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윤수의 도시 이미지 읽기] 체 게바라는 '소비'되고 있을 뿐인데 뭘 그렇게 놀라나

정윤수 2013. 8. 31. 16: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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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 게바라는 사회주의자였다. 그러나 오늘날 그가 '소비'되는 양상은 무장 혁명을 주도하는 사회주의자라기보다는 제임스 딘이나 마이클 조던 같은 문화적 이미지가 훨씬 강하다. 체 게바라 티셔츠를 입고 떡볶이를 사먹는 저 청년이 무장 폭동을 기도하는 혁명아일까. 그저 멋있어 보여 사 입었을 뿐이다.

뭔가 떠들썩한 '단체행동'에 염증을 느끼는 나로서는 지난 8월 15일, 전남 광주에서 벌어진 '체 게바라 티셔츠' 해프닝 때 두 가지 상반된 감정에 휩싸였다.

그 하나는 단체복장을 꼭 입어야 하는가 하는 점인데, 물론 광주시립소년소녀합창단이 빛고을시민문화회관에서 열린 광복절 기념행사 무대에 올라야 했으므로 이 짜증은 그냥 내 마음속에서 가만히 연소되어도 괜찮은 일이었다. 합창단인데 저마다 각양의 바지에 각색의 티셔츠를 입고 올라가면 볼썽사납다. 우아한 소품을 부르는 빈소년합창단이나 바흐의 거룩한 수난곡을 부르는 라이프치히소년합창단도 검은색 계열의 엄숙한 단체복을 입는다.

2013년 8월 체 게바라 셔츠를 입고 있는 한 청년. 광주 어린이합창단 단체복장 해프닝

아이들이 단체복장을 했다는 점만 보고 내가 덮어놓고 알레르기 반응을 보인 것은 아무래도 내 마음속 어딘가에 저 어두웠던 '국가 동원체제' 시절의 쓰라린 기억들, '4열종대 헤쳐 모여' 같은 소리나 교련복 같은 기억이 반사적으로 작동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므로 이 감정을 개념화하거나 일반화할 수는 없다.

그날 광주의 합창단 아이들은 흰색 한복 저고리를 입고 무대에 올라 '아리랑'을 불렀고 이어 '광주의 노래'를 부르기 직전에 저고리를 벗었는데, 문제는 그 다음에 일어났다. 아이들이 체 게바라의 얼굴과 영문 이름이 새겨진 검은색 티셔츠를 일제히 입었던 것이다.

이게 당장 떠들썩한 문제로 비화되었다. 전남지역 언론뿐만 아니라 전국 일간지는 물론 9시 뉴스에까지 보도되었다. 체 게바라가 피델 카스트로와 함께 쿠바 사회주의 혁명을 이끈 인물이라는 점이 유난히 부각되었다. 전홍범 광주보훈청장이 현장에서 곧바로 "광복절 행사의 취지에 맞지 않는 복장"이라고 강운태 광주시장에게 문제제기했고, 이에 광주시는 "두 번째 노래 때 분위기를 바꾸고자 흰 한복과 대비되는 검은색 옷을 입으려 했던 것으로 아무런 의도가 없는 해프닝"이었다고 발표했다.

이런 즉발적인 감정 또한 과도한 알레르기 반응일 것이다. 그러나 이 집단적 알레르기 반응에 대해서는 약간의 검토가 필요하다.

물론 체 게바라는 사회주의자였다. 그러나 오늘날 체 게바라가 '소비'되는 양상은 무장혁명을 주도하는 사회주의자라기보다는 제임스 딘이나 마이클 조던 같은 문화적 이미지가 훨씬 강하다. < 혁명을 팝니다 > 의 저자 조지프 히스와 앤드류 포터는 서구 사회의 급진적 반문화가 그들이 혐오했던 거대 자본의 쇼핑몰로 급속히 빨려들어간 사례를 두루 언급하면서 그 대표적인 사례로 체 게바라를 꼽는다. 체 게바라는 스타벅스의 머그잔에도 있고, 뉴욕을 활보하는 청년들 가슴팍에도 있고, 뭔가 눈길을 사로잡아야만 하는 거리의 옷가게에도 있다. 거대한 자본의 욕망은 그들에게 저항했던 사람들마저도 보기 좋은 상품 이미지로 치환해버린다. 이 때문에 마릴린 맨슨 같은 음악가는 "청바지를 입고 백화점을 어슬렁거리는 것은 얼마나 구역질 나는 노릇인가"라며 청바지니 뭐니 하는 것들이 무슨 문화혁명 같은 것을 대변하는 듯한 과도한 소비현상을 비판했다.

그 사례를 나는 서울을 포함한 대도시에서 자주 목격한다. 이를테면 한국형 자본주의 발달의 첨병이 되는 강남구 신사동 한복판. 도산공원 사거리에서 성수대교로 가는 대로변에는 꽤 오랫동안 체 게바라 사진이 큼직하게 걸려 있었다. 지금은 다른 업종으로 바뀌었지만 나는 그 길을 지나갈 때마다 강남 한복판에 매우 강렬한 이미지로 박혀 있던 체 게바라를 뚫어지게 보곤 했다.

2007년 4월 1일 체 게바라 초상 사진을 크게 내건 대전시티즌 팬들. 실존인물과 전혀 다른 이미지로 소비

저 이미지는 무엇인가. 엄밀히 말하여 그것은 사회주의 혁명가 체 게바라가 아니라 팝아티스트 앤디 워홀이 무한 복제한 이미지다. 앤디 워홀은 마릴린 먼로나 엘비스 프레슬리, 캠벨수프 통조림 깡통이나 코카콜라 병, 그리고 체 게바라 초상 사진을 실크 스크린으로 복제하여 대량생산 대량소비 시대의 아이콘으로 재해석하였다. 그 이후, 이미지로서의 체 게바라는 실존 인물 체 게바라와는 다른 의미를 갖고 세계 주요 도시를 배회하고 있다.

실존 인물 체 게바라와 그 이미지는 무관하다. 체 게바라의 급진적 사상, 그 투쟁 노선, 그 혁명 방법 등이 그의 초상이 프린트된 티셔츠나 컵이나 마우스패드로 인하여 널리 확산되고 감염되었는가. 전혀 그렇지 않다. 실재와 그 이미지가 전혀 다르다. 심지어 무관하다. 그냥 근사한 이미지일 뿐이다. 록밴드가 해골이 잔뜩 그려진 티셔츠를 입고 무대에 올라서서 평화를 염원하는 노래를 부를 때, 우리는 전혀 모순에 빠지지 않는다.

이를테면 K-리그 대전시티즌 서포터스들도 그렇다. 요즘은 대전의 홈구장에 가보지 못하였지만 한동안 그곳을 자주 다녔는데, 대전월드컵경기장 북측의 서포터스석에는 거대한 크기의 체 게바라 초상화가 내걸리곤 했다. 그것을 누구도 문제 삼지 않았다. 왜냐하면 대전의 서포터스들이(퍼플 크루) 체 게바라의 사상이 아니라 이 순치된 이미지를 축구장에 내걸었기 때문이다. 굳이 적극적으로 해석한다 해도 그 이미지는 무장혁명가 체 게바라가 아니라 그의 청년기를 다룬 영화 < 모터사이클 다이어리 > 에 나오는 이른바 '자유로운 영혼'이라는 수사의 이미지다.

그러니 아이들이 체 게바라의 이미지가 프린트된 티셔츠를 입었다는 것만으로 주요 방송사와 일간지가 무슨 문제라도 터진 것처럼 반응하는 것이야말로 과도한 이념적 알레르기 반응이다. 게다가 현지 언론에 따르면 2010년 1월 취임한 합창단 지휘자가 아이들에게 일부러 체 게바라 티셔츠를 입힐 만큼 '진보적 성향'은 아니라고 한다. 광주 지역의 독특한 '정치성'이나 노조활동 등에 오히려 반대 입장을 가졌다고 하니 그저 '뜻하지 않은 해프닝'에 불과한 것이다.

이 글을 쓰는 도중에 나는 작업실 부근의 거리에 가서 저녁을 먹었다. 저녁을 먹고 나서, 늘 그렇듯이, 이 번잡한 대도시의 밤 풍경을 산책도 하고 그 이미지들을 채집도 할 겸 걷기 시작했는데, 어떤 사람이 포장마차에서 떡볶이를 먹고 있었다. 나는 멈춰섰다. 그 청년이 입은 검은색 티셔츠 등판에 체 게바라가 큼직하게 나붙어 있었다. 저 청년은 무장폭동을 기도하는 혁명아인가. 아니다. 그저 멋있어 보이기에 사 입었을 것이다. 오늘날 체 게바라는 그저 그렇게 일상의 패션 아이콘으로 존재할 뿐이다.

< 정윤수 < 문화평론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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