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정윤의 내밀한 미술사] <3> 시공간 초월하는 풍속화

2014. 6. 12. 2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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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소재 사실적 표현.. 회화 통해 '유익한 즐거움' 선사

얼마 전 타계한 작가 최인호씨는 '외삼촌 손응성 화백'이라는 에세이에서 "(외삼촌은) 정자의 기왓장을 오페라글라스로 일일이 세어서 그리시고 나뭇가지들을 일일이 세어서 그렸다"는 일화를 소개하고 있다. 손응성이 그린 마룻바닥에 펼쳐진 '고서'(Museum SAN 소장)는 이러한 세밀한 기법을 그대로 보여준다. 세월을 머금은 종이의 얼룩과 당장이라도 읽어 내려갈 수 있게 정확히 쓰인 글자들을 보고 있노라면 먹의 향기가 캔버스 위로 전해오는 듯하다. 또한 화중화(畵中畵)의 기법을 도입하여 서양의 풍속화를 연상케 하는 손바닥 크기만 한 엽서의 이미지도 책의 왼쪽 편에 그려 넣었는데, 한지와 나무 바닥이 주는 모노크롬적인 느낌과는 대조적인 컬러를 사용함으로써 화면에 생동감을 더해주고 있다.

이 작품의 특징으로는 이미지와 텍스트가 균형을 이루고 있는 점을 꼽을 수 있다. 오른편의 텍스트는 각기 다른 두 서적에서 인용되었다. 먼저 첫 부분은 명심보감에 나온 부녀자의 네 가지 덕목인 '부덕, 부용, 부언, 부공(婦德, 婦容, 婦言, 婦工)'의 일부가 적혀 있다. 그 다음은 조선 중기의 문신 신흠(1566∼1628)이 쓴 '야언(野言)'에 쓰인 한 구절이 등장한다. 시인은 조용히 눈 날리는 겨울밤 방속에 앉아 화로에 차를 달이고 술이 익는 정경이야말로 인생의 즐거움이라고 노래하고 있다. 그러나 책장에 적힌 연대는 고종이 직위 했을 당시의 연호 '광서 12년 병술'이라고 표기되어 있는 점으로 보아, 캔버스 위의 글들은 출처가 각기 다른 구절들을 수집하여 구성했음을 알 수 있다. 반면에 왼쪽의 이미지는 17세기 무렵의 배우들이 연극 무대에 선보였을 법한 장면들, 특히 렘브란트가 살았던 바로크 시대의 네덜란드 풍속화와 유사한 장면을 보여준다. 종이와 부채 등이 널브러진 실내에서 한 남자가 뒤쪽에서 여인의 손을 잡으며 구애하고 있고, 여인은 이를 거부하는 듯한 몸짓을 보이고 있다. 마치 이 장면은 사람들에게 들켜서는 안 될 장면임을 암시하듯, 무대의 오른편에서는 열린 커튼 사이로 이 남녀를 목격하는 다른 여인을 등장시켰다.

손응성의 '고서'.(1950년대, 캔버스에 유채, 53×65㎝, 이미지 제공: Museum SAN)비원의 풍경을 많이 그린 화가로 유명한 손응성은 도자기나 고가구를 비롯한 한국적인 소품의 정물화도 많이 제작하였다. 사실주의적인 기법을 바탕으로 한〈고서〉는 동양의 텍스트와 서양의 이미지를 대비시키고 있다.

혹자는 손응성의 작품에서 조선 시대의 텍스트와 근세 유럽의 이미지가 공존하는 것을 어색하게 여기기보다는, 전통적인 문인화의 모던한 해석이라는 인상을 받을 수도 있다. '고서'는 서양 풍속화의 장면이 전달하는 그림적 전환(pictorial turn)과 고서의 한자 구절이 의미를 전하는 언어적 전환(linguistic turn)이 팽팽히 맞서고 있는 작품이다. 이러한 이미지와 텍스트의 대립구조는 보는 이들의 호기심을 증폭시킨다. 매우 치밀하게 그려진 극사실주의적인 화폭 속에서 무한히 확장하는 시공간을 체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소소한 일상의 즐거움을 노래한 한 고매한 선비의 시구와, 오랜 세월에 걸쳐 많은 이들이 귀감으로 삼았을 도덕적인 메시지를 읽다 보면 상반된 정서를 보이는 서양극의 한 장면이 선택된 배경이 궁금해진다. 마치 글과 그림이 서로 충돌하는 것처럼 보이면서도 미묘한 균형감을 이루고 하는 것이야말로 이 그림의 숨겨진 의도인지도 모르겠다.

'고서'속 엽서 그림을 보고 있으면, 300년이나 앞서 그려진 니콜라스 마스(1634∼1693)의 '엿듣는 사람'이 언뜻 떠오른다. 암스테르담의 렘브란트 아틀리에에서 그림을 배운 마스는 스승의 남성스럽고 장엄한 화풍과는 달리, 일상의 모습을 담은 친숙한 소재의 풍속화를 많이 제작하였다. 특히 비밀스러운 남녀의 만남과 그것을 목격하는 하녀를 그린 장면을 반복해서 그렸다. 1657년에 제작된 '엿듣는 사람'의 화면은 실내의 기둥을 중심으로 좌우로 나뉘어 있고, 극적인 빛의 효과를 이용하여 계단 끝에 기대어 서있는 하녀의 존재를 부각시키고 있다. 빈 와인 잔을 든 중앙의 하녀는 한손을 입에 갖다 대어 자신이 남녀의 대화를 몰래 듣고 있음을 암시함과 동시에, 그림 속에서 벌어지고 있는 흥미진진한 상황으로 우리를 안내해 주고 있다. 계단의 윗방에서는 남녀그룹이 여흥을 즐기고 있고, 화면의 오른쪽 구석에는 남의 눈을 피하기라도 하듯 한 쌍의 남녀가 현관 부근의 부엌으로 들어가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무엇보다도 이 작품에서는 남녀의 육체적인 쾌락을 암시하는 모티브가 그려졌다. 화면 앞쪽의 남자가 벗어놓은 강렬한 붉은색 상의와 무기는 육욕을 충족시키기 위해 무방비 상태가 되었음을 보여준다. 또한 부엌의 고양이가 요리된 닭을 훔쳐 먹고 있는 장면 역시 부도덕한 사랑의 거래가 벌어질 것임을 짐작하게 한다. 그러나 이러한 은밀한 시각적 단서와 함께 화가는 보는 이들에게 교훈적인 내용을 상징적으로 전달하기 위해 중앙의 기둥 위에는 결혼의 여신인 유노의 흉상을 그려 넣기도 했다. 눈앞에 펼쳐진 남녀의 행동을 통해 궁극적으로 전달하려는 내용은 결혼한 남녀가 도덕적으로 행해야 할 미덕이다. '고서'의 엽서에서 남녀 간의 은밀한 장면을 목격한 순간을 포착하고 있듯이, 마스의 그림에 등장하는 엿듣는 하녀 역시 시각적 수단을 통해 관자에게 도덕적인 각성을 유도하고 있다.

흔한 일상의 소재를 다룬 풍속화는 단순히 현실세계를 비추는 거울과 같은 역할을 하기 위해 그려진 것이 아니다. 오히려 캔버스 속에서 벌어지는 상황을 통해 관자들이 자신들의 삶이나 생각을 비춰볼 수 있게 하는 것에 중점이 맞춰져 있다. 예술작품이 갖는 이러한 작용은 이미 고대 로마의 시인 호라티우스가 말한 '유익한 달콤함, 혹은 즐기고 도움이 되는 것(utile dulci)'이라는 개념에서부터 시작되었다. 르네상스나 바로크 시대의 회화는 선과 형태 그리고 색의 향연이 펼치는 시각적 유혹은 물론이고, 인생의 교훈을 배울 수 있는 유익함이 깃들어 있어야 한다는 전통적인 이상을 추구하고 있었다. 1976년 암스테르담에서 열린 '유희와 교훈을 위하여'라는 전시회는 17세기의 풍속화가 갖고 있는 양면성, 즉 미적 감상의 자유로운 유희와 그 속에 담긴 깊은 교훈적인 의미를 총망라해서 대중에게 선보였다. 이것을 계기로 역사화나 종교화보다는 열등한 장르로 분류되었던 풍속화의 분야에서도 도상학적 해석이 활발히 이루어지게 되었고, 우리들의 마음과 정신을 감화시키는 고차원적인 메시지가 흔한 일상의 장면을 그린 그림 속에 숨겨져 있다는 것이 널리 알려졌다. 당시의 전시회 카탈로그의 표지를 장식했던 것이 바로 마스가 그린 '엿듣는 사람'의 주인공인 하녀의 모습이었다. 계단 끝에선 하녀야말로 풍속화가 가진 교훈적인 내용의 세계로 안내해주는 매개자였고, 그녀의 몸짓과 표정이야말로 보는 이들의 도덕적 감성을 자극하는 상징적인 표현으로 기억에 남게 된 것이다.

니콜라스 마스의 '엿듣는 사람'(1657년, 캔버스에 유채, 92×122㎝, 도르트레흐트 미술관) 렘브란트의 제자였던 니콜라스 마스는 종교화나 역사화 대신 풍속화를 많이 그렸다. 특히 레이스를 뜨는 여인이나 하녀들의 일상생활과 같은 실내 풍속화의 소재를 선호했다. 단순히 현실의 모습을 캔버스위에 투영한 것이 아니라, 보는 사람의 양심을 일깨우는 도덕적인 메시지도 담고 있다.

손응성의 펼쳐진 고서에서는 원근감을 느끼게 하는 요소는 전혀 없이 화면의 평면적인 느낌이 강조되었다. 동양화에서 일반적으로 보이는 구도적인 특징이기에 책장의 좌우가 대립하는 느낌이 훨씬 효과적이다. 반대로 니콜라스 마스의 '엿듣는 사람'을 보고 있으면 우리의 시선이 쉴 새 없이 캔버스 안쪽으로 깊숙이 이동하고 있음을 알게 된다. 치밀하게 계산된 원근의 기법을 바탕으로 등장인물들과 상황이 맞아떨어지게 배치하였고, 그런 시선의 움직임에 따라 관자의 심리적인 변화까지 유도하고 있다. 이런 시각적 장치를 통해 도덕적인 메시지를 의식하게 되고, 현대를 사는 우리들에게도 변함없이 내려오는 주제를 통해 동양과 서양, 그리고 과거와 현재를 크로스 오버하는 시공간을 발견하게 된다. 이것이야말로 미술작품의 감상을 통해서 얻을 수 있는 즐거움이라 할 수 있다.

양정윤 미술사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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