면서 올 3분기 영업이익률이 7.7%로 전년 동기 대비 2%포인트 떨어졌다. 업계 관계자는 "현대·기아차가 가격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 자동차 가격을 낮추고 그 부담은 고스란히 부품 협력업체에 떠넘기고 있다"고 말했다.
◇"장기적으로 부품 경쟁력 약화" 우려
현대차가 부품 분야까지 독식(獨食)하는 구조가 고착화될 경우 현대차는 물론 국내 자동차 산업의 경쟁력이 하락할 것이라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현대차가 수직 계열화를 통한 원가 절감으로 단기간 내 경쟁력을 높인 측면이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중소 부품 산업이 자생력을 가지는 생태계를 망가뜨린다는 지적이다.
이항구 KIET 선임연구위원은 "현대차가 정해준 대로 생산하다 보면 결국 부품 업체들이 경쟁력을 잃게 된다"며 "실력 있는 부품업체들이 도태되면 현대차에도 결코 도움이 되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박심수 고려대 교수는 "폴크스바겐그룹 영업이익률이 현대차그룹보다 낮은 5% 안팎인 것은 효율의 문제가 아니라 글로벌 1등을 하기 위해 R&D 투자를 계속 늘리기 때문"이라며 "눈앞의 이익에 급급해 협력업체를 키우려는 노력을 하지 않는다면 미래 성장 동력을 상실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현대차 관계자는 "협력업체 가운데서도 영업이익률이 현대차 부품계열사보다 높은 곳이 많다"며 "현대차는 자동차부품산업진흥재단을 설립해 협력사들의 품질·기술·경영 육성을 적극 지원하는 등 동반성장 노력을 꾸준히 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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