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정미·김성신의 북톡카톡] 무라카미 하루키가 반한 '먼 북쪽'


MBC <개그야>의 '명품남녀'에서 웃음 제조기로 인기를 모은 남정미. 하지만 요즘 그녀는 개그우먼보다 '책방 옆집 여자'로 더 유명하다. 개그 못지않은 서평가로서의 매력을 폴폴 풍기는 덕이다. 그녀 옆에는 '책방 옆집 여자의 남자'이기를 소원하는 출판평론가 김성신이 함께한다. 자칭 '책방 죽순이·죽돌이'인 두 사람의 유쾌상쾌통쾌한 북톡카톡 스물한 번째 이야기는 <먼 북쪽>(마르셀 서루 지음 / 조영학 옮김 / 사월의책 / 327쪽)
성신 : 하이~ 정미씨? 확실히 12월이 되니까 매우 정직한 겨울이 오는군요. 이 추위에 어떻게 지내고 계신가?
정미 : 아! 출·퇴근길 양 볼따구니 후려치는 칼바람 때문에 매일매일 안면홍조증 걸린 촌 아가씨가 되고 있어요.
성신 : 원래 촌 아가씨가 본 모습으로 돌아가는 것이니, 그건 하등 문제될 것이 없고…. 어쨌든 이런 겨울날에는 싸돌아다니지 말고 방구석에 콕 처박혀서 소설책이라도 한 권 읽지 그래요. 요즘엔 뭘 읽어요?
정미 : 요즘 사마천의 <사기> 다시 읽기 시작했어요. 2015년에는 사기당하지 않아야지 하는 맴으루다가…. 헤헷~ 또 <먼 북쪽>이라는 소설도 읽었어요. 마르셀 서루라는 작가가 쓴.
성신 : 하하하 최신간 소설을 벌써 읽었군요. 그 작품 무지무지하게 재미있는데! 내가 좋아하는 근미래소설!
정미 : 아! 그런데 마르셀 서루라는 작가 이름이 왠지 어디서 들어 본 듯, 아닌 듯….
성신 : 역시! 잘나가는 서평 전문가답군요. 사실 내가 <먼 북쪽>이라는 작품을 찾아내게 된 사연이 있는데요. 마르셀 서루가 폴 서루의 아들이라고 하지요. 일전에 최고의 기행문학 중 하나라면서 내가 정미씨에게 강추했던 <아프리카 방랑>의 저자가 바로 폴 서루! 마르셀 서루는 바로 이 양반 아들!
정미 : 그래서 저도 찾아봤는데 그쪽 집안사람들 대단하더구먼요. 일가족이 전부 글을 쓰는 특이하고도 유니크한 집안!
성신 : 아 그래요? 나는 거기까진 몰랐네. 하여튼 대를 이어 작가가 되는 집안은 동서양 막론하고 그리 흔한 일은 아닌데…. 우리나라 김훈 작가도 2대 작가지요.
정미 : 아! 김훈 소설가네도?
성신 : 아버지 김광주 선생이 작가셨지요. 이봉창·윤봉길 이런 분들과 항일운동하시다가 광복 후 경향신문 문화부장까지 하셨던 분. 그분이 김훈 작가의 아버님이시죠.
정미 : 우와!
성신 : 아! 그러고 보니 또 있네요. 요즘 각광받는 한강 작가의 부친은 한승원 작가! 하지만 2대 작가가 흔치는 않아요.
정미 : 얼핏 '선대의 영향으로 작가로서의 기초를 남다르게 닦을 수 있었겠구나' 하는 생각도 들지만, 반면 선대의 명성이나 영향력에서 자유롭지 못했을 테니 훨씬 더 많이 노력해야 하는 부담도 있겠지요. 만일 우리 아버지가 코미디언이셨으면 나는 이 길을 절대 선택하지 못했을 것 같아요.
성신 : 내가 가만히 말씀 들어보면, 정미씨 아버님이 정미씨보다 훨씬 재미있으신 듯. 당장 지난주에도 안동 고향집에서 메주 쑤는데, 메주 닮은 애가 있어야 장이 맛있다면서 내려오라고 하셨다면서요? 하하하하~ 하나밖에 없는 딸에게 그런 말씀을! 그 이야기 듣고 한참 웃었네!
정미 : 울 아부지 쫌 미워!
성신 : 하하하~ <먼 북쪽> 소설 내용이나 좀 설명해 봐요. 혼자 사는 여자 주인공의 이야기라서 정미씨가 굉장히 공감했을 것 같기도 한데…. 하하하~ 아버님 말씀 계속 떠올라서 미치겠다!
정미 : 에잇! 하여튼 <먼 북쪽> 내용은 이래요. 때는 앞으로 30년 후쯤, 이야기의 배경은 시베리아의 극북(極北)이에요. 온난화 때문에 인간이 살 만한 곳은 극북 지역밖에 남지 않은 거죠. 이미 문명은 전쟁으로 모두 무너지고 굶주림이 인간성을 모조리 빼앗아버린, 한마디로 종말의 시대예요.
성신 : 설정부터 참 흥미롭죠?
정미 : 여자 주인공인 '메이크피스'예요. 번역하면 '평화 만들기'겠죠? 인사동 카페 이름이네요.^^ 하여튼 메이크피스는 매일 아침 권총 두 자루를 챙겨 암울한 도시 '에반젤린'을 순찰해요. 하지만 도시에는 그녀밖에 살지 않아요. 이 도시 사람들은 서로 싸우다 다 죽은 거예요. 혹한의 시베리아, 이 죽은 도시에서 메이크피스는 읽지도 못하는 책들을 무기고에 가져가 모으며 하루하루 고독하게 살아갑니다. 그러다 어느 날 우연히 한 명의 중국인 아이를 만나게 되는데, 그때부터 주인공의 운명은 전혀 예측할 수 없는 방향으로 흘러가기 시작하지요.
성신 : 이후 메이크피스가 길을 나서면서 만나게 되는 인간 군상들의 모습. 이후 소설은 주인공이 보게 되는 인간의 본성을 진절머리나게 묘사해 가지요.
정미 : 메이크피스가 종교인 마을에 들어갔을 때, 계략에 휘말려서 이유 없이 사형까지 당할 뻔하는데…. 아휴~ 소설 중간밖에 안됐는데, 주인공이 진짜 죽나 싶더라고요.
성신 : 하하하 스토리에 푹 빠지셨군.
정미 : 속고 속이고, 인간의 선의에 기대하지만 또 실망하고, 절망하고…. 정말 시간가는 줄 모르고 책장을 계속 넘기게 만들더라고요. 근래 보기 드물게 흥미진진한 스토리텔링이었어요.
성신 : 그런데 그거 알아요? 이 소설의 진짜 모델이 있다는 거요.
정미 : 아! 이 소설의 진짜 모델이 있어요?
성신 : 작가 마르셀 서루는 소설가일 뿐 아니라 다큐멘터리 작가이기도 하죠. 작가는 다큐 제작 일로 체르노빌 거주 금지구역에서 실제로 살고 있는 '갈리나'라는 여성을 취재했답니다. 그녀는 체르노빌 지역의 접근금지령을 무시하고 고향의 작은 마을로 돌아가 방사능에 오염된 땅에서 농사를 짓고 살고 있는데요. 거기서 마르셀 서루는 마치 인류의 먼 과거로 돌아간 것 같은 단순한 생활 속에서, 그 어떤 자기연민도 없는 한 여성의 자립심을 목격했다고 이야기합니다. 그때 작가는 문명에 찌든 우리의 나약함을 통감하면서 이 소설을 구상했다고 하네요.
정미 : 아! 이 소설이 무슨 메시지를 보내고 싶어 했던 건지 그 맥락을 정확히 알겠네요. 그리고 또 처음에 희한했던 것이, 무라카미 하루키의 후기가 실려 있더라고요.
성신 : 그렇지요, 미국작가가 쓴 이 소설에 일본작가의 후기라 좀 이상하지요.^^
정미 : 알고 보니 하와이에 있는 아버지 폴 서루의 집에 무라카미 하루키가 방문했을 때, 폴 서루가 자기 아들의 쓴 이 소설이 전미도서상 후보에 올랐다면서 추천을 하더래요. 그래서 하루키는 그 자리에서 '꼭 읽어보겠습니다'하고 약속을 했지만, 그러면서도 처음에는 그다지 큰 기대는 안 했던 모양이에요. 어쨌든 약속은 지켜야겠다는 생각에 그 책을 읽었는데….
성신 : 그렇지! 나도 내가 직접 고르는 책 아니면 영 읽기 싫더라고요. 하지만 별 기대 없이 그 책을 읽은 하루키는 깜짝 놀랐겠군요. 정말 재미있어서? 하하~
정미 : 그래서 일본에서는 이 책의 번역본이 무라카미 하루키의 번역이에요. 2010년 여름에 번역해야겠다고 생각했는데 이듬해 3월에 일본에서 지진과 쓰나미가 있었잖아요. 그 때문에 후쿠시마 원전이 작살나서 방사능 유출이 시작됐고요. 한마디로 시의성이 생긴 거죠.
성신 : 맞아요. 후쿠시마 원전 사고! 3월11일, 하필 내 생일이라 더 기억이 생생해!
정미 : -_- 갑자기 왜 뜬금없이 이 타이밍에서…, 자기 생일을…, 상기시키는 걸까요?
성신 : 아! 이제 석 달밖에 안 남아서… 헤헤~
정미 : 잠깐!! 이 시점에서… '삐릭!' 영화 <맨 인 블랙>에서 기억 지우는 그거, 뉴럴라이저 한 방 셀샷으로 쏘고! 으하하 슨상님의 생일은 이제 제 기억에서 싹 지워졌소!
성신 : 자꾸 그런 것으로 기억 지우는 짓이나 하니 머리가 나빠지지! 그거 배터리 남았으면 나한테도 한방 쏘시오. 정미 너를 아예 잊어버리게! ^^ 어쨌든 이 소설은 미래의 디스토피아를 묘사하는 SF소설의 외피를 가지고 있지만 읽으면서 자꾸 소름끼치더라고요. 우리가 아주 가까운 미래에 딱 저렇게 살 수도 있겠다 싶어서 말이죠.
정미 : 위대한 스토리텔링은 예지력도 가진다던데, 읽으면 읽을수록 머지않아 정말로 우리에게 다가올 수 있는 일이란 생각이 들더라고요.
성신 : 나는 책에서 이 대목이 잊혀지지 않아요. "세상은 이제 단순한 사실들밖에 남지 않았다. (중략) 아버지는 6개 국어를 하지만 못 하나 제대로 박지 못했다. (중략) 인생이 어때야 한다는 비전을 수만의 어휘로 포장할 능력도 있었지만, 정작 그 가치를 방어할 때는 힘 한번 제대로 써보지 못했다. 세상을 선하게 가꾸자는 주장으로 평생을 버티면서도, 그의 선은 이 땅을 손톱만큼도 바꾸지 못했다. 말로 선을 행할 수는 없는 법이다."
정미 : 이 소설이 결국 우리에게 하고 싶은 단 하나의 문장이 거기 나오는 군요. "말로 선을 행할 수는 없는 법이다."
성신 : 오호! 사무라이처럼 핵심을 단칼에 내려치는군요. 그렇지요. 결국 선을 행하는 것은 '실천'이라는 메시지! 그런데 노처녀 시집가는 것도 같소! 결국 '실천'의 문제라는 거요. ㅋㅋ
정미 : '말로 선을 행할 수' 없듯이, 슨상님의 말로 내 사랑을 행할 수는 없는 법이다!
성신 : 헉~ 당했다!
<정리 | 엄민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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