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찬욱 감독, 10년만에 밝힌 '올드보이'의 그로테스크한 전말 (인터뷰)

[TV리포트 = 조지영 기자] 한국 영화사에 한 획을 그은 박찬욱(50) 감독의 '올드보이'(03, 에그필름 제작)가 올해 10번째 생일을 맞았다. 스무 살에 영화를 본 관객은 서른 살이 됐고 서른 살에 '올드보이'를 접한 관객은 어느덧 마흔 줄이 됐다. 함께 늙어가는 처지라고 생각하니 어딘가 짠해지는 동시에 남모를 동지애(?)가 생긴다. 10년 전 진한 향기를 남겼던 '올드보이'가 이제 은은한 잔향을 뿌리며 관객과 함께 나이를 먹어가고 있다.
일본의 츠지아 가론 작가의 만화를 원작으로 한 120분짜리 '올드보이'는 당시 청소년관람불가 등급을 받았음에도 전국 326만 관객들 동원하며 흥행에 성공했다. 파격적인 액션신과 생각지도 못한 반전, 금기시했던 근친상간까지. 여러모로 스크린을 발칵 뒤집어 놓을만한 작품이었다. '올드보이'의 소문은 국내에 그치지 않았다. 박찬욱 감독만의 센세이션한 연출력과 스토리텔링은 바다 건너 해외에서도 많은 호평을 받았고 명작으로 떠오르며 전 세계 씨네필에게 '박찬욱'이란 세 글자를 각인시켰다.
박찬욱 감독은 모두에게 한편의 추억으로 자리 잡은 '올드보이'를 10년 만에 꺼냈다. 강산이 한 번 바뀐 만큼 더 좋아진 영화 상영 시스템으로 디지털 리마스터링을 시도했다. 필름이 가지고 있던 스크래치도 지우고 전체적인 색 보정도 마쳤다. 그리고 10년 전에는 차마 하지 못했던 '올드보이'의 전말도 털어놨다. '거장' 박찬욱, 그동안 간질간질했던 입을 어떻게 참았나 모르겠다.

◆ '올드보이' 이후 10주년, 꿈같은 우연의 연속
Q. 10번째 생일을 맞은 '올드보이'다.
"10년의 세월이 흘렀다니 감회가 새롭네요. 제 영화는 잘 안 보는 편인데 이번에 디지털 리마스터링한다고 다시 봤네요. 사운드를 죽이고 장면만 죽어라 봐서 온전하게 감상하지는 못했어요. 5초 보고 끊어 10분 작업하는 등의 과정을 거쳤죠. '올드보이' DVD를 만들면서 코멘터리를 녹음했는데 그 때 이후 처음 보네요. 오는 20일 시사회를 하는데 때 10년 만에 만나는 '올드보이'를 온전히 감상할 수 있을 것 같아요."
Q. '올드보이'를 만든 후 10년간 박찬욱 감독은 어떻게 변했나?
"사실 10년이라는 세월이 주는 큰 의미는 없어요. 개인적으로 4개의 장편영화를 더 만들었고 동생(박찬경)과 함께한 작품('청출어람')도 생겼고, 영어권 영화('스토커')도 만들었네요? 그간 담배도 끊고…. 많은 일이 있었네요. 하하."
Q. 해외 팬도 상당한데 10주년이 된 '올드보이'의 해외 반응은 어떤가?
"해외 판매도 2004년께 됐고 소개된 것도 그쯤이니 다들 놀라죠. '벌써 10주년이 됐느냐?'라며 반겨주기도 하고요. 우연의 일치인지 리메이크버전인 미국판 '올드보이'가 10주년 날짜와 한주 차이로 개봉해요. 마치 맞춘 것처럼 됐는데 실제로 그렇지는 않고요. 세상일은 꿈같은 우연이 참 많네요(웃음)."
Q. 미국판 '올드보이' 어떨 것 같나?
"일단 많이 기대돼요. 남자 배우들은 기대 안 되고 미도를 연기할 엘리자베스 올슨(마리 역)이 제일 기대돼요. 하하. 농담이에요. 조쉬 브롤린도 그렇고 어떻게 나올지 궁금해요. 조쉬 브롤린과는 통화도 하고 이메일을 받은 적도 있거든요. 이번에 예고편을 보니까 분장 때문인지 완전 다른 사람이 됐더라고요."
Q. 스파이크 리의 '올드보이'가 박찬욱 표 '올드보이'를 뛰어넘을 수 있을까?
"뛰어넘느냐의 문제는 아니에요. 얼마나 미국화를 시켰는지가 쟁점이죠. 개인적으로 미국영화처럼 쓰이고 보여으면 좋겠어요. 제 '올드보이'를 모르는 관객이 스파이크 리 감독의 '올드보이'를 본다면 진짜 미국 영화처럼 생각할 정도로 미국화로 변한 '올드보이'를 기대하고 있어요."
Q. 박찬욱 감독에게 '올드보이'는 어떤 의미가 있나?
"'올드보이' 개봉 이후 영어 각본이 많이 들어왔죠. 그 계기로 미국의 에이전시랑 계약하기도 했으니 그런 부분에서 제일 의미가 있지 않을까요? 지금 딱 잘라서 이야기하자면 제 경력이 정확히 한복판에 있거든요. 앞 뒤로 4편씩 만든 셈이니까 회고하기엔 딱 좋은 시기인 것 같아요."
Q. 디지털 리마스터링은 어떤 작업인가?
"리마스터링을 했다고 편집이 달라지거나 이야기가 바뀌는 부분은 없어요. 사운드도 그대로죠. 그냥 그림만 손봤다고 생각하면 돼요. 필름에서 디지털로 바꾸면서 낡은 프린트 느낌과 스크래치, 먼지도 없어졌고요. 색도 원래 제가 생각하던 색과 가까워졌고요. 대신 필름이 디지털화돼서 입자가 거칠어진 부분은 있어요."
Q. 필름 고유의 느낌을 좋아하는 관객도 있지 않을까?
"물론 그런 관객도 있겠죠. 몇몇 감독은 아직도 디지털 상영 방식을 싫어하기도 하죠. 하지만 전 반대에요. 먼지나 스크래치가 제 작품에 보이는 게 정말 싫어요(웃음). 저는 디지털로 상영하는 걸 선호하죠. 촬영은 필름으로 찍는 게 좋지만 나중에 극장에서 봤을 때 비 내리는듯한 자글거림도 없고 먼지도 안보여서 좋아요. 무엇보다 쉐도우의 음영이 잘 표현됐죠. 콘트라스트는 원래 '올드보이'가 강하기 때문에 그냥 뒀어요."

◆ 귀차니즘이 만든 최고의 장도리 액션신
Q. '올드보이'를 만들 당시엔 애정 때문에 객관적인 판단이 힘들었을 텐데, 10년 만에 본 '올드보이'를 냉정하게 평가해보면 어떨까?
"'올드보이'를 만든 직후에 느꼈던 부분들이 지금이라고 별반 다르지 않아요. 그때 잘못했다는 점은 여전히 안타깝고 잘했던 점은 여전히 뿌듯해요. 영화 한 편을 완성하기까지 여러 번 보고 많은 사람과 토론하면서 심사숙고해 결정하기 때문에 후회하거나 부끄럽지는 않아요. 한계는 한계대로 남아있으니까요."
Q. 그렇다면 말할 수 있는 범위에서 '올드보이'의 잘못한 점과 잘했던 점은 무엇인가?
"절대 말할 수 없어요. 하하. 부족한 부분은 감추고 싶지 드러내고 싶지 않아요(웃음). 잘했던 점은 오프닝이 좋았다는 것이죠. 자살남(오광록)의 넥타이를 주먹으로 쥐고 있는 오대수(최민식)의 모습이 참 좋아요. 대게 영화사들의 로고가 다 올라오고 영화가 시작되는데 '올드보이'는 아니잖아요. 주먹이 나오면서 초반부터 폭발하는 지점이 좋죠. 준비동작 없이 단도직입적으로 관객을 긴장하게 만드는 부분이 마음에 들어요."
Q. 감독으로서 좋아하는 '올드보이'의 장면은 무엇인가?
"앞서 말한 오프닝과 오대수가 자신의 고등학교를 찾아가 과거를 회상하는 장면이요. 과거와 현재의 오대수가 교차 편집되는 장면과 이우진 누나의 정사 장면을 목격하는 장면까지. 잊고 있던, 묻어뒀던 과거를 발견하면서 형상화되는 장면의 효과가 좋았어요. 오대수와 미도가 정사를 나눈 뒤 이우진이 몰래 들어와 수면 가스를 뿌리는 장면도 생각나네요. 수면 가스에 취해 잠든 오대수와 미도 사이에 나란히 누워 미도 몸을 만져보잖아요. 아마 그때 관객들은 이우진이 미도에게 분명 못된 짓을 할거라고 생각했을 거에요. 그런 그로테스크함에서 오는 아름다움이 있죠."
Q. '올드보이' 이후엔 여성성이 강한 영화가 많지 않았나?
"그렇네요. '올드보이'가 굉장히 남성성이 강한 영화였죠. '내가 이렇게 박력 있었던 때가 있었구나' 싶어요. 하하. 아마 제 남성성의 정점을 찍은 작품이 '올드보이' 같아요. 최민식을 포함해 박력 있고 활력이 넘치는 에너지가 가득한 배우들이 많았죠. 저만의 남성성 아드레날린이 몰린 영화 같아요. 미도(강혜정)가 진실에서 소외되긴 하지만 그게 '올드보이'의 스토리니까 나쁜 점이라기 보다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죠. 그 뒤엔 답답해서 여성성이 강한 영화를 많이 했죠. '친절한 금자씨'(05)의 이영애, '싸이보그지만 괜찮아'(06)의 임수정도 그래서 하게 됐고 '박쥐'도 사실 여성성이 강한 영화죠. 김옥빈 캐릭터도 그렇고 송강호가 연기한 상현도 내면에는 여성성이 숨겨져 있죠. 김해숙도 마찬가지고요. 따져보니 '스토커'(13)도 있네요. 다음 영화는 남성성이 강한 영화를 하고 싶어요. 10년 전 '올드보이'에서 느꼈던 아드레날린을 느끼고 싶네요."
Q. '올드보이'의 명장면은 장도리 액션신인데, 그 장면은 어떻게 만들었나?
"솔직히 장도리 액션신은 롱테이크가 아니었어요. 굉장히 샷을 많이 쪼개는 작업을 거쳐야 하는 장면이었죠. 원래 액션신을 안 좋아하는데 많은 장면을 찍어야 하니 '언제 이 많은 걸 찍는담'이라며 귀찮아했거든요. '공동경비구역JSA'에서 총격신 찍는 것도 '다른 감독 데리고 와서 이 장면만 좀 찍어라'고 할 정도로 싸우는 장면을 싫어해요. 찍기 싫은 장면을 찍어야 하니 멋진 액션신을 찍어봐야겠다는 목표를 세우고 힘을 냈죠. 역사에 남을만한 화려한 장면을 만들고 싶었어요. '오대수와 이우진(유지태)의 격투도 아닌데 여러 감정을 담아야 하나?' 싶기도 했고요."
Q. 귀차니즘이 만든 최고의 명장면이다.
"그렇다. 기교적으로 복잡하게 찍을 필요가 없는 장면이었죠. 핵심을 찾기 시작했어요. 여러 사람에게 둘러싸인 오대수의 모습을 담고 싶었고 아무에게 이해받지 못한 남자의 고독이 중요했죠. 또 영문도 모른 채 갇혀있다 나온 피로감을 포인트로 두고 싶었죠. 그걸 정확히 표현하는 데는 거리를 둔 롱테이크가 제격이었죠. 롱테이크는 현명한 선택이었다고 자부해요. 카체이싱이나 액션신을 잘 찍는 류승완 감독이나 최동훈 감독은 정말 대단한 거 같아요. 위험하고 조마조마한 작업을 어찌나 잘하는지. 진짜 감탄스러워요(웃음)."
Q. 실제로 공포영화를 잘 못 보지 않나?
"폭력 행위가 있는 장면이 제 영화에서 꼭 등장하는데 그 장면이 정말 번듯한 액션 시퀸스라고 불릴 만큼 찍지 못해요. 제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점은 폭력 행위가 가지고 있는 물리적인 부분이나 감정, 고통, 두려움이 중요하죠. 옛날에는 무서운 영화를 좋아하고 공포 영화 팬이라고 할 만큼 많이 봤어요. 물론 화질이 나쁜 작은 화면의 비디오로 볼 때만요. 요즘엔 화질과 소리가 엄청나서 못 보겠더라고요(웃음). 모 감독이 '장화, 홍련'(03, 김지운 감독) 안 무섭다고 해서 봤는데 무서워 죽는 줄 알았어요. 김지운 감독 옆에서 봤는데 중간에 나갈 수도 없고 힘들었어요. 하하."

◆ 봉준호 감독의 '설국열차', 거저먹었다
Q. 매 영화를 새롭게 만든다는 창작의 고통이 상당할 텐데 어떻게 돌파하나?
"스토리가 어떻게 출발하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것 같아요. '올드보이'는 내가 만든 이야기도 아니고 일본 만화를 가지고 온 거니 주어진 이야기서부터 출발했던 것이고 '박쥐'도 원작 아닌 원작이 있었죠. 물론 다른 감독의 영화와 비슷해지는 부분도 있지만 크게 신경 쓰지 않아요. '싸이보그지만 괜찮아'도 이와이 슌지 감독의 '피크닉'(96)과 비슷하다는 평을 받아 구해서 봤는데 닮은 구석이 있더라고요. 자연스럽게 우러나오는 대로 찍으니까 비슷한 초점들이 보였죠. 그래도 저만의 색이 있으니까 관객도 이해해주는 부분인 것 같아요."
Q. '설국열차'의 성공으로 제작자로서 입지도 단단해졌다.
"그동안 좋은 감독들을 만나 결과가 좋았죠. '설국열차'가 지금 프랑스에서 격찬받고 있는데 여러모로 기쁘죠. 한국에서 시도해보지 않은 장르기도 하고 규모 면에서나 좋은 배우에 있어서 완벽했던 작업 같아요. 감독의 예술적인 비전을 훼손하지 않아서 다행이죠."
Q. 제작자로 나서게 된 동기가 있나?
"처음 제작을 할 때는 소박하게 시작했죠. '친절한 금자씨'부터 본격적으로 제작에 나섰는데 지금 생각하면 웃기지만 포스터, 예고편을 제 마음대로 만들고 싶었거든요. 투자사와 제작사 그리고 감독 사이의 단계를 줄이면 좀 더 창조적인 작업을 할 수 있을 것 같아서요. 제 영화만 하기엔 회사 경영이 힘들 것 같아 친한 감독들에게도 같이 하자고 제안했죠. 류승완 감독도 원래 저와 함께하기로 했는데 자기 회사(외유내강)를 만드는 바람에 못했죠. 하하."
Q. 제작자와 감독 중 좀 더 고충이 있다면?
"제작자가 더 힘들죠. 미안해야 할 일이 많아지니까요. 감독에게 좀 더 좋은 환경을 만들어 주고 싶고 더 큰돈을 제작비로 주고 싶은데 쉽지 않으니까요. 제가 감독이라 1억만 있어도 영화가 얼마나 윤기 있어지는지 잘 알잖아요. 돈을 풍족하게 못 줘서 미안하죠. 어느 영화든 항상 돈이 아쉬우니까요. 반대로 투자사한테는 자꾸 돈 달라고 손 벌려야 하니까 그것도 좀 그렇고, 개봉한 후 흥행에 대한 부담감도 있죠. 감독보다 더 힘든 게 제작자 같아요. 다행히 봉준호 감독은 애먹이는 사람이 아니어서 저는 거저 먹은 거나 다름없죠(웃음)."

◆ '올드보이' 30주년에는 산낙지 먹는 오대수를 3D로…
Q. 해외 스타들이 내한하면 고유명사처럼 박찬욱 감독 혹은 '올드보이'를 말하는데?
"'올드보이' 말고도 다른 영화가 많은데…. 하하. 다른 영화 이야기도 좀 해줬으면 좋겠네요(웃음)."
Q. 앞으로 계획은?
"아직 구체적인 건 없어요. 미국 영화를 하나 더 하는 게 좋겠다는 미국 에이전트의 제안이 있었고 현재 여러 각본을 받아 읽고 있죠. 아직 결정된 건 없어요. 한 두 달 안으로 마음에 드는 작품이 없다면 한국영화인 '아가씨'를 진행해 볼까 생각 중이에요. 서부극을 하고 싶은데 쉽지 않은 장르기도 하고요. 인기가 많이 식어서 제작하기가 어렵더라고요."
Q. 10년 만에 다시 만나는 '올드보이' 팬들에게 당부하는 바가 있나?
"10년 전에는 영화를 보고 나서 반전에 대해 발설하지 말아 달라고 당부해야 했지만 지금은 그런 말을 할 필요가 없으니까, 마음껏 말할 수 있어서 좋아요. 다시 보게 된 관객에게 진실을 깨닫는 순간을 위해 영화가 처음부터 어떻게 디자인됐는지 하나하나 음미했으면 좋겠어요. 시제가 왔다갔다하는 서사 구조가 독특한 영화거든요. 아마 진실을 전부 알고 난 뒤 봐도 재미있을 거에요. 하하."
Q. 앞으로 20주년, 30주년의 '올드보이'도 기대한다.
"30주년쯤이면 3D '올드보이'를 생각해볼게요. 산낙지가 눈앞에서 꿈틀거리겠네요. 하하."
조지영 기자 soulhn1220@tvreport.co.kr사진=이선화 기자 seonflower@tvrepor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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