쇠줄로 다리 매달아 만든 조교 영어 의역따라 현수교로 불려

2014. 6. 24. 21:52
음성재생 설정 이동 통신망에서 음성 재생 시 데이터 요금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글자 수 10,000자 초과 시 일부만 음성으로 제공합니다.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강상헌의 만史설문] 〈21〉 현수교(懸垂橋)와 조교(弔橋)

남해안의 남해. 창선도 등 무인도까지 68개 섬 널린 바다를 깔고 앉은 아름다운 남해군의 큰 섬이다. 사람들은 대개 이 섬을 남해도(南海島)라고 부르지 않고 그냥 '남해'라고 부른다. 그곳으로부터 멀리 사는 사람들 중에는 남해를 섬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사람도 꽤 된다.

이유가 있다. 비교적 이른 시기에 이 섬과 육지(경남 하동군)를 잇는 연륙교(連陸橋)가 놓여 배가 아닌 차를 타고서 들락거릴 수 있게 된 까닭이다. 그 다리 덕분에 남해도 주민들이 실질적인 '뭍사람'이 된 것이 1973년 6월이다. 그 다리는 우리나라 최초의 현수교였다. 특이한 모양이 주변 경치와 어울려 멋진 이국(異國) 풍경을 빚는다.

우리나라 최초의 현수교 남해대교. 아름다운 남해안의 상징 중 하나다.세계일보 자료사진

오래전 서울 한 신문사의 입사시험장. 상식 과목 문제로 '吊橋'라는 두 글자 한자단어가 제시됐다. 경험담이다. 답을 제대로 적지 못했다. 나름 순발력과 상상력을 동원해 '장례(葬禮) 때 죽은 이를 저 세상으로 건네주는 다리'라는 식으로 답안을 작성했던 것 같다.

시험이 파한 후 누군가가 "현수교가 조교야!" 말하자 주위에서는 일제히 "아!"하는 탄식이 쏟아졌다.

조교(弔橋)는 현수교의 다른 이름이었다. 특별히 다리의 이름으로 쓸 때는 '弔'와 소리도, 뜻도 같은 '吊'자를 쓴다는 얘기도 확인했다. 이제는 누구도 현수교를 조교라 하지 않는다. 또 예전에 '조교'라고도 했다는 사실조차 대부분 모른다.

'잘살아 보세' 구호(口號)가 전국을 메아리 치던 그때 외국의 사진에서나 보던 매끈한 다리가 그 바다에 놓인 것이다. 다리 아래로는 엄청나게 큰 배들이 마주보며 지나갈 수도 있다고 했다. 1969년, 이웃 동네 전남 여수에 정유공장이 처음 세워졌을 때처럼 온 나라가 들썩거렸다. 큰 사진과 요란한 제목, 신문만 보고도 가슴이 먹먹했다.

최근, 일 때문에 남해안 지역에 갔다가 그 다리 남해대교(南海大橋)를 건너며 여러 생각이 떠올랐다. 또 여수에서 포스코 공장 부근 광양까지를 직결하는 이순신대교도 건넜다. 뽕밭이 푸른 바다가 됐더라는 구식 비유 '상전벽해(桑田碧海)'라는 말도, '그때가 벌써 옛날'과 같은 어감의 숙어 '금석지감(今昔之感)'도 새삼스럽게 마음에 다가왔다.

이순신 장군이 돌아가신 그 노량바다 관음포를 내려다보는 거대한 현수교 이순신대교는 하늘 위를 달리는 착각마저 들게 한다.세계일보 자료사진

그 자리에 새 다리로 바뀌어 서 있는 남해대교는 660m 길이의 현수교다. 하동에서 이 다리를 지나 섬 남해로 들어서면 이내 바다 풍경 좋은 이락사(李落祠)를 만난다. 전사하신 이순신 장군을 처음 모신 곳에 주민들이 세운 사당이다. 그 앞이 노량해전의 현장 관음포.

2013년 개통된 이순신대교 또한 현수교다. 광양만을 가로질러 전남 여수와 광양을 연결한다. 총길이는 2260m, 너비는 25.7m에 왕복 4차로다. 탑의 높이는 270m로 현수교 콘크리트 탑으로는 세계에서 가장 높다는데, 전 과정을 우리 기술로 건설했다고 개통 당시 언론은 특기(特記)했다.

탑(塔)과 탑 사이를 케이블로 연결하고 그 케이블에서 쇠줄을 늘어뜨려 다리 상판을 매단 다리가 현수교(懸垂橋)다. '매단다'는 懸, '드리운다'는 垂, 그 말의 뜻을 챙기면 현수교의 모양이 떠오른다. 영어의 '서스펜션 브리지'(suspension bridge·매달린 다리)에서 온 이름일 터이다. 처음에는 그 다리를 '조교'라고도 불렀다. 신문사 시험에 출제된 인연이겠다.

동아시아에도 크기는 작지만 모양이 비슷한 다리가 있었다. '매단다리', '출렁다리'라고도 했던 그 다리가 조교(弔橋)였다. '적교'로 읽는다고도 했다. 일본에선 낚시 조를 쓴 '조교(釣橋)', 중국에선 동아줄 삭을 쓴 '삭교(索橋)'라고도 했다. 서구 토목기술이 들고 온 이름 '서스펜션 브리지'의 의역(意譯)인 현수교가 단박에 그 이름들을 다 밀어내고 자리를 가로챈 것이다.

조문할 조(弔)자의 갑골문(오른쪽)과 그 (그림)문자의 원래 모습을 상상한 그림. 끈 달린 작살 또는 활을 둘러맨 사람의 모습이다. 이락의 저 '한자정해'에서 발췌했다.

조의(弔意), 조문(弔問) 등 장례에 주로 쓰이는 단어 弔는 왜 매단다리의 이름에 쓰이게 됐을까? 끈을 매단 작살(또는 활)을 어깨에 멘 사람의 그림이 갑골문의 弔였다. 세월 지나며 '사냥하는 사람'의 뜻은 거의 없어지고 '조문하다'는 뜻으로 주로 쓰이게 된다.

그러나 활이나 끈의 이미지는 남아 조교(弔橋)처럼 '매달다'의 의미로도 종종 쓰이게 된 것이다. 동아줄과 연결된 작살이나, 활대에 걸어서 켕기는 줄인 시위의 모양을 상상하면 '매달다'라는 뜻이 함께 전해져 오는 이유를 상상할 수 있겠다.

짐승들과 함께 밀림에서 살던 인간들이 다른 마을의 상가(喪家)에 조문을 갈 때에는 활과 같은 무기를 가지고 갈 필요가 있었기 때문에 그런 뜻이 번져나지 않았겠느냐 하는 것도 (중국) 문자학의 추측이나 짐작 중 하나다.

현대의 역사다. 우리나라 최초의 현수교 남해대교와 역시 현수교로 가장 최근에 지은 거대한 이순신대교를 함께 생각하며 풀어본 다리 이름들은 또한 그 이면에 잔잔한 이야기를 보듬고 있다. 그 이름을 '남해조교(南海弔橋)', '이순신조교(李舜臣弔橋)'로 불러보자고 하면 사람들은 무어라 할까?

강상헌 언론인·우리글진흥원장 ceo@citinature.com

한자는 그림이다. 그림에서 출발해 기호와 같은 모양으로 변전(變轉)해온 상형(象形)문자다. 기호화(記號化)가 거듭되면서 점차 처음의 그림 형태를 찾기 어려워졌다. 또 그 기호들이 3000여년의 긴 역사와 함께 서로 결합하고 분리되며 새로운 모양과 뜻을 짓는다. 한자가 복잡하고 어렵게 느껴지기도 하는 이유일 것이다.

한자를 생각할 때 가장 중요한 점이 '한자는 그림이다'라는 명제다. 한자의 본디가 그림이기 때문에 그 본디를 놓치지 말아야 한다는 얘기다. 우리 말글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한자와 한자어의 바른 새김을 위한 첫 계단이다.

사람 인(人)은 그림(상형문자)이다. 활 궁(弓)도 그림이다. 人과 弓을 합쳐 조(弔)라는 새로운 뜻과 소리의 글자를 만든다. 얼핏 활[弓]에 人이나 ?과 같은 사람 글자와는 다른 막대기가 붙어 있지 않느냐고 반문할 수도 있다. 그림에서 기호로 변하는 과정에서 그렇게 변한(간략화한) 것이다.

서로 다른 의미를 가진 상형문자끼리의 조합(組合)이 다른 글자를 짓는 한자 구성의 몇 가지 원리 중 하나다. 뜻을 모았다고 하여 회의(會意)문자라고 한다. 사람[人·?]과 나무[목(木)]가 모여 쉰다는 뜻 휴(休)가 되는 것과 같은 방식이다. 길할 길(吉)자는 선비 사(士)와 입 또는 말의 뜻 구(口)의 합체다. '선비의 좋은 말'은 상서(祥瑞)롭다는 의미가 됐다.

본디인 그림(상형문자)을 바탕으로, 마치 레고 블록을 이어붙이고 떼고 구부리고 하는 놀이처럼 한자의 여러 기호(그림)들은 다양한 결합으로 여러 뜻을 빚는 마술을 부린다. 그 과정은 시(詩)를 대하는 듯한 별세계다. 오래 볼수록 아름답다.

ⓒ 세상을 보는 눈, 세계일보 & Segye.com

Copyright © 세계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