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황과의 100시간] 羊을 안 듯 저희를 안아주세요
프란치스코 교황이 내일(14일) 한국에 온다. 예정대로라면 그가 한국에 머무는 시간은 98시간 30분. 100시간에 육박한다. 그 100시간 동안 세계의 이목은 한반도에 집중된다. 양(羊)을 어깨에 둘러멘 행복한 표정의 교황. 이제 곧 우리가 맞을 '행복한 100시간'의 주인공이다.

존경하올 교황 성하!
우리나라를 방문해주신 교황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여름휴가도 하지 않으시고 저희들을 찾아와 주셔서 너무 고맙습니다. 우리들은 교황님을 우리나라에서 뵙게 되어 너무나 기쁘고 행복합니다. 저는 지난 2월 추기경 서임식에서 교황님께서 저에게 "나는 한국을 사랑합니다"라고 처음 말씀하셨을 때의 감동을 다시 느끼는 것 같습니다. 교황님의 방문이 우리나라 전체의 참 기쁨과 행복의 잔치가 되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우리 개인과 사회가 좀 더 사랑이 많아지고 평화가 흘러넘치는 공동체가 되는 계기가 되기를 소원합니다.
교황님이 먼 데서 찾아오는 벗처럼 친근하고 다정하게 느껴지는 것은 저만의 생각이 아닐 것입니다. 우리나라의 많은 사람은 소탈하고 겸손하신 교황님의 모습에 감동받고 있습니다. 어느 시인의 "교황님의 함박웃음은 갓 베어낸 벼 포기를 가슴 가득 안고 환히 웃던 고향집 할아버지의 미소와 닮았고, 그래서 교황님의 미소에서 오늘도 인생에서 왜 사랑만 남게 되는가를 깨닫는다"는 말이 가슴에 와 닿습니다. 특히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과 함께하시는 모습에 매우 깊은 감동을 받습니다. 성목요일에 소년원을 찾아가 아이들의 발을 정성스럽게 닦아주시는 교황님의 모습은 교회가 진정으로 있어야 할 곳이 어디인지 분명히 알려주고 계십니다. "여러분은 왜 광장에 모여 프란치스코만 외치나요? 우리에게 중요한 분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라는 교황님의 말씀대로, 교황님을 통해서 주님의 모습을 만나고 마음을 다해 그분을 사랑하게 되기를 바랍니다.

교황님! 우리나라는 60여년이 넘도록 남북으로 분단되어 아직도 대결과 분열의 상태로 대치하고 있습니다. 형제자매들이 생사도 모른 채 남북으로 갈라져 이산가족의 큰 아픔을 안고 살아가는 이들을 위해 특별히 기도해주시기 바랍니다. 교황님! 세월호 참사로 사랑하는 가족을 잃은 이들을 위로해 주시고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들의 아픔도 어루만져 주시기 바랍니다. 또한 슬픔에 잠겨 우는 이들의 눈물을 닦아 주시고 상처받은 이들을 안아 주십시오. 교황님의 애정 담긴 환영의 몸짓이나 행동은 우리에게 큰 위안이 됩니다. 교황님께서 말씀하셨던 것과 같이 공동선을 위해서 일하는 것은 그리스도인의 임무입니다.(이탈리아와 알바니아의 예수회 학교 학생들과의 만남·2013년 6월 7일 바오로 6세홀)
그러나 공동선을 구현하기 위해 우리 신앙인 각자가 먼저 명심해야 할 점이 있습니다. 우리의 활동이 서로의 잘못을 탓하고, 나와 다른 생각을 가진 이를 비난하고 배제하려 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 신앙인은 삶 속에서 예수님을 구현하는 '통로'가 되어야 합니다. 모든 일에 예수님의 복음을 바탕으로 살아야 합니다. 복음을 통하지 않고 복음이 목적이 되지 않는다면 우리가 외치는 소리는 모두 덧없는 것이 되고 말 것입니다.
오늘날 세계 곳곳에서는 평화가 위협받고 있습니다. 교황님의 방문이 우리나라뿐 아니라 세계를 향한 큰 울림이 되어 평화와 화해를 추구하고 모든 사람이 깊은 연대감을 갖게 되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교황님과의 만남을 계기로 우리 모두가 성 프란치스코의 기도처럼 미움과 분열, 불신과 절망이 있는 곳에 사랑과 일치, 믿음과 희망을 전하는 이가 되기를 희망합니다.

교황님의 이른바 3대 유행어처럼 우리가 "용기를 가지고 앞으로 나갈 수" 있기를 희망하며 "저희를 위해 늘 기도해주세요." 그리고 또 "만나뵙게 되기"를 바랍니다.
교황님이 우리나라를, 그리고 우리를 사랑하시는 것처럼 우리도 교황님을 사랑합니다.
천주교 서울대교구장
※염수정 추기경의 편지는 8월 15일자 '서울주보'에 실릴 내용으로 서울대교구의 허락을 받아 게재합니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걸어온 길
1936년 12월17일 호르헤 마리오 베르고글리오,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 출생
1958년 12월7일 예수회 입회
1967~1970년 성 요셉 대신학교 신학 전공
1969년 12월13일 사제 수품
1972~1979년 예수회 아르헨티나 관구장
1980~1986년 산미겔 철학 신학 대학 학장
1986년 3월 독일에서 박사 학위 취득
1992년 5월20일 부에노스아이레스 대교구 보좌주교로 임명
1992년 6월27일 주교 수품
1997년 9월27일 부에노스아이레스 대교구 부교구장 주교
1998년 2월8일 부에노스아이레스 대교구장
2001년 2월21일 추기경 서임
2005년 11월8일~2011년 11월8일 아르헨티나 주교회의 의장
2013년 3월13일 제266대 교황으로 선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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