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차 무명배우, 이승준의 특별한 시간여행(인터뷰)

[TV리포트=김풀잎 기자] 지금으로부터 20여 년 전. 그가 서울예술대학에 다니던 시절이다. 우연한 계기로 한 무대에 올랐다. 사람들의 함성은 뜨거웠고, 그의 심장은 그보다 더 시끄럽게 요동쳤다. 이 모든 이야기는 거기서부터 시작된다.
그로 말하자면 잔뼈가 굵은 배우다. 오랜 시간동안 크고 작은 무대를 가리지 않고 올라 다양한 캐릭터를 연기했다.
"날씨가 덥네요. 물 한 잔 먹고 시작해도 될까요?" 와그작와그작 얼음 씹는 소리를 들으며 배우 이승준과의 '시간여행'을 시작했다.
◆ NOW '막영애12' 철부지 사장…한심한가요?
이승준은 현재 tvN 드라마 '막돼먹은 영애씨12'(이하 '막영애')에 출연 중이다. '막영애'는 30대 노처녀 '영애'를 중심으로 현실적인 사랑과 사회생활 이야기를 그린 리얼 드라마. 2007년 4월 첫 방송 이후 6년 동안 끊임없는 사랑을 받았다.
'시즌12'에서는 역대 가장 큰 변화가 펼쳐지고 있다. 영애가 이직을 했기 때문. 시즌11을 거쳐 오면서 소재의 중복으로 골머리를 앓던 제작진은 '막영애'의 가장 큰 환경인 '직장'을 바꿨다. 이 과정에서 기존 주요 캐릭터가 하차했고, 새로운 얼굴이 등장했다.
극중 이승준은 아버지로부터 인쇄소를 물려받은 '바지 사장'으로, 회사 일에는 관심 없고 예쁘고 어린 여자에게만 신경을 쏟는 철부지 노총각을 연기한다. 이승준은 "'나인' 촬영 중에 캐스팅 전화를 받았다"면서 "캐릭터의 극적인 '찌질함'에 재미를 느껴 합류를 결정했다"라고 말했다.
'진상연기'보다 그를 더 괴롭게 하는 것은 다름 아닌 '러브라인'이라고 한다. 당초 제작진은 이승준과 더불어 이번에 합류한 한기웅이 영애씨의 새 애인 후보에 올라있다고 밝혔다. 시청자들의 최대 관심도 여기에 쏠려 있다. 남자 배우 입장에서는 반갑기도, 걱정스럽기도 한 소식이다. 캐릭터 자체는 풍부해질 수 있으나, 헤어지면 작품을 떠나야 하기 때문이다.
이승준은 "아직 결정된 것은 아무것도 없다"면서 "내겐 생활이 걸린 문제다. 요즘 긴장 백배"라며 한바탕 웃었다.

◆ BEFORE #1(과거) '나인' 의사 한영훈…훈훈했나요?
'나인'은 이승준에게는 잊을 수 없는 작품이다. 고통과 환희를 동시에 선사했다. 극심한 슬럼프를 겪기도 했고, 예상 밖의 유명세를 떨치기도 했다.
지난 5월 종영한 '나인'은 시간여행을 할 수 있는 향 9개를 손에 얻은 한 남자가 20년 전 과거로 돌아가며 벌어지는 이야기를 담은 판타지 멜로물. 탄탄한 줄거리와 배우들의 호연으로 남다른 인기를 끌었다.
이승준은 주인공(이진욱 분)의 친구이자 가슴 따뜻한 의사 한영훈을 연기했다. 한영훈은 주인공의 시간여행을 알고 있는 유일한 인물이기도 하다. 이승준은 "'나인'은 거울보고 연기연습을 하게 만든 최초의 작품"이라며 "일반 사람들 대다수가 겪지 않은 일을 연기하기에 힘이 들었다"라고 털어놨다.
비현실을 현실로 바꾸라는 연기가 그에겐 힘든 미션일 수밖에 없었다. 결국 11부가 넘어가면서부터는 슬럼프에 빠졌단다. 이승준은 "당연하면서도, 심각한 방황이었다"면서 "반복되는 상황을 각각 다르게 마주하기가 어려웠다. 감독님은 'OK사인'을 주셨지만, 아직도 아쉬운 점이 많다"라고 머리를 긁적였다.
그의 고민과는 달리, 다정한 '훈남' 캐릭터는 여심을 사로잡기에는 성공했다. 이승준은 "얼마 전에 커피숍에 갔는데 여종업원이 나를 보자마자 뛰어나와 사인을 받았다"면서 "처음 겪는 일이었다. 괜히 머쓱해서 '이진욱 씨가 아니라서 미안해요'라고 엉뚱하게 사과했다"라고 겸연쩍어 했다.

◆ BEFORE #2(과거) 한 여름 밤의 꿈…아직도 꾸고 있네요
이승준은 20여 년 전 셰익스피어의 '한 여름 밤의 꿈' 무대에서 여자 역할을 맡았다. 어설픈 준비 탓에 동선은 엉망이었고, 시간은 촉박했다. 설상가상으로 급조한 드레스는 터져나가기 일보직전. 이런 상황 자체에 멀미가 났지만, 또 달콤한 희열을 느꼈다고 한다. 그게 배우는 되는 계기가 됐다.
인지도 없는 연극배우의 길, 대다수 사람들은 "궁핍하다"는 생각을 떠올릴 것이다. 그러나 그는 의외로 "행복했다"고 답했다.
돈은 없었지만, 꿈은 있었기 때문이란다. 이승준은 "돈이 없으면 안 쓰면 된다고 생각하는 부류들이 내가 겪은 연극인이었다"라며 "한마디로 '안빈낙도'(궁색(窮塞)하면서도 그것에 구속(拘束)되지 않고 평안(平安)하게 즐기는 마음)다. 연습을 끝내고는 다들 술 마시며 작품 이야기로 하루를 정리하곤 했다. 직장인들이 부러워하지 않을 수가 없다"라고 웃었다.
이승준은 연극 활동을 하며 지금의 아내도 만났다. 아내는 그의 작품은 빼먹지 않고 모두 찾아본 열혈 팬으로 유명했다고. 두 사람은 약 4년간 교제하다 지난해 12월 결혼에 골인했다. 그는 "아내는 내가 연기하는 모습을 가장 좋아한다"면서 "내 생활을 잘 이해해주는 고마운 사람"이라고 말했다.

◆ AFTER 오래 기억되는 배우로 남고 싶어요
이승준은 내년 여름 개봉하는 영화 '명랑 회오리바다'(감독 김한민) 출연을 앞두고 있다. '명랑 회오리 바다'는 정유재란이 벌어진 1597년, 13척의 배로 10배가 넘는 일본 왜선을 물리친 명량대첩을 이끈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활약을 담은 작품.
이외에도, 브라운관과 연극무대 모두 가능성을 열어놨다. 가능한 다양한 캐릭터를 많이 소화하고 싶다는 욕심이다. 이승준은 "카멜레온 같은 배우가 되고 싶다"라며 "현재 목표는 느와르 장르"라고 말했다. 연극으로 치자면 폭군의 일상을 그린 '리처드3세'란다.
끝으로 이승준은 "시간이 가면 갈수록 연기가 더 어렵게 느껴진다"면서 "오래 기억되는 배우가 되는 게 꿈"이라는 작지만 큰 소망을 털어놨다.

◆ 배우 이승준(1973년 2월 11일 생)
학력:서울예술대학 연극과(作) 연극:흉가에 볕들어라(1999), 세기초기괴기전기(2001), 밤마다 페로에논(2003), 플라스틱오렌지(2004), 관객모독(2005), 쇼맨샤먼(2007), 포트(2008) 외 다수영화:개집이 있던 자리(2001), 블루(2003), 오!브라더스(2003), 빙우(2003), 썸(2004), 한강대교(2008), 숙명(2008) 외 다수드라마:MBC 닥터진(2012), tvN 나인(2013), 막돼먹은영애씨12(2013)
사진=tvN '막돼먹은 영애씨', '나인' 화면 캡처, 동화 포토스튜디오
김풀잎 기자 leaf@tvreport.co.kr/ 사진=김재창 기자 freddie@tvrepor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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