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환의 흔적의 역사]'코끼리·공작' 유배사건

이기환 문화·체육선임기자 2013. 8. 13. 2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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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라면 사형죄에 해당합니다. 전라도의 외딴섬으로 보내야 합니다."

1413년(태종 13)의 일이다. 병조판서 유정현의 진언에 따라 '코끼리'가 유배를 떠난다. 일본 무로마치 막부가 바친 코끼리였다. 이 코끼리의 죄목은 공조판서를 지낸 이우(李玗)를 밟아죽였다는 것이었다. 이우가 "뭐 저런 추한 몰골이 있냐"며 비웃고 침을 뱉자, 화가 난 코끼리가 사고를 친 것이다. 코끼리의 유배지는 전라도 장도(獐島·사진)였다. 6개월 후 전라관찰사가 '눈물 없이는 볼 수 없는' 상소문을 올린다.

"(코끼리가) 좀체 먹지 않아 날로 수척해지고…. 사람을 보면 눈물을 흘립니다."

태종조차 '울컥'하게 만든 상소로 코끼리는 육지로 돌아온다. 하지만 여느 동물의 10배를 먹어대는 대식가인 탓에 어떤 수령도 감당하지 못했다. 결국 전라도, 충청도, 경상도를 전전하며 '순번사육'되는 기구한 신세로 전락한다. '떠돌이 스트레스' 때문이었을까. 1421년(세종 3), 공주에서 코끼리를 기르던 사육사가 그만 코끼리발에 차여 사망하는 사건이 벌어진다. 충청관찰사는 "외딴섬으로 보내야 한다"며 앙앙불락했다. 그러나 세종 임금은 "물과 풀이 좋은 곳을 택해 보내되 제발 병들어 죽게 하지 마라"고 신신당부한다.

1589년(선조 22), 일본 사신이 공작새 한 쌍을 바쳤다. 하지만 조정의 공론은 '공작새는 치세에 별 도움이 안된다'는 것이었다. 그렇다고 외교결례를 무릅쓰고 돌려보낼 수는 없었다. 선조는 고심 끝에 "일본 사신이 돌아간 뒤 공작을 섬으로 보낸다"는 고육책을 썼다. 이 공작은 '수목이 울창한 전라도 남양(고흥)'으로 유배됐다. 사실 역대 왕은 외국에서 보내온 '동물사절'들을 100% 환영하지는 않았다.

"외국산 진금기수(珍禽奇獸)에 빠지면 백성의 삶을 내팽개칠 수 있다"는 주 무왕의 고사(故事) 때문이었다. 하지만 친선 도모를 위해 보내는 '동물사절'을 거절할 수 없었기에 역대 임금은 고심을 거듭했다. 그런 점에서 '만부교 사건'은 반면교사로 삼을 만하다. 고려 태조 왕건이 거란족이 보내온 낙타 50마리를 만부교 밑에서 굶어죽였다(942년). 이로 인해 양국 관계는 단교로 이어졌고, 이후 3차례의 거란(요) 침략을 받게 된다. 어찌 홍곡(鴻鵠·태조)의 깊은 뜻을 알겠냐만…. 분명한 것은 백성과 나라가 도탄에 빠졌다는 사실이다. 360여년 후 왕위에 오른 충선왕조차 고개를 갸웃거렸다.

"싫으면 그냥 돌려보내면 될 일이지 굳이 굶겨 죽일 필요까지 있었을까. 알다가도 모르겠다."

< 이기환 문화·체육선임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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