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백기의 절실함으로 본 '미생' 최대 인기 요인

'미생' 비록 우리가 그들 같은 엄친아는 아니지만
[엔터미디어=김교석의 어쩌다 네가] tvN 드라마 <미생>의 신입사원 장백기(강하늘)를 보면 같은 방송사에서 지난해 방영한 드라마 <몬스타>의 고등학생 정선우(강하늘)가 떠오른다. 정선우는 귀족 같은 가문의 품위 있는 도련님으로 성적과 음악실력, 리더십 등 모든 방면에서 전교 1,2위를 다투는 교내 로열패밀리 중에서도 최고의 엄친아다. 그러니 당연히 명문대에 진학했을 것이고 졸업 후 치열한 경쟁을 뚫고 국내 유수의 대기업인 원 인터내셔널의 신입사원으로 입사했다는 시나리오는 타당성이 있다. 물론 부모님의 꿈은 의사를 만드는 것이었으나, '몬스타' 활동을 하면서 이미 반항을 거하게 했기 때문에 진로가 바뀐 것도 큰 무리는 아니라고 본다.
정선우와 장백기 간의 차이는 <몬스타>와 <미생>의 차이와 같다. (참고로 <미생> PD와 작가 콤비의 전작인 <몬스타>를 못 봤다면 다시보기를 꼭 추천한다. 여의치 않다면 강하늘이 검찰총장아들이자 전교회장역으로 출연한 <상속자들>을 참고하자) 고등학생 엄친아와 신입사원 엄친아의 차이는 만화와 세상의 거리라 할 수 있다. 재밌는 것은 만화를 원작으로 한 <미생>이 그 만화적인 거리감을 없앴다는 데 있지만 말이다.
자신만만하지만 반듯하고 침착하며 우등생 이미지에 부합하는 태도와 실력, 그리고 자존심까지 인턴 동기 중 최고의 모범생이자 리더십을 갖춘 자타공인 1등인 장백기는 그래봐야 군대 신병 같은 신세의 신입사원이다. 유아독존으로 살던 그가 눈만 마주치면 누구에게나 고개를 숙여 인사를 해야 하고 고작 대리급 사수를 당해내지 못하고 입사 6개월도 안 돼서 이직을 알아볼 정도로 쩔쩔맨다. 교장과 독대를 하고, 운전기사를 데리고 다니던 정선우로서는 대중교통으로 출퇴근해야 하는 자신의 미래 모습을 상상도 할 수 없었을 것이다. 마음에 품은 동기 안영이(강소라)가 자신에게 관심을 보이지 않는 매뉴얼 밖의 상황에 어쩔 줄 몰라 부리게 되는 어설픈 허세는 최고급 온실에서 살던 정선우가 온실 밖으로 나와 장백기가 되는 과정에서 드러난 성격일 것이다.

이처럼 정선우가 성장해 장백기가 되는 변화 속에 <미생>의 히트 요인이 있다. 똑같이 능력이 출중한 엄친아라고 해도 장백기는 정선우와 달리 현실이란 바둑판 위의 한낱 바둑알이라는 결정적인 차이가 있다. 만화 속 엄친아 같은 배경을 다 떼어내고 회사의 조직원이 되어 그 또한 누구나 겪는 성장통을 앓는다. <미생>의 최대 인기요인으로 꼽히는 현실감각과 공감대는 이처럼 판타지성 캐릭터에 현실감을 불어넣은 한 수에서 나왔다. 장백기 같은 인물도 우리도 바둑알 같은 처지라는 것. 그 자각의 영향은 매우 크다. 그 바탕 하에 공분과 애환을 함께 누릴 수 있다.
판타지와 현실성을 배합하는 과정에서 <미생>의 독특한 점은 여타 직장물 드라마와 달리 오너 집안 자제가 등장하지 않는 것과 신입 여사원과 오너 일가 자제와의 사랑이 없다는 점이다. 그런 로맨스 소설 속에나 등장할 법한 남의 동네 이야기가 아니라 장백기마저도 박박 기어야 하는 녹록치 않은 현실, 즉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을 그리는 데 초점을 맞춘다. 신분상승 같은 신데렐라스토리 따위는 없고, 잘난 누군가도 예외가 없다는 점이 중요하다. 자신의 현재를 자각한 장백기가 선배의 문장 다듬기 과제에 골몰하는 절실함은 절실한 하루를 보내는 많은 시청자들이 <미생>에 자기도 모르게 감정이입을 하게 되는 지점이다.

물론, <미생>이 우리 일상의 복사지는 아니다. 경험이 없지만 그래도 무엇을 남겨야 하는 숙명을 짊어졌다고 하기에 신입사원들은 너무나 일을 잘한다. 사실, 우리가 장백기, 안영이와 같은 출중한 스펙을 가진 것도, 장그래(임시완)와 같은 승부사의 기질을 가진 것도 아니지 않는가. 오 차장(이성민), 김 대리(김대명)의 범접할 수 없는 성품과 능력 또한 사실적인 기업 문화의 반영이라기보다 판타지에 가깝다. 이런 판타지성 캐릭터의 존재는 <미생>이 현실의 퍽퍽함을 상기시키는 것을 넘어 희망을 주겠다는 일러두기다.
흔히들 <미생>을 만화 원작과 비교해서 보면서 현실성을 이야기하지만, <미생>의 김원석 PD, 정윤정 작가 콤비의 전작 <몬스타>로부터 출발해 바라보면 성장이란 코드가 두드러진다. 답답해 미칠 것 같던 장그래가 전사적인 분란을 일으킬 정도로 주목을 받고, 안영이가 선배들의 마음을 돌려세우며, 완성된 상사맨이라 생각했던 장백기가 오만을 버리고 재조립되는 과정을 지켜보면서 이들이 자리를 잡아가는 길을 응원하게 된다.
비록 우리가 그들 같은 엄친아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그들도 특별대우를 받는 특수신분도 아니다. <몬스타>의 엄친아를 <미생>은 만화적 설정을 거두고 누구나 걷는 길 위에 올려놓았다. 어려운 길이지만 잘 헤쳐 나갈 수 있고, 또 그래야만 하는 길 위에 장백기도 놓인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그 또한 우리 대부분의 처지와 별반 다르지 않는 바둑알이다. 사람들이 <미생>에 꽂히는 건 바로 이 지점이다. 거친 정글이지만 평등하다. 그 속을 헤쳐 나가는 그들의 성장과 성공은 곧 우리의 이야기다.
칼럼니스트 김교석 mcwivern@naver.com
*외부필자의 칼럼은 DAUM 연예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사진=tvN]
저작권자 ⓒ '대중문화컨텐츠 전문가그룹' 엔터미디어(www.entermedia.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Copyright © 엔터미디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