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억 대결', 이세돌-구리 10번기 개막

"구리는 바둑인생 최고의 선물이다. 패한다고 해도 후회는 없다." (이세돌)

"이세돌과의 대결이 기대된다. 그와 60세 될 때까지 겨루고 싶다." (구리)

드디어 세기의 대결이 시작된다. '이세돌-구리 10번기'가 오는 26일 중국 베이징 캉위엔루이팅호텔에서 운명의 1국을 시작한다.

10번기는 수년간 변죽만 올리며 '한다 만다' 반복하다, 작년 11월 몽백합배 4강전 연회식에서 후원사인 몽백합그룹 니장건 회장의 입을 통해 개막이 확정되었다. 말로만 듣고 글로만 대하던 그 10번기가 무려 70년 만에 부활하여 호사가들의 구미를 돋우고 있다.

▲ 이세돌-구리 10번기가 오는 26일 개시된다.

구리는 중국에서 90후 세대에 밀려나가고 있어 효용이 떨어졌고, 이세돌도 국내외 6개 기전에서 연속 준우승을 차지하는 등 한국 내 비중이 급속도로 줄어들고 있는 추세다. 따라서 일각에서는 이세돌과 구리는 한중에서 각기 일인자의 풍모를 잃어버린 원년(元年)이라고 평가절하하기도 한다. 또한 최적의 상황에서 붙어야만 10번기의 의미가 살아날 것이라는 보수적인 시각도 '10번기는 희대의 라이벌전'이라는 대목에서는 결국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다.

83년생 동갑내기 이세돌과 구리는 필생의 라이벌이다. 약간 이세돌 쪽으로 기운다는 느낌도 있지만, 독보적인 영웅만이 존재했던 바둑계에 그들처럼 난형난제도 사실상 드물다. 세계대회 우승횟수만 해도 이세돌 14회, 구리 7회로 최근 십년 간 한중대결 구도를 이끌었던 걸물.

▲ 이세돌-구리는 현존 최고의 라이벌로서 손색이 없다. 비록 치수고치기는 아니지만 10번기의 패자는 큰 상처를 받을 것이다.

조금만 더 시계를 거꾸로 돌려보자. 이세돌은 작년 삼성화재배 결승에서 탕웨이싱에게 0-2로 패해 무관이 된 이후 국내외 기전에서 6연속 준우승이라는 참패를 기록했다. 구리는 2013년 1회 몽백합배 결승에서 17세의 미위팅에게 1-3으로 패배하여 그 역시 국내외기전에서 무관이 되었다.

그러다 10번기가 다가오자 둘 모두 페이스를 끌어올린 것도 똑같다. 각기 자국에서 우승상금 2000만원 급의 미니기전 하나씩을 따냈다. 1월12일 구리가 먼저 용성전을 우승하며 2012년 10월 아함동산배 이후 1년 2개월 만에 무관에서 탈출했다. 그러자 이세돌은 1월22일 KBS바둑왕전에서 4연패를 노리던 랭킹1위 박정환을 상대로 괴력을 발휘하며 1개월여의 무관 생활을 청산했다.

1월부터 매달 마지막 주 일요일에 한판씩 두어지는 이 10번기는 70년 만에 벌어지는 10번기라는 시대적인 의미는 차치하고 개인적으로나 국가적으로나 매우 중차대한 의미를 지닌다. 이 승부에서 승리하는 쪽은 수년간 현 지위를 누릴 수 있을 것이고, 만약 패하는 쪽은 하락세에 불을 붙이고 기름을 얹은 것과 동일할 것이다. 이에 대해 바둑리그 감독출진 한종진은 "10번기가 치수고치기는 아니지만 패배하는 쪽에서는 다시 회복하기 힘들 것으로 본다."고 말해 그들이 가지는 부담을 간접 설명했다.

▲ 지난 11월 대회 조인식에서 선전을 다짐하는 두 사람.

디테일하게 이세돌과 구리의 전적을 살펴보자. 세계대회에서 10승12패1무로 구리가 앞선다. 중국갑조리그는 6승3패로 이세돌이 앞선다. 그 외 4차례 초청대회가 있었는데 2승2패. 따라서 총 18승17패1무로 이세돌이 반 발짝 앞서 있다. 세계대회는 근 10년 정도의 누적 성적이고 갑조리그는 비교적 최근이다.

결정력이 좌우되는 세계대회 결승전 성적은 둘 간의 첫 세계대회 결승이었던 2009년 LG배 에서 구리 2-0 승, 2011년 비씨카드배에서 이세돌 3-2 승, 2012년 삼성화재배에서 이세돌 2-1 승. 따라서 10번기가 일종의 결승전이라고 친다면 결정력에서는 이세돌이 약간 앞선다고 할 수 있다. 사족이지만, 2009년 백담사에서 벌어진 LG배 대결은 이세돌의 컨디션이 최악일 때 나온 전적이었다.

한국기사는 대부분 이세돌의 우세를 점쳤다. 여류 김혜림은 "객관적인 데이터로 앞서는 만큼 이세돌이 이길 것으로 본다."고 말했고, 여류정상인 조혜연도 "두 사람 모두 서서히 올라오는 분위기라서 점치긴 힘들지만, 최소한 1국에서는 가족들이 함께 응원을 온다고 하니 이세돌이 유리하지 않을까 한다."고 역시 이세돌의 우세를 점쳤다. 다만 한종진은 "후반 집중력의 싸움이라고 본다. 시간도 비교적 길다는 것도 변수다. 예측할 수 없다."고 조심스러운 반응을 보였다.

▲ 류스밍 중국기원 원장. 이세돌 구리. 니장건 후원사대표.

이 10번기는 중국기원이 주최하고 MLILY몽백합배 협찬사인 장수헝캉가구과학유한공사에서 협찬한다. 승자에게는 500만 위안(약 8억9000만원)이 주어지며, 패자에게는 20만 위안(약 3600만원)의 출전비가 주어진다. 만약 최종 5대5가 되면 상금을 반으로 나눈다.

한편 최근 중국기원에서 보내온 대회 요강에 따르면, 매 대회는 한국시간 오전10시에 시작하며 점심시간은 따로 없다. 휴게실에 식사가 준비되며 선수는 자유롭게 식사나 요기를 할 수 있다. 제한시간은 각 4시간(3시간 55분 사용 후 초읽기 1분 5회). 제1국에서 돌 가리기를 한 후, 2국부터는 매 대국 돌을 바꾼다.

한편 바둑사이트 타이젬에서는 26일 오전10시부터 김영삼 9단의 해설로 '이세돌-구리 10번기'를 생중계한다.

진재호 바둑평론가 jjhbaduk@daum.net

위 기사는 세계최고의 바둑사이트' 타이젬'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