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더그라운드. 넷]강호의 도리를 아는 기자
"강호의 도리를 아는 기자." 7월 2일, 한 인터넷 게시판에 올라온 기사캡처 사진에 붙은 이름이다. 기사 내용을 보면 한 일본 AV 배우의 내한 소식을 다룬 것이다. 지난 2013년 9월 기사다. 댓글을 보면 칭찬 일색이다. "캬…'으리'를 아는 기자님이네요." "스크랩하겠습니다."
AV 배우라고 딱히 야한 사진이 있는 것은 아니다. 풋고추를 베어 먹는 설정사진이 특이하긴 하지만. 누리꾼의 찬사를 불러일으킨 것은 기사 본문 중 언급된 그녀의 작품 리스트다. "사토 유리는 1991년생 가나가와현 출생으로 154㎝의 키에 92-59-88의 늘씬한 각선미를 자랑하며 2011년에 AV 업계에 데뷔했으며, HEYZO-0336 HEYZO-0411 HEYZO-0421, Tokyo Hot-0411 Tokyo Hot-n0811, SMBD-67 등의 작품을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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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리꾼의 화제를 모았던 한국경제TV의 일본 AV 배우 내한 소개 기사 | 한국경제TV 홈페이지 캡처 |
눈치 빠른 사람은 안다. 저 번호가 가진 의미를. 특이한 또는 볼 만한(?) AV를 소개하는 인터넷 글에 흔히 달리는 댓글은 이것이다. "품번은요?" 토렌트 등에서 다운로드를 할 때 작품명보다는 주로 품번으로 검색이 이뤄지기 때문이다.
기사 작성자는 한국경제TV의 김주경 기자다. 그에게 소감을 묻고 싶었다. 그런데 연결이 쉽지 않았다. 김 기자의 선임이라고 밝힌 한국경제TV의 담당팀장은 '넘버링' 가지고 그 기사가 이슈가 된 건 아는데 그쪽으로는 문외한이라서…"라면서 기자가 직접 연락하도록 해주겠다고 했지만, 하루가 지나도 연락은 오지 않았다.
연락을 기다리는 중 이튿날, 뜻밖의 전화를 받았다. 이 코너에서 소개한 '숨막히는 뒤태'의 주인공 박성기 기자다. 해당 AV 배우 초청행사를 알려주고, 김 기자의 기사에 사용된 '품번들'을 박 기자가 알려줬다는 것이다. 박 기자가 '뒤태' 말고 에로 쪽에도 전문적 식견을 가지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니까 이건 박 기자가 개입된 작품?
"사실이에요. 박성기 기자가 기사 작성에 도움을 줬죠." 어렵게 통화가 된 김주경 기자의 첫마디다. 일부에서 심지어는 여기자가 아니냐는 추측도 나왔지만 아직 장가도 가지 않은 총각기자다. "유명한 AV 배우가 방한했는데, 과거 활동을 소개하지 않을 수는 없잖아요. 그런데 제목을 그대로 쓰기는 민망하고…."
기자는 김 기자를 접촉하기 전에 저 품번들을 바탕으로 제목을 찾아봤다. HEYZO 0336은 '여신들의 정사'라는 제목의 AV 타이틀이다. HEYZO 0421는 '물에 젖으면 흥분하는 그녀'…. 대충 여기까지만.
"실은 저도 다운받아 보지는 않았습니다." 계속되는 김 기자의 말이다. 불법다운로드를 옹호하거나 유도하기 위해 품번을 기사에 적은 게 아니라는 것이다. "어차피 다 불법이잖아요. 합법적으로 다운로드할 길도 없고. 솔직히 비디오가게들이 문을 닫으면서 한국 에로영화가 죽었지 않습니까. 규제나 제제가 너무 많다보니 성인물이 버틸 수 없는 거죠. 우리가 북한이나 공산국가도 아니고, 막을 수도 없는데 비현실적인 규제를 남발하다 보니까…." 한참 열변을 토하던 김 기자가 "지금까지는 개인 생각"이라고 톤을 낮췄다. 기자도 남자다. 그 충정 이해한다.
< 정용인 기자 inqbus@kyunghyang.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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