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발 '석유 혁명', 세계의 지각변동
21세기에도 여러 종류의 묵시록이 떠돌았다. 노스트라다무스, 마야 달력, 운석 충돌…. 그러나 이 중에서 나름의 과학적 근거와 통계 수치, 윤리적 설득력까지 겸비한 종말론은 단연 ‘피크 오일’(Peak oil)이라 해야 할 것이다. ‘피크 오일’은 말 그대로 ‘석유 생산량이 이미 절정에 달했다’는 이야기다. 이후에는 석유 공급이 계속 줄어들고 ‘석유 문명’도 해체의 길로 들어서게 된다. 실제로 세계의 석유 총생산량이 2005년(하루 생산량 7400만 배럴) 이후 줄곧 줄어드는 상황이 발생하기도 했다(미국 에너지정보국 EIA 통계). 이 시기를 전후해서 미국 부시 행정부는 이라크 독재자 후세인에 대한 비난 여론을 고조시키다가 침공을 감행한다. ‘피크 오일’은 20세기 석유 문명을 주도하면서 자원 확보를 위해 중동에 대한 무력 개입도 서슴지 않았던 ‘세계 패권국가 미국’의 종말론이기도 했다.

그러나 마침내 대반전이 일어났다. 세계 석유 생산량이 2011년부터 다시 늘고 있어서다. 과학과 국제관계 연구소인 하버드 대학 벨퍼 센터(Belfer Center)는 최근 발표한 보고서 〈석유:다음에 도래할 혁명(Oil:The Next Revolution)〉에서 이렇게 주장한다. “사람들의 믿음과 달리 전 지구적인 석유 생산 능력은 소비 증가를 앞지르는 속도로 발전하고 있다.” 2020년에는 세계의 하루 석유 공급량이 1억1060만 배럴에 이를 것이라고 한다. 벨퍼 센터의 낙관론은 ‘새로운’ 석유가 최근 엄청난 규모로 발굴되는 데서 출발한다. ‘셰일(shale)층에서 추출한 석유’, 혹은 ‘셰일 석유(shale oil)’가 바로 그것이다. 지표면 아래 3~4㎞ 지점에 셰일이라 불리는 지층이 있다. 석유와 천연가스를 함유한 바위 무더기다. 아득한 옛날, 이 셰일층에서 석유와 천연가스가 새어나와 지표면 밑 1~2㎞ 지점까지 올라가 고이면서 유전과 가스전이 형성되었다고 한다. 인류는 19세기부터 이 공간에 시추관을 수직으로 꽂아 석유와 천연가스를 ‘빨아내’ 왔다(수직시추). 5년 동안 셰일 석유 생산량 두 배 증가 그러나 유전과 가스전이 지표면 가까이 형성된 시기 이후 셰일층은 액체나 가스가 통과할 수 없을 정도로 조밀한 장벽(이른바 ‘샌드 스톤’)에 덮여버린다. 셰일층 내부의 석유와 가스가 지표면으로 올라갈 수 없게 된 것이다. 따라서 이곳의 연료를 추출하려면 우선 드릴로 샌드 스톤을 돌파하고 셰일층에 도달해야 한다. 그러나 유전(가스전)과 달리, ‘빨아낼’ 수는 없다. 셰일층은 석유와 가스가 고인 공간이 아니라 바위 무더기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시추관은 3~4㎞ 지하에 있는 셰일층을 수평으로 헤집고 다녀야 한다(수평시추). 동시에 물과 모래, 약품 등이 섞인 액체를 엄청난 강도의 압력으로 내뿜어 셰일층을 파괴해(수압파쇄) 그 속의 석유와 천연가스를 뽑아낸다. 이렇게 ‘수평시추’와 ‘수압파쇄’ 기술이 결합되면서, 21세기 이전에는 손대기 어려웠던 셰일층의 연료를 지상으로 끌어올릴 수 있게 된 것이다. 이 같은 ‘기술 혁신’을 주도한 나라는, 종이호랑이처럼 보였던 미국이다. 미국의 셰일 오일 산지는 중북부의 노스다코타 주와 남부의 텍사스 주다. 텍사스 주의 경우, 5년 전인 2008년 9월 한 달 동안 ‘셰일 오일’을 3166만 배럴 추출했다. 그러나 2012년 9월에는 6150만 배럴을 생산했다. 5년 사이에 생산량이 두 배로 늘어났다. 미국 최대의 셰일 오일 매장지로 추정되는 노스다코타 주 바켄 지역에서는 최근 몇 년 동안 연간 2000여 개의 유전이 새로 발굴되었다. 셰일 오일 생산 역시 하루 10만 배럴에서 70만 배럴로 증가했다. 더욱이 탐사기술의 발전에 따라 2008년에는 53억 배럴에 불과했던 이 지역의 셰일 오일 매장량이 최근에는 240억 배럴로 추정된다. 수십 년 동안 추출할 수 있는 규모다. 미국의 석유산업에서 혁명이 전개되고 있는 것이다.

투자 전문지 〈머니 모닝〉의 애널리스트인 토니 달토리오는 6월28일자 보고서에서 ‘미국 오일 혁명’이 2단계에 들어갔다고 평가한다. ‘수평시추’와 ‘수압파쇄’라는 기본 테크놀로지가 더욱 발달되면서, 일부 석유기업의 경우 생산량 증가와 비용 감축이 빠르게 나타나고 있다. 더욱이 셰일층의 연료 함유량과 위치를 더 정확히 추정할 수 있는 ‘3D 모델링’ 기술이 나타났다. 〈파이낸셜 타임스〉에 따르면 콜로라도에서 셰일 유전을 개발 중인 ‘노블 에너지’는 신기술 채택 이후 생산량이 25배 정도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다른 에너지 기업인 ‘체사피크’는 유전 1개당 시추 비용을 850만 달러에서 590만 달러로 감축했으며, 시추 기간도 25일에서 18일로 줄였다. ‘뉴필드 익스플로레이션’은 수평시추 범위를 2마일로 넓혔는데, 이는 개발 초기의 10배에 달한다. ‘컨티넨털 리소시즈’의 경우, 지난해 셰일 오일 생산량이 2011년 대비 58% 증가하면서 수익 역시 72%나 늘었다. 이에 따라 생산비용이 크게 줄면서, 서부텍사스산 원유(WTI)는, 50~65달러 수준까지 시장가격이 내려가도 수익을 낼 수 있을 정도라고 한다(7월5일 현재 101.12달러). 이에 따라 가까운 시일 내에 미국이 석유 수입에 의존하지 않는 ‘에너지 독립국’이 될 가능성이 커졌다. 국제에너지기구(IEA)는 미국이 오는 2017년에는 사우디아라비아와 러시아를 따라잡아 세계 최대 산유국이 되고 2035년에는 완전한 석유 자급자족을 성취할 것으로 본다. 벨퍼 보고서에 따르면 미국은 2020년, 사우디아라비아에 이은 두 번째 산유국이 된다. 그 시기는 조금씩 다르지만 상당수 전문기관은 미국이 조만간 세계 최대 산유국이 되리라 내다본다. ‘에너지 독립’은 미국 대통령들의 오랜 꿈이었다. 미국은 19세기 중반에서 20세기 중반까지 ‘석유 초강대국’이었다. 20세기 초에 텍사스 주와 오클라호마 주에서 엄청난 유전이 발견되었다. 덕분에 미국 정부는 석유 생산량과 수출 가격, 공급 여부를 규제하며 세계 석유시장을 좌지우지할 수 있었다. 현재의 석유수출국기구(OPEC·오펙) 같은 지위를 누렸던 것이다. 미국은 이미 1930년대 후반에 국내 석유 생산량만으로는 미래 수요를 충당할 수 없다는 것을 인식하고 중동의 석유 자원에 관심을 가지게 된다. 1945년 루스벨트 대통령은 사우디아라비아의 압둘 아지즈 1세와 정상회담을 갖고 사실상의 동맹관계를 체결했다. 물론 이는 미국 기업들의 사우디 석유개발권을 보장받기 위한 자원외교였다. 사우디아라비아의 세계 최대 석유 생산기업인 ‘아람코’의 원래 상호는 ‘아라비안 아메리칸 오일 컴퍼니(Arabian American Oil Company)’로 사우디 측과 미국 석유기업들의 컨소시엄이었다. 그러나 1973년 석유 위기를 계기로 세계시장 지배권은 미국에서 오펙으로 넘어간다. 이후 미국이 할 수 있는 일은 중동 정세에 전전긍긍하면서 그 지역에 대한 영향력을 유지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석유 보급 루트인 걸프만을 지키는 것이었다. 1979년 소련이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한 뒤 걸프만으로 진출할 태세를 보이자 카터 미국 대통령은 이렇게 선언한다. “걸프만의 통제권을 얻기 위한 어떤 시도든, 미국의 사활적인 이익에 대한 공격으로 간주될 것이다. 이런 도발에 대해서는 군사력을 포함한 모든 수단으로 격퇴하겠다.” 이런 카터 독트린은 이후 걸프만 주변의 특정 국가가 지역 헤게모니를 장악하는 것도 군사력을 동원해 차단하는 조치로 확장된다. 이후 미국은 이란-이라크 전쟁, 이라크의 쿠웨이트 침공, 1차 걸프전, 이란의 핵 프로그램, 이라크 침공 등 지속적으로 중동에 대한 군사 개입을 전개해왔다.

미국의 중동 개입 이유는, 석유 물량 확보 때문만은 아니다. 중동 정세가 혼란스러워지거나 민족주의가 고양되면 석유 가격이 오르고 이는 미국뿐 아니라 세계 경제위기로 확산되는 패턴이 나타나기 때문이다. 예컨대 석유의 국제가격은, 2차 세계대전 이후부터 1960년대까지는 배럴당 20~30달러 수준이었다. 그러나 1970~1980년대 초의 오일쇼크 기간에는 100달러까지 치솟는다. 지난 5년 동안에도 석유 가격은 배럴당 60~150달러 사이에서 현란하게 춤췄다. 이처럼 석유 가격이 요동치다 보면 국제정세가 매우 불안정해진다. 예컨대 1986년의 석유 가격 급락은 당시 소련의 경상수지를 극도로 악화시키면서 소련 해체의 주요 원인으로 작용했다. 중동에 대한 군사 개입 필요성 축소 이 같은 세계적 불안 요인은 결국 석유 공급이 안정되어야 해결될 수 있다. 미국의 셰일 오일 공급이 대폭 증가한다는 것은 중동에 대한 군사 개입의 필요성이 그만큼 작아진다는 이야기다. 더욱이 수직시추로 발굴할 수 있는 ‘유전’은 중동 등 일부 지역에 제한된 반면, 복잡한 수평시추가 필요한 셰일층은 비교적 세계 전역에 고르게 퍼져 있다. 물론 미국은 한동안 셰일 시추 기술을 독점할 것이다. 그러나 이런 첨단기술은 전 세계로 확산되거나 개발되기 마련이다. 결국 전 세계적인 석유 생산 증가와 가격 하락으로 이어질 것이다. 이런 ‘셰일 붐’과 더불어 패권국가 미국의 부활도 거론된다. 카터 행정부에서 에너지 정책을 주도했던 필립 벌거는 〈파이낸셜 타임스〉 기고를 통해 “미국에서 발견된 저렴한 에너지 덕분에 10년 이후엔 미국 경제가 다시 강력한 성장을 맛보게 될 것이다”라고 주장한다. 그에 따르면 심지어 미국의 제조업체들이 ‘중국·일본·한국·유럽 국가들에 비해 60~80%의 비용 우위를 가지게’ 된다. 런던 시티 대학의 앨런 릴리 에너지 법률 교수는 〈뉴욕 타임스〉 기고에서 “셰일 에너지 혁명은 글로벌 권력의 지각구도를 서구에 유리하게 바꾸고, 미국의 패권을 강화할 것이다”라고 주장했다. 노르웨이의 한 연구소(Den Norske Atlanterhavs Komite)는 “미국의 셰일 붐은 일시적 거품이 아니라 지난 수십 년 동안 석유산업 부문에서 나타난 가장 중요한 혁명이다”라며 미국의 경험과 기술이 다른 나라로 전파되는 경우 전 세계적으로 에너지 생산량이 크게 늘어나고 “에너지를 둘러싼 국제 관계는 지금보다 덜 적대적인 방향으로 바뀔 것이다”라고 내다봤다.
이종태 기자 peeke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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