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축제 변천사.. 60년대 댄스 등 서구문화 유입, 70~80년대 탈춤 등 '민중성', 90년대 이후 오락·상업성 행사

박은하 기자 2014. 10. 3. 2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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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축제를 둘러싼 논란은 그 자체로 대학문화의 변천사였다.

1960년대 대학 축제는 '축전'으로 불렸다. 대학 진학률이 높지 않은 상황에서 대학 축제 역시 대학생들만의 행사라는 성격이 강했다. 포크댄스, 가장행렬 등 서구의 문화를 받아들이는 통로로 역할을 하기도 했다.

1970년대 축제는 학술제, 예술제, 체육제로 꾸려졌다. 1972년 박정희 대통령이 유신헌법을 통과시키자 대학가의 분위기는 침울해졌다. 웃고 즐길 때가 아니란 인식이 확산됐다. 1970년대는 대학 축제가 지녀야 할 정체성에 대한 모색도 이뤄졌다. 1978년 이화여대 학생들은 학내 토론 끝에 성 상품화 비판을 받던 메이퀸 행사를 폐지시켰다.

1980년대 대학 축제의 특징은 '민중성'이다. 1980년 광주민주화운동이 일어났다. 언론통제에도 불구하고 광주시민들이 계엄군에 의해 학살됐다는 소식은 대학가에 퍼져나갔다. 대학생들은 암울한 시대에 민주화를 위해 쓰러져간 시민들에 대한 죄책감을 공유했다. 축제는 대부분 군사정권을 반대하는 시위로 끝났다. 군사정권에 대한 저항으로써 민족적인 것이 강조되면서 탈춤, 마당극, 풍물 등이 축제의 '단골 레퍼토리'로 떠올랐다. 시국사건이 벌어지면 대학 축제부터 중단시키는 게 예사였다.

1990년대는 X세대가 출현한 시기다. 학생운동과 연계된 행사보다는 학내밴드 공연 등 문화행사로 축제를 구성하고자 하는 목소리가 나왔다. 하지만 축제에는 대학만의 독자적 문화를 담아야 한다는 인식은 여전했다. 2000년대 대학문화는 상업성 논쟁에 휘말렸다. 대학가에 돈을 들여 연예인을 초청했다. 술 중심의 축제 문화에 대한 비판도 이어졌고, 축제에서의 상행위도 성행했다. 최근 들어서는 대학 축제의 상행위가 유흥업소의 행태를 복제하는 수준까지 이르렀다.

<박은하 기자 eunha999@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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