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사주 주려고 제왕절개 해야 할까요?

칼럼니스트 김나희 2013. 12. 24. 1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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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첨금 5천원인 복권을 만원 주고 사는 셈입니다

[연재] 김나희의 불량정보 거기 서!

간혹 좋은 사주팔자에 맞춘 날짜와 시간에 제왕절개를 하겠다는 사람을 봅니다. 진통 유도약물을 써서 유도분만을 원하는 날짜와 시간에 맞추어 하는 곳도 있더군요. 그런 분만을 '자연분만'이라고 부를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만.

2011년 11월에 이런 뉴스를 보았습니다. 11월 11일에 유독 제왕절개술이 많았다는 것입니다. '111111'이란 생년월일을 주기 위해 일부러 그 날 제왕절개를 하는 사람들이 있었답니다. 의학적으로 필요하지 않은데도 괜히 그 날 수술로 나온 아기들이 있다는 뜻입니다. 외우기 쉬운 생년월일은 좋은 점도 있겠지만 주민등록번호 도용이 쉬운 등 나쁜 점도 있을 텐데, 왜 무리해서 수술까지 하는지 이해가 가지 않더군요. 첫 만남의 순간부터 아기를 존중하지 않는 태도라고 여겨졌습니다.

몇 년도의 무슨 띠가 좋다고 그 해에 아기를 낳으려는 사람들이 많다는 이야기도 들었습니다. 글쎄요. 입시경쟁이나 취직경쟁이 더 힘들기만 할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자연출산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지만, 여전히 우리나라의 제왕절개 비율은 약 35%로 높습니다. 반면 세계보건기구는 의학적으로 필요한 제왕절개의 비율은 5~15%라고 밝히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높은 제왕절개 비율에는 고령임신의 증가, 자연분만을 여유있게 하기 어려운 구조 등의 사회적 이유가 깔려 있습니다. 그 중 일부는 '길일'을 택해서 아기에게 좋은 사주팔자를 갖게 하려는 미신 때문으로 분석됩니다. 비슷한 이유 때문에 중국의 제왕절개 비율도 50%에 육박하여 매우 높습니다.

태어날 아기에게 어떤 사주팔자나 어떤 12지가 좋다는 속설은 검증되지 않았습니다. 당첨금이 얼마인지 알 수 없는 복권인 셈입니다. 하지만 의학적 필요가 없는 제왕절개술의 단점은 명확하게 측정됩니다. 복권의 가격은 꽤 비싼 셈이지요.

제왕절개로 태어난 아기는,

-집먼지진드기나 반려동물 등의 흔한 원인에 대해 알레르기가 생길 확률이 자연분만의 다섯 배입니다.

-알레르기 비염, 천식, 셀리악병(밀가루 알레르기), 인슐린 의존성 당뇨병, 장염, 아토피 피부염, 음식 알레르기, 흡입항원 알레르기, 대사 증후군 등 많은 질환의 위험도가 증가합니다. 특히 자가면역질환 위험도가 증가합니다.

-출생 후 7년까지도 여전히 장내 세균총이 자연분만 아기와 차이를 보입니다.

-모유수유에 성공할 확률이 낮아져서, 모유수유로 인한 장내 세균총 자극이라는 좋은 효과를 놓치게 될 우려가 커집니다.

-수술 과정의 마취제의 효과로, 태어나서 한동안 또릿또릿하게 깨어있지 못합니다.

왜 그런 걸까요? 아기 쪽에서 보면, 스스로 나올 준비를 하고 출산 신호를 보내는 과정도 정상적인 태아 발달의 일부입니다. 세상으로 나올 때를 아기가 결정한다는 것이죠. 태아와 태반과 산모의 몸이 서로 보내는 신호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증폭되다가 급격히 강하고 규칙적인 자궁 수축으로 이어집니다. 이 자궁 수축은 아기에게는 온몸이 압박되는 스트레스가 되는데, 이 출산 스트레스는 정상 만삭아에게 매우 유익하다는 이야기는 지난 번 칼럼에서 자세하게 다뤘지요.(칼럼 '진통지옥, 무통천국!' 정말 그럴까요? )

그리고 아기는 엄마의 산도를 통과하면서 우리와 함께 살아가는 좋은 세균들을 처음으로 접촉하고 피부에 붙이게 됩니다. 세상을 만나기 직전에 미리 좋은 세균들로 온 몸을 코팅하는 것이죠. 이렇게 질내 세균총이 피부와 입안에 닿고 아기의 위장관 안에 들어가서(microbial seeding) 정상적인 장내 세균총이 자리잡게 됩니다. 장내 세균총은 위장관 안에서 음식을 발효시키고 면역계를 훈련시키고 질병을 일으키는 세균을 억제하고 장의 발달을 조절하고 비오틴과 비타민 K 등의 호르몬을 생산하는 등 많은 일을 하고 있습니다. 장내 세균총은 심장, 콩팥, 간장 등의 다른 장기처럼 중요한 일을 하고 있지만 그 존재가 잘 인식되지 않는다는 의미로 '잊혀진 장기'라고 불리기도 합니다. 이 정상 세균총은 자가면역질환을 예방하는 한편 유익한 세균들은 더불어 살게 하는 이중적인 역할을 수행합니다. 안으로는 내 몸이 스스로를 공격하는 자가면역질환도 예방하고, 밖으로는 해로운 세균들의 침범도 막아주는 것이죠.

제왕절개로 태어나면 이렇게 좋은 세균들을 몸에 붙이는 기회가 사라집니다. 그래서 제왕절개로 태어난 아기들에게 여러 질환들의 발병 가능성이 높아진다고 봅니다. 제왕절개로 태어난 아기들에게 유산균을 복용시켜 정상 세균총이 자리잡게 하려는 연구도 있었는데 효과는 아직 미지수라고 합니다.

물론 제왕절개가 꼭 필요한 경우가 있고, 이런 경우 자연분만을 고집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입니다. 안전하고 위생적인 제왕절개술의 발달이 지난 100년 동안 모성사망과 신생아사망을 감소시킨 것이 사실이기 때문입니다. 무엇보다 아기나 엄마의 안전과 생명이 가장 중요하지요. 아기의 위치가 둔위 등으로 난산이 예상되는 경우, 이전의 제왕절개로 질식분만이 어려워진 경우, 아기가 자궁 속에서 산소부족을 겪거나 태변을 본 경우, 태반이 산도를 가로막고 있어 출산 때 대량출혈이 예상되는 경우, 질식분만 과정에서 엄마의 감염이 아기에게 옮겨질 위험이 있는 경우, 질식분만과정에서 아기가 위험해질 수 있는 질병이 있는 경우 등에는 제왕절개가 필요합니다.

이렇게 의학적 필요에 의한 제왕절개를 한 어머니들은 아기를 위해 최선의 선택을 한 것입니다. 하지만 좋은 사주를 주겠다는 이유만으로 제왕절개를 택하지는 마십시오. 마치 최고 당첨 금액이 5000원인 복권을 만 원 주고 구입하는 것처럼, 잘 해야 밑지는 선택입니다.

*경희대학교 한의과대학을 졸업한 한의사(한방내과 전문의)이며 국제모유수유상담가이다. 진료와 육아에 차가운 머리, 뜨거운 가슴이 둘 다 필요하다고 믿는다. 궁금한 건 절대 못 참고 직접 자료를 뒤지는 성격으로, 잘못된 육아정보를 조목조목 짚어보려고 한다. 자연출산을 통해 낳은 아기를 모유수유로 키우고 있는 중이며 대한 모유수유한의학회 운영이사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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