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한 높이 2배 넘는 일대사관 신축, 문화재청 허용 방침에 '외압' 논란
경복궁 앞 현 부지에 허가된 일본대사관 신축이 특혜·외압 논란에 휩싸였다. 그 핵심은 문화재위원회가 현행 법령을 어기고 23.4m인 대사관 건물 높이를 신축을 통해 32.4m로 늘릴 수 있도록 허용한 것이다. 문화재위가 지난해 현장조사를 거쳐 신축안을 부결시켰다가 1년 만에 스스로의 결정을 뒤집은 것도 논란을 키우고 있다.
서울 종로구 중학동 일본대사관은 경복궁 동십자각에서 약 91m 떨어져 있다. 문화재보호법상 경복궁 반경 100m 이내 지역은 역사문화환경 보존지역으로 설정된다. 이 지역에선 건물 신축이나 재·개축 시 '현상변경 허용기준'을 충족시켜야 한다. 일본대사관 신축 부지는 건물 일부가 100m 선 안에 포함된 5구역으로 건축물 최고 높이는 14m(평지붕 기준·경사지붕은 17m)를 넘을 수 없다.

지난 7월 문화재위원회에서 신축을 허가받은 일본대사관 건물. 2010년 현상변경 허용기준을 강화하기 전 허가받아 세워진 인근 빌딩 사이로 경복궁이 보인다. | 김정근 기자 jeongk@kyunghyang.com
국가지정문화재의 보존을 위해 현상변경 허용기준 등 문화재보호법이 강화된 것은 2010년 12월이다. 일본대사관 주변에도 높이가 50~60m에 이르는 고층건물들이 있지만 법 개정·강화 이전에 건축 허가를 받아 규제를 피해 갔다. 경복궁 쪽으로 일본대사관 바로 앞에 있는 트윈트리빌딩(64.18m)이 그런 사례다.
이 때문에 심의 과정에선 신축 일본대사관 건물이 30m를 넘는다 해도 주변 고층건물 사이에 가려 경관 훼손이 거의 없다며 기계적으로 법 규정을 적용해 높이를 제한하는 것은 지나치다는 의견도 나왔다. 지난 6월 문화재위 심의 과정에서 다수 위원들은 "현장 실사 결과 주변에 높게 들어선 건물들이 대사관을 80% 이상 가리고 있기 때문에 역사문화 환경 저해라 보기는 조금 무리"라는 의견을 냈다. 익명을 요구한 문화재위원은 "예상되는 훼손이 없는데 높이 기준만 가지고 부결시키는 것은 아니라고 봤다. 현상변경 허용기준은 절대적인 것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문화재청도 "주변 경관에 크게 영향을 미치지 않을 것"이라는 판단을 제시했다.

문제는 엄격한 '100m 거리' 규정에 저촉되며, 동일한 사안을 두고 문화재위 판단이 1년 사이에 손바닥 뒤집듯 정반대로 바뀌었다는 점이다. 일본대사관 신축 허가를 두고 지난해 6월과 7월에 열린 문화재위 회의 녹취록을 보면 대다수 위원들은 신축에 따른 역사문화환경 훼손을 우려하는 발언을 한 것으로 돼 있다.
ㄱ위원은 당시 "고궁은 100m 기준도 의미가 없다. 일본의 경우 황궁 주변은 1층부터 4층 높이까지 경관 관리를 하고 있다"며 대사관 신축 허가에 반대했다. ㄴ위원은 "현상변경 허용기준을 만들 때 초도시화된 지역에 건물 높이 4층 제한은 비현실적이라는 의견도 있었지만 향후 100년, 200년, 300년 후에는 그 경관을 유지하는 것이 맞다는 생각으로 제한 기준을 만든 것"이라며 기준 적용의 엄격함을 강조했다.
발언 중에는 "일본이 경복궁에 두 번이나 침입했는데 일본대사관이 경복궁 코앞에 있는 것은 기분 나쁘다. 정부 차원에서 외국 공관은 왕궁 등 서울의 중심부 밖에 있도록 해야 한다"며 경복궁의 상징성을 강조한 의견도 있었다. 올해 5월부로 일부 문화재위원들이 교체되는 등 인적 구성이 작년과 달라졌다는 점을 감안해도 입장이 급격히 변한 셈이다.

올해 6~7월에 열린 재심의에서 문화재위원들은 '외교관계에 관한 비엔나협약'을 신축안 통과의 주요 명분으로 삼아야 한다는 의견을 제시하기도 했다. 비엔나협약은 외국 공관의 설치나 공관 직무수행에 편의를 제공할 의무를 규정한 것으로 한국도 가입돼 있다. 이 조약에 따라 2009년 주일 한국대사관 청사 신축 당시 일본 도쿄도가 부지 용도변경 등 편의를 봐줬다는 것이 일본 측의 주장이다. 일본대사관과 한국 외교부는 이 사실을 거론하며 대사관 신축안 통과 협조를 요구하는 공문을 문화재청에 보내기도 했다.
김상희 민주당 의원은 일본대사관과 외교부의 행위를 '외압'으로 규정하고 문화재위의 건축 허가 결정을 재고해야 한다고 밝혔다. 신축 중에 유적이 발굴되면 즉시 중단토록 '조건부 허가'를 냈듯이 고궁 주변의 문화재 보호 규정과 원칙을 지키고, 일본대사관 측과 협의해 신축 건물은 경복궁 주변이 아닌 제3의 장소에 짓도록 하자는 것이다.
< 김형규 기자 fidelio@kyunghyang.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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