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생' 손종학, 이 배우가 정말 마부장 맞습니까?(인터뷰)

'미생' 손종학, 이 배우가 정말 마부장 맞습니까?(인터뷰)
[TV리포트=김가영 기자] 실제 이런 상사가 있으면 어떨까? 생각만 해도 눈물이 고인다. 배우 손종학이 연기하는 '미생' 마부장은 그런 사람이다. 여자 후배 안영이(강소라 분)에게 성차별 적인 발언을 하고 모욕감을 준다. 남자 후배들에게도 예외는 없다. 호통과 욕설은 물론, 손찌검도 동반한다. '미생' 성대리(태인호 분)와 함께 악플의 지분을 나눠 갖고 있는 배우 손종학. 실제로 만나본 그는 마부장과 180도 다른 모습이었다. '정 반대의 역할을 이렇게 완벽하게 소화할 수도 있구나'…연기의 힘에 또 한 번 놀라는 순간이었다.

◆ "'미생' 마부장과 다른 성격, 평화주의잡니다"
"실제 성격은 평화주의자입니다. 대화로 풀려고 하고요. 마부장 연기? 어려워요. 마인드 컨트롤을 해요. 분장을 하면서 마부장이 되고 헤어 손질을 하면서 변신해가죠. 감독님이 워낙 잘 살려주시니까 더 역할이 풍성해 지는 것 같아요. 뭐 마부장 같은 부분도 있긴 있겠죠. 사람 성격이 한 가지만 있는 것이 아니잖아요. 마부장 같은 면은 누구나 갖고 있다고 생각해요. 마부장 역할이면 그 부분을 많이 살려서 연기를 하려고 하죠."
'미생'의 영향 때문이었을까? 왠지 말을 걸기가 무섭고 조심스러웠다. 하지만 배우 손종학은 아주 밝은 미소로 첫 인사를 건넸다. '미생'과 다른 모습에 조금 놀랐다. 마부장과 다른 복장, 다른 말투, 다른 표정이었다. 체크무늬 재킷과 블랙 머플러로 멋스러움을 보여준 그는 직접 옷을 골라 입고 나왔다고 밝혀 또 한 번 놀라움을 안겼다. '마부장은 100% 만들어진 거구나'라는 것을 느끼게 했다.
"'미생' 연재할 때 워낙 화제였으니까 알고 있었죠. 또 캐스팅이 되고 돈 내고 다운을 받아서 봤어요. 원작 마부장 캐릭터는 저와 좀 달라요. 그래서 '나하고 맞나' 이런 의문을 가졌어요. 김원석 감독님이 영화 '일대일'을 보고 마부장 같은 모습을 봤나 봐요. 얼마 전에 김 감독이 '사실 실제로 보니까 인상이 유한 것 같아서 고민을 많이 했다'고 하더라고요. 심심하면 댓글을 보곤 하는데 욕을 많이 하시더라고요. 배우로서 캐릭터를 잘 살린 것 같아서 좋아요."

◆ "미생' 마부장을 하며 느낀 것"
세상엔 수많은 종류의 사람이 존재한다. 이처럼 '미생'에도 아주 다양한 인물들이 등장한다. 안영이에게 욕설을 퍼부었던 하대리(전석호 분), 장백기(강하늘 분)에게 무관심으로 일관하던 강대리(오민석 분), 극 초반 시청자들의 미움을 받던 이들은 후배들을 향한 진심을 드러내며 점점 '호감형 캐릭터'로 변했다. 하지만 마부장은 아직까지 제자리걸음이다. 모진 상사로 변한 과정, 감춰져 있던 사연 등도 나오지 않아 시청자들의 원망을 한 몸에 받고 있다.
"마부장은 나쁜 사람이 아니에요. 속에 담아두지 못하는 단순한 성격이죠. 단순한 사람 중에 악의가 있는 사람은 없어요. 마부장은 그냥 쉬운 사람이에요. 계산적인 사람들이 더 무섭죠. '미생' 출연자들이 다들 그러더라고요. 마부장은 기러기아빠일 거라고…부장이나 된 사람인데 후배들을 다그치는 데에는 다 이유가 있을 거예요. 생각해보면 김부장(김종수 분)이 떠났을 때 마부장이 영업3팀 일을 같이 해줬는데 아는 척도 안하고 안영이도 뒤에서 오차장 칭찬이나 하니 빈정이 상하죠. 또 자원2팀에 전화기로 찌르며 혼낸 것도 일을 못하니까 그런 거에요. 하하. 따지고 보면 다 이유가 있어요."
손종학의 얘기를 듣다 보니 '그렇긴 하네'라는 생각이 들었다. 또 자신이 맡은 마부장을 이해하고 감싸는 모습을 보며 '손종학이란 배우가 정말 마부장으로 살고 있구나'라는 것을 느꼈다. 아마 현실엔 수많은 마부장이 존재할 것이다. 그 수많은 마부장들 또한 손종학처럼 자신의 행동들에서 타당한 이유를 찾고 있을 것. 손종학은 "실생활의 마부장이 자기는 오차장이라고 생각을 해요. 세상 마부장들이 '미생'을 통해 자신의 행동들을 돌아보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어요"라고 말했다.
또 기성세대로서 '미생'을 보며 느낀 점이 있느냐고 묻자 "저는 연극을 하면서 젊은 친구들과 작업을 많이 했어요. 그래서 나름대로 소통을 잘 한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을 수도 있겠구나' 느꼈어요. 젊은 친구들이 앞에선 잘 어울리는 척 해도 뒤에선 아니었을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어요"라고 말해 웃음을 안겼다.

◆ 손종학, 알고 보면 오픈 마인드·100점짜리 아빠
건축학과에 재학 중이던 손종학은 1987년 무턱대로 극단을 찾아갔고 그렇게 배우의 길을 걷게 됐다. 1987년 '서울말뚝' 마당극으로 데뷔를 한 손종학은 당시를 회상하며 "정말 힘든 공연이었는데 재밌었어요. 이 길을 선택했을 때 부모님이 반대를 하셨어요. 하지만 부모님도 제 성격을 아니까 크게 말리진 못하시더라고요. 제가 부모님 가슴에 못을 박은 것 같아요. 근데 어떡해요. 그렇게 생겨먹은걸"이라고 말하며 웃어 보였다. 손종학은 '미생' 속 고리타분한 마부장과 다른 개방적이고 자유분방한 사고의 소유자였다.
중고교시절, 제도적인 틀 안에서 지내는 것이 불편했다는 손종학은 중학생인 아들들에게도 자유로운 시간을 분배한다. 손종학은 "아들이 중3, 중1인데 공부를 강요하지 않아요. 하고 싶은 것을 하라고 해요. '공부도 너네가 행복해지기 위해서 하는 거니까 미래에 보이지도 않는 일들을 위해서 희생할 필요가 없다'고 말해요"라고 전했다. 그 말에서 '알수록 마부장과는 다른 기성세대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들이 어려서부터 학원을 다니니까 학원을 학교처럼 알더라고요. 작년인가? 학원을 다니기 싫으면 다니지 말라고 했어요. '배낭여행이나 다니자'고 했어요. 그런데 막상 학원을 그만두니까 오래 못 놀더라고요. 이게 다 상술에 놀아난 것이라고 봐요. 우리 젊은이들이 좀 더 자유롭게 살고 사고할 수 있는 세상이 왔으면 좋겠어요."
손종학의 대화를 듣다 보니 '이런 기성 세대들이 늘어난다면 세상은 달라지겠다'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 인터뷰가 끝날 때쯤엔 마부장이 아닌 배우 손종학만이 남아 있었다. 오직 연기력으로 악독한 마부장을 만들어낸 손종학. 그가 마저 완성시킬 '미생' 마부장의 모습에 기대가 모아진다.

김가영 기자 kky1209@tvreport.co.kr / 사진=문수지 기자 suji@tvrepor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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