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파식적] 쌀농사·밀농사

임석훈 논설위원 2014. 5. 11. 1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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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 음식은 쌀 등의 곡식 알갱이를 '삶는' 방식인 반면, 서양은 밀이나 보리를 반죽해 '굽는' 형태로 발전해 왔다. 그 결과 동양에서는 쌀밥, 서양의 경우 밀을 이용한 빵과 맥주를 주로 먹게 됐다. 이처럼 동·서양의 음식문화가 달라진 것은 농업 환경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쌀농사가 잘 되려면 모내기 때는 기온이 서늘하고 성장기엔 기온이 높고 습해야 한다. 이런 기후를 보이는 곳이 동·남부 아시아, 즉 온대몬순기후 지역이다. 중국·인도·인도네시아·타이·베트남 등이 쌀 생산 상위권을 휩쓰는 이유다.

유럽 지역은 쌀농사에 불리한 해양성 혹은 지중해성 기후다. 자연히 쌀농사 대신 척박한 토양에서도 살아남는 밀에 의존하게 됐다. 이처럼 농사짓는 여건이 다른 만큼 농부들의 수고에도 차이가 난다. 쌀농사는 한해 88번의 손이 간다고 할 정도로 신경을 써야 할 게 많다. 우리나라 농촌에 아름다운 전통으로 전해 내려오는 품앗이의 이면에는, 남의 손을 빌어야 할 만큼 쌀농사가 쉽지 않다는 사실이 숨어있다. 이에 비해 밀은 봄에 심으면 그해 여름에 바로 수확이 가능하다. 쌀에 비해 생육이 빠르고 손이 덜 간다.

이같은 농사관점에서 동·서양 문화차이의 원인을 분석한 논문이 지난 8일 세계적 과학저널 '사이언스'에 실렸다. 미국 버지니아대 심리학과 박사 과정의 토머스 탈헬름은 이 논문에서 "서로 다른 농경 전통이 동·서양의 문화적 차이를 낳았다"며 "한국·일본이 경제발전에도 불구하고 서양에 비해 개인주의적 성향이 덜한 이유를 설명해 준다"고 주장했다. 쌀 농사는 밀 농사에 비해 농사 기간이 길고 주위 일손을 빌려야 할 때가 많아 쌀농사 지역 주민들은 이웃과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려 애쓴다는 것이다.

이로 인해 '나', '부분'보다는 '우리', '전체'를 중시하는 문화가 생겼다는 게 그의 견해다. 서구식 식생활이 확산되고 '나'를 먼저 챙기는 사람들이 많아지는 요즘, 동양문화의 특징인 '우리'와 '전체'를 잊고 살고있는 건 아닌지 되돌아볼 때다.

임석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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