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운의 사도세자..그림도 파격이네

뒤주에서 생을 마감한 사도세자는 그림에 뛰어난 재능을 갖고 있었다. 인물과 산수화, 새나 짐승을 소재로 한 영모(翎毛)화, 사군자류 등 많은 그림을 남긴 것으로 알려져 있다. 사도세자 작품이라는 견도(犬圖) 2점이 지금까지도 전한다.
봉모당(奉謀堂)은 조선 제22대 왕 정조가 즉위년(1776년) 창덕궁에 설치한 규장각 부속 서고로 왕실 보첩과 어제(임금이 지은 문장), 어필, 어화 등을 보관했다. 봉모당에 있던 전적(典籍)류 목록을 적은 봉모당봉장서목(奉謀堂奉藏書目), 봉모당후고봉장서목(奉謀堂後庫奉藏書目) 등 서목 2건이 현재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에 소장돼 있다. 이들 서목은 1910년 작성됐다.
왕이 감상 수준을 넘어 직접 그림을 남긴 사례는 매우 드물다. 그러나 두 서목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이 뜻밖에도 임금이 그린 그림인 어화(御畵)다. 봉모당에 특별히 보관됐을 정도면 화격과 예술성이 상당한 수준이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윤진영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선임연구원이 서목 2건을 조사해 최근 발표한 '봉모당 소장 일실 회화의 현황과 행방' 논문에 따르면 봉모당 목록에는 총 20종이 넘는 진귀한 회화류가 나열돼 있다. 그림에 남다른 취미를 가져 봉모당 목록에 그림을 남긴 임금은 선조, 숙종, 영조, 장조(사도세자), 정조 등 5명이다.
숙종은 문인화에 취향을 뒀다. 숙종 어화는 용그림에 찬사의 글을 적은 것, 대나무와 매죽을 표현한 것 등 기록 2종이 발견된다. 영조 어화는 인물과 산수화를 비롯해 6종이 적혀 있다. 중국 그림을 모사한 '아방궁도(阿房宮圖)'도 목록에 포함돼 있다.
사도세자는 비둘기 호랑이 같은 동물 그림 등 10종으로 점수가 가장 많다. 조선 임금 중 글씨를 가장 잘 썼던 선조 역시 작품이 목록에 들어 있는 것을 볼 때 그림에도 남다른 재주를 가졌던 것으로 판단된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봉모당 전적은 일제 강점기와 광복,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대부분 자취를 감춘다. 부산으로 옮겨졌다가 서울로 이송됐다는 증언도 있지만 당시 작성한 목록이 없다 보니 확인은 불가능하다. 봉모당에서 사라진 그림 중 일부가 국공립박물관에 소장됐을 수 있다.
실제 국립고궁박물관은 사도세자 작품으로 추정되는 견도 2점을 보관 중이다. 2점 모두 즉흥적이면서도 간결한 소묘력이 돋보인다. 특히 '고궁회화 186번'으로 이름붙여진 그림은 강아지가 어미로 보이는 개에게 달려가지만 어미는 귀찮다는 듯 외면하고 있어 아버지인 영조에게서 사랑을 받지 못하는 자기 처지를 묘사한 것으로 보인다. 봉모당후고봉장서목에는 장조 예화(睿畵ㆍ어화라는 의미)로 기록된 화첩이 있는데 견도가 여기에 수록됐을 가능성이 있다. 또 봉모당봉장서목 중에서는 북도각릉전도형ㆍ경모궁구묘도(국립문화재연구소 소장), 장조태봉도ㆍ순조태봉산도족자ㆍ헌종태실석물가봉도족자(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봉모당후고봉장서목 중에서는 월중도ㆍ명릉도(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집경전도(국립문화재연구소)가 현전한다.
윤진영 선임연구원은 "어화는 국왕의 문예 취향을 엿볼 수 있는 유물"이라면서 "잃어버린 이들 전적류에 대한 체계적이면서도 지속적인 조사가 이뤄져야 할 것"이라고 했다.
[배한철 기자]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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