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세훈의 원과 네모] 축구, 럭비를 통해 본 만델라의 인생철학

넬슨 만델라 전 남아공 대통령의 장례식이 17일 끝났다. 만델라는 자신의 고향 마을에 묻혀 굴곡이 심한 인생을 마감했다. 만델라는 축구와 럭비를 너무 사랑했고 그 두 종목을 이용해 흑백 인종 차별 및 갈등을 해소했다. 만델라가 럭비와 축구에 대해 어떤 말을 했고 그걸 통해 어떤 리더십과 보여줬고 어떻게 사람들을 감동시켰을까. 축구와 럭비 등 스포츠계에 만델라가 남긴 족적을 살펴보면 그가 왜 세계적인 지도자로 추앙받는지를 잘 알 수 있다.영감은 자기가 갖고 있는 것, 그 이상을 끌어낼 수 있다=만델라가 사람들을 감동시킬 때 자주 쓴 단어가 바로 영감이다. 만델라는 럭비월드컵에 앞서 럭비대표팀 주장 프랑소아 피에나르를 불러 리더십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피에나르는 "솔선수범하는 리더가 진정한 리더"라고 답했다. 그 때 만델라는 피에나르의 발언을 존중하면서 자기 자신이 갖고 있는 리더십에 대한 철학을 표현했다. "솔선수범하는 리더는 조직이 갖고 있는 힘 100%를 끌어낼 수 있다. 나는 영감을 주는 리더가 좋은 리더라고 생각한다. 리더가 조직원들에게 영감을 주면 조직원은 자기가 갖고 있는 것, 그 이상을 해낼 수 있다. 지금 남아공은 위대함에 굶주려 있다. 남아공도 우리가 갖고 있는 것, 그 이상을 해야 한다." 만델라는 스포츠가 갖고 있는 영감을 주는 역할도 잘 알았다. 만델라는 남아공월드컵축구대회 유치에 성공한 뒤 "스포츠는 사람들에게 영감을 주고 하나로 묶는 힘이 있다. 아프리카에서 축구는 큰 인기를 끌고 있으며 사람들 마음 속 특별한 곳에 자리 잡고 있다"면서 "그게 바로 2010년 월드컵이 아프리카 대륙에서 열리는 게 무척 중요한 이유다. 우리 남아공이 월드컵을 유치하는 첫 아프리카 국가가 된데 대해 영광과 겸허함을 동시에 느낀다"고 말했다.

상대를 먼저 존중하고 나를 더 낮추는 겸손=만델라는 누구를 만나든지 먼저 상대를 존중했다. '그 사람의 진짜 심정을 알고 싶다면 권력을 주어보거나 자신보다 낮은 사람을 어떻게 대하는지를 봐라'는 격언 그대로였다. 만델라는 럭비월드컵 직전 대표팀을 만나면서 선수들의 이름을 거의 외웠다. 한나라 대통령이 국가대표 선수들의 얼굴과 이름을 모두 익힌다는 것은 정말 힘들다. 대통령이 얼굴을 알아보고 이름을 부르면서 먼저 악수를 청한다면 그 악수를 받는 선수의 기분은 어땠을까. 만델라는 럭비대표팀 주장을 처음으로 만난 순간에도 "만나게 돼 영광이다. 흥분된다. 나를 만나러 와줘 고맙다"면서 자신이 직접 차를 만들어 주장에게 건넸다. 다른 사람들 만날 때마다 만델라는 먼저 고마워했고 자신을 돕는 사람들에게도 항상 관심을 가지며 챙겼다.갈등을 해결하는 길은 복수가 아니라 화합과 용서다=만델라는 흑백 화합을 주창했다. 대통령이 된 뒤 그동안 억압받은 걸 설욕하리라고 예상한 백인들의 생각은 완전히 빗나갔다. 만델라는 프리토리아 대통령 집무실에서 떠나기 위해 짐을 싸는 백인 직원들에게 "두려워서, 피부색 때문에, 다른 언어를 써서 그만두려고 한다면 신중하게 생각해 달라. 떠나거나, 남거나 모두 여러분의 의지이며 권리다. 다만 나는 여러분이 남아서 남아공을 빛나는 나라로 만들기 위해 최고 능력으로 최선을 다해주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또 만델라는 "용서는 영혼을 자유롭게 한다", "백인들은 우리 적이 아니라 동료이며 파트너다", "우리(흑인)는 아량, 용서, 연민을 통해 그들(백인)을 놀래켜야 한다",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면 비판하지도 말라"며 백인들에 대한 복수를 주장하는 흑인들을 진정시켰다.내가 먼저 변해야 타인의 변화를 기대할 수 있다=만델라는 변화를 추구했고 자신부터 변했다. 로벤섬에서 27년 동안 옥살이를 하면서 복수심이 어찌 생기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러나 만델라는 복수는 또 다른 복수를 부를 뿐 용서와 화합을 가져올 수 없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래서 만데라는 "시대가 바뀌었으니 우리도 바뀌어야 한다"면서 "우리가 바뀌지 않는데 어떻게 주위가 바뀌고 다른 사람이 바뀌기를 기대할 수 있겠는가"라고 말했다. 그래서 럭비대표팀은 국가를 배웠고 그래서 월드컵 직전에 흑인빈민가에 가서 흑인 어린이들에게 럭비를 가르쳐줬다. 만델라도 세계 방방곡곡을 돌아다니며 남아공에 투자해달라며 몸을 낮췄다.아무리 고통스러워도 나는 무릎 꿇지 않는다=만델라의 불굴의 의지는 대단했다. 그건 이루 다 말하지 않아도 세계 모두가 알고 있는 사실이다. 그가 로벤섬에서 있을 때 그를 지탱해준 것은 노래와 시구였다. 윌리엄 어니스트 헨리가 쓴 '인빅터스'라는 시가 대표적이다. '정복되지 않은 사람들'이라는 의미의 라틴어인 '인빅터스'에는 "I am the master of my fate, I am the captain of my soul"이라는 문구가 나온다. 지옥, 폭행, 잔인함, 분노, 눈물, 공포 속에서도 "내 인생의 주인은 나고 내 영혼의 선장도 나이기 때문에" 굴복하지 않겠다는 내용이다. 만델라는 'ozisikilili africa'라는 노래도 좋아했는데 그 노래도 영감을 주는 노래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만델라는 그렇게 숱한 고난과 고통 속에서 기다리고 또 기다리며 인내를 배웠다. 만델라는 "아프리카 사람들은 자유를 위한 오랜 투쟁 속에서 인내와 기다림을 배웠다"면서 "FIFA가 월드컵 개최권을 아프리카에 준 것은 우리의 오랜 기다림이 충분한 가치가 있는 일이라는 것을 증명해줬다"고 말했다.나는 지금 어린이가 된 기분이다=만델라는 고령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어린이와 같은 마음을 갖고 있었다. 남아공이 월드컵축구대회 유치권을 따낸 날 만델라는 "나는 지금 15세 때로 돌아간 느낌"이라고 말했다. 그게 만델라가 85세 때 한 말이다. 월드컵축구대회 개최를 얼마나 학수고대하며 기다려왔는지를 알 수 있는 멘트다. 만델라는 "내가 로빈 섬에 있을 대 월드컵으로 가는 유일한 통로는 라디오뿐이었다. 축구는 죄수들에게 유일한 기쁨이었다"고 회고했다. 만델라는 1994년 대통령이 된 뒤 자기 급료의 3분의 1을 자선사업에 썼다. 럭비월드컵 기간 중에는 회의를 하다가도 남아공 대표팀 결과에 크게 기뻐할 정도로 순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