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설의 골키퍼 '야신' 은퇴
[사진으로 보는 이 주일의 小史]
제138회 - 5월 넷째 주

구 소련의 골키퍼 레프 야신이 국가대표로 활동하던 시절 페널티 킥을 막아내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2014년 6월 18일 오전 7시, 대한민국 축구팬들의 시선은 온통 브라질 쿠이아바 아레나 판타날 경기장에 쏠려 있을 것이다. 상대는 FIFA랭킹 18위 강호 러시아. 우리보다 무려 37단계나 위에 있다. 하지만 한국은 필승을 다짐한다. 러시아 골키퍼는 '야신'이 아니기 때문이다.
2010년 이래, 축구선수 최고의 영예인 'FIFA 발롱도르' 상은 바르셀로나의 리오넬 메시와 레알 마드리드의 크리스티아누 호날두에 돌아갔다. 세계의 축구팬들은 이들의 현란한 발 재간과 화려한 슈팅에 환호하고 감탄했다. 하지만 이들도 철벽 같은 골키퍼의 최종수비를 뚫어야만 한다.
1963년, 유럽 최고의 축구선수를 뽑는 발롱도르는 공격수가 아닌 골키퍼에게 돌아갔다. 그 해 발롱도르는 전설적인 구 소련의 골키퍼 '레프 이바노비치 야신'의 몫이었다. 독일의 올리버 칸을 비롯해 레알 마드리드의 안방마님 이케르 케시아스, 그리고 유벤투스의 수문장 잔루이지 부폰도 그의 벽을 넘지 못했다.
1929년 모스크바의 노동자 집안에서 태어난 야신은 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소련에 축구 붐이 일어나던 49년, 실업 팀인 디나모 모스크바에 입단하며 축구선수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188cm의 훤칠한 키에 유난히 긴 팔과 손가락을 가진 그는 골키퍼로서 천부적인 체격이었다.
당시 모스크바 팀에는 알렉세이 코미치라는 걸출한 골키퍼가 활약하고 있어 야신은 좀처럼 출전 기회를 잡기 힘들었지만 그 경험은 오히려 커다란 득이 됐다. 백업요원으로 활동하며 아이스하키 팀의 골키퍼를 맡아 수비 시 각을 좁히는 세밀한 감각을 손에 익혔기 때문이다.
1954년, 기회가 찾아왔다. 코미치가 개인사정으로 팀을 떠나자 주전을 꿰차며 소련리그 4번의 우승과 2번의 준우승을 이끌었고 국가대표에 합류한 후에는 56년 올림픽 금메달과 60년 제1회 유로선수권대회 우승의 금자탑을 세웠다.
뭐니뭐니해도 그의 진가는 페널티킥 상황에서의 수비능력이었다. 대표팀에서 활동하며 11m를 두고 키커와 벌인 총 270회의 1대1 승부에서 무려 150회를 막아냈다. 56%에 달하는 절정의 세이브 능력을 보여준 것이다.
1971년 5월 27일 모스크바 레닌 스타디움은 위대한 스포츠인의 은퇴 경기를 지켜보기 위해 10만 인파가 모여들었다. 동서냉전의 시기였지만 서유럽의 팬들도 그의 은퇴를 아쉬워하며 기꺼이 철의 장막을 넘었다. 당대 최고의 축구영웅이었던 펠레와 에우제비오, 베켄바우어의 모습도 보였다.
수 많은 경기를 치르며 잦은 부상에 시달리던 야신은 이날 팬들의 뜨거운 환호를 받으며 경기장을 떠났고 소련은 그에게 최고의 영예인 레닌훈장을 수여했다.
1990년, 소련의 해체와 함께 그도 세상을 떠났지만 그의 이름을 딴 '야신상'은 월드컵 무대를 통해 후세에 기억되고 있다.
손용석기자 stone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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