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웅이 된 무명 '김지수 드라마'
9일 목동구장에서 열린 준플레이오프 2차전은 1차전과 많은 것이 달랐다. 1차전이 비 내리는 밤에 치러진 반면 2차전은 해가 쨍쨍 비치는 한낮에 열렸다. 전날 7700여명이던 관중은 1만500명으로 늘어나 스탠드를 꽉 채웠다. 가장 큰 변화는 양팀 선발투수였다. 넥센 선발 밴헤켄과 두산 선발 유희관은 전날 강속구를 펑펑 던지던 나이트, 니퍼트가 아니었다. 2차전의 키워드는 '변화'(change)였다.
■ 153㎞ 직구보다 센 120㎞ 체인지업
밴헤켄은 올 시즌을 앞두고 직구 구속을 늘렸다. 142㎞ 언저리였던 최고 구속이 147㎞까지 올랐다. 직구에 대한 자신감으로 타자들을 맞이했지만 결과는 신통치 않았다. 밴헤켄은 6월 들어 힘이 떨어지자 평범하지도 못한 투수가 됐다. 6월에 1승3패, 방어율 7.43를 기록했다. 어려운 시기를 보낸 뒤 밴헤켄은 원래 자기 스타일, 직구의 힘이 아니라 제구와 강약 조절로 승부하는 투수로 돌아왔다. 밴헤켄은 9월 4경기에서 전승하며 방어율 0.35를 기록했다.
유희관은 올 시즌 두산의 최고 히트 상품이다. 130㎞ 중반의 최고 구속으로도 타자들을 쉽게 요리하며 시즌 10승을 따냈다. 밴헤켄과 유희관, 둘의 가장 큰 무기는 구속의 변화(change of pace)다. 강한 것을 잡는 부드러움이다.

넥센 김지수(왼쪽에서 두번째)가 9일 목동구장에서 열린 프로야구 두산과의 준플레이오프 2차전에서 연장 10회말 끝내기 안타를 때린 뒤 그라운드에서 동료들의 축하 물 세례를 받고 있다. | 이석우 기자 foto0307@kyunghyang.com
두 선발투수는 눈부신 피칭을 했다. 밴헤켄과 유희관의 제구 잡힌 강약 조절에 상대 팀 중심타자들이 맥을 못 췄다. 밴헤켄은 최고 구속 147㎞에 최저 구속 117㎞, 유희관은 최고 136㎞에 최저 105㎞를 기록했다. 구속 차이가 30㎞를 넘겼다.
유희관은 전날 니퍼트가 153㎞ 직구로도 잡아내지 못했던 박병호를 첫 두 타석에서 120㎞짜리 체인지업으로 쉽게 잡았다. 그런데 '변화'의 가장 큰 힘은 또다시 변할 수 있다는 가능성에 있다. 유희관은 6회 투구 패턴에 변화를 줬다. 체인지업과 커브 대신 과감한 직구로 승부했다. 선두타자 이택근을 직구 3개로 삼진처리했다. 박병호도 몸쪽으로 제구된 132㎞ 직구를 제대로 맞히지 못한 채 뜬공으로 물러났다.
■ 변화의 소용돌이
7회까지 0의 행진이 이어졌다. 양쪽 벤치 모두 변화가 필요한 시점이 다가왔음을 감지했다. 7회말 2사, 유희관의 투구 수는 99개에 달했다. 팽팽한 승부, 불펜이 약한 두산은 투수 교체가 쉽지 않았다. 고민이 깊어지고 있을 때 유희관의 100구째를 허도환이 정확하게 받아 때렸다. 중전 안타성 타구였지만 2루수 오재원이 수비 위치에 미리 변화를 주고 기다리고 있었다. 중견수에 가깝도록 깊이 자리잡고 있던 오재원은 이를 편안하게 잡아 1루에 던져 아웃시켰다. 변화에 변화가 거듭되고 있었다. 그리고 그 변화 속에 소용돌이가 도사리고 있었다.
태풍 다나스는 빠져나갔지만 한글날 목동구장에는 8회부터 태풍이 몰아쳤다. 두산은 8회초 홍성흔의 볼넷과 희생번트, 오재원의 중전 안타로 1사 1·3루 기회를 잡았다. 오재일의 유격수 앞 땅볼은 병살타성 코스였지만 강정호의 포구에 실수가 생겼다. 2루 송구 각이 좋지 않았고, 2루수 서건창의 1루 송구가 당연하게도 나빴다. 결국 포구 동작의 작은 변화가 점수로 연결됐다.
진짜 태풍은 8회말 넥센 공격에서 일어났다. 볼넷과 번트까지는 같았지만 이택근이 삼진을 당하면서 흐름이 꺾였다. 그 흐름을 살린 것은 전날과 마찬가지로 두산의 '박병호 트라우마'였다. 이택근을 삼진으로 잡아내며 씩씩했던 홍상삼은 박병호를 맞이하자 흔들렸다. 양의지가 일어나서 고의4구를 요구했지만 힘이 들어간 공은 백네트 뒤로 흘렀다. 2사 3루. 두산 벤치는 서둘러 양의지를 다시 제자리에 앉혔다. 두산 김진욱 감독은 "2사 1·2루와 1·3루는 수비 상황이 많이 다르다. 박병호와 승부를 하는 게 낫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2구째도 또다시 폭투가 됐고, 서건창이 홈을 밟았다. 홍상삼은 강정호 타석 때 또다시 폭투를 저질러 1이닝 3폭투라는 포스트시즌 타이기록을 세웠다.
9회 1점씩을 주고받는 과정도 태풍 못지않았다. 넥센 마무리 손승락은 번트 타구를 1루에 악송구하며 이틀 연속 실점했고, 두산 마무리 정재훈도 9회말 1사 2루에서 안타를 허용한 뒤 강판당했다. 이어진 1사 만루에서는 두산 김선우가 밀어내기 볼넷을 내줬다. 넥센 벤치는 계속된 1사 만루에서 스퀴즈 작전을 걸었지만 실패했다. 목동구장에서 환호와 탄식이 양쪽에서 반복됐다.
■ 인생을 변화시킨 김지수의 한 방

10회말이 돼서야 경기가 끝났다. 두산은 박병호의 홈런, 장타뿐만 아니라 시즌 도루 10개의 발도 두려웠다. 박병호가 볼넷을 골라 나간 뒤 강정호가 범타로 물러난 1사 1루. 김지수 타석 때 넥센 벤치는 두 차례 히트 앤드 런을 지시했다. 한 번은 볼이 됐고, 한 번은 파울이 됐다. 그게 결국 압박이 됐다. 두산 오현택이 박병호를 1루에 묶어두기 위해 던진 견제구가 뒤로 빠졌고 박병호는 3루까지 내달렸다. 1루 쪽 두산 관중석이 싸늘해졌다. 대수비 전문 요원 김지수는 우중간으로 빠지는 끝내기 안타를 터뜨린 뒤 환하게 웃었다. 넥센 선수들은 전날처럼 또다시 우루루 뛰쳐나가 물을 뿌렸다. 그때 1루 쪽 어딘가에서 물병 몇 개가 날아들었다.
2009년 입단 뒤 지난 6월29일까지 2군에만 머물렀던 김지수는 경기가 끝난 뒤 "상상 속에서만 했던 일이 실제로 이뤄졌다"며 "부모님 생각하니 눈물이 나려 한다"며 눈가를 훔쳤다. 변화무쌍한 야구처럼, 인생도 변화한다. 언제까지나 2군 선수란 법은 없다. 9일의 야구가 또 한 명의 신데렐라를 탄생시켰다.
넥센은 포스트시즌 사상 첫 2경기 연속 끝내기 승리를 거뒀다. 두산은 불펜이 이틀 연속 무너지며 벼랑 끝에 몰렸다. 중심타자 김현수는 2경기에서 8타수 무안타에 그쳤다. 두산에 뭔가 변화가 절실한 시점이 됐다.
< 이용균 기자 noda@kyunghyang.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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