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흥민이 가가와보다 현명했다"..'차붐' 차범근의 진단, 왜?
(베스트 일레븐)
유럽 최고의 리그로 우뚝 선 분데스리가에서 우리 축구 팬들의 시선을 끄는 요소 중 하나는 독일 속에서 펼쳐지는 작은 한·일전이 아닐까 싶다. 분데스리가 각 클럽마다에서 이제 한국과 일본 선수들을 보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은 일이 됐기 때문이다. 손흥민(現 레버쿠젠)이 함부르크에서 가장 '핫'한 골잡이로 조명되면서 전 유럽의 빅 클럽들이 군침을 흘렸고, 한 해 앞서 가가와 신지(現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는 보루시아 도르트문트를 발판으로 프리미어리그로 진출하는 등 단순히 얼굴만 비치는 게 아니라 실력적으로도 콧대 높은 독일에서 인정받고 있다.
30년 전 분데스리가를 호령했던 차범근 SBS 축구 해설위원도 이런 현상을 예의주시하고 있었다. 차 위원 역시 비슷한 경험을 했기 때문이다. 유럽인들이 아시아 축구에 대해 무지했던 시절, 차 위원은 뛰어난 경기력을 과시하며 독일에서 가장 사랑받았던 아시아 선수였다. 그런 차 위원 역시 오쿠데라 야스히코(J2 클럽 요코하마 FC 구단주)라는 일본 출신 선수와 선의의 경쟁을 펼쳐야 했다. 승패 여부를 떠나 일본 선수가 같은 무대에서 뛰고 있는 것이 차 위원에게 분명 적잖은 자극제가 됐을 것이다.
그래선지 차 위원의 눈에는 지금 독일에서 벌어지는 한·일 양국 선수들의 활약이 무척 흥미로운 모습이다. 그래서 경쟁 구도를 진단해 달라고 주문했다. 차 감독은 일본 선수들이 많다고 해서 신경 쓸 필요가 없다고 강조했다. 더불어 손흥민이 가가와보다는 매우 현명하게 거취를 결정했다고 칭찬했다.

차붐의 기억 속 오쿠데라는?
들어가기에 앞서 오쿠데라에 대해 간략하게 소개한다. 일본 실업 축구 후루가와전자(현 제프 유나이티드)에서 데뷔한 오쿠데라는 1977년 FC 쾰른을 통해 분데스리가에 입성해 헤르타 베를린, 베르더 브레멘 등 독일의 유명 클럽에서 활약했다. 일본 축구 사상 최초로 유럽에서 활약한 프로축구 선수다. 공격을 이끌었던 차 위원과 달리 미드필더로 뛰었고 커리어 말미에는 측면 수비수로 뛰었다. 포지션상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긴 힘들었어도 필드에 나설 때마다 나름 꾸준한 경기를 펼쳐 유럽인들에게 비치는 일본 축구의 인상을 바꿔 놓았다는 평가를 듣고 있다.
"오쿠데라가 저보다 먼저 가긴 했죠. 그런데 잘해서 갔다고는 생각지 않아요. 당시 일본 대표팀을 이끌었던 헤네스 바이스바일러 감독과 인연 때문에 함께 쾰른에 입단했으니까요. 공부도 할 겸 독일로 갔는데 마침 기대 이상을 하다 보니까 뿌리를 내린 선수입니다. 그래서 동양 선수로는 제가 (실력으로서) 처음으로 스카우트된 것이라 할 수 있죠."
자신을 경쟁자와 비교하며 자신감을 마음껏 내비친 차 위원은 그래도 성실했고 꾸준했던 오쿠데라의 경기력은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고 평가를 내렸다. 이유가 있다.
"오쿠데라는 쾰른을 시발점으로 2부리그에 있던 베를린에서 뛴 후 수비수로 전향해 브레멘에서 분데스리가 준우승을 차지했습니다. 그러고 보니 쾰른에서는 정상에도 올랐네요. 어쨌든 오쿠데라는 그 험한 독일 무대에서 9년이나 뛰었습니다. 그처럼 오랫동안 주전으로 뛰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 일입니다. 대단한 일이죠."

"지금 오쿠데라만한 일본 선수가 있나?"
그러면서 현재 분데스리가를 누비는 일본 선수들을 평가했다. 차 위원 역시 독일에서 뛰는 일본 선수들이 아주 많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가가와 같은 슈퍼스타가 탄생하기도 했고, 기요타케 히로시(뉘른베르크), 우치다 아스토(샬케 04) 등 일본 대표팀 주축들이 뛰는 것과 관련해 차 감독은 머릿수가 중요한 게 아니라고 짚었다.
"시간이 지나 봐야 알겠지만 한두 시즌 반짝하는 건 누구나 할 수 있습니다. 어린 선수들은 더욱 그렇고요. 독일에 일본 선수들이 많은 건 맞습니다. 그런데 이 중 몇 명이나 앞으로 기대만큼 활약할지는 모르겠어요. 솔직히 이들 중 오쿠데라와 비견할 만한 선수가 있다는 느낌은 들지 않았습니다. 오쿠데라의 포지션에서 뛰고 있는 우치다를 보세요. 잘한다길래 지켜봤던 오쓰 유키(前 보루시아 묀헨글라드바흐)는 기대 이하였는지 네덜란드 클럽(VVV 벤로)로 가더군요. 제가 뛰었던 프랑크푸르트를 떠올리면 다카하라 나오히로가 한때 꽤나 좋은 모습을 보였습니다만 이후에는 확 꺾였죠. 앞서 말씀드렸듯 한두 시즌은 잘할 수 있습니다. 어쩌면 최고 수준으로 잘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게 전부는 아닙니다. 하다 보면 가면 갈수록 점점 부담이 커지니까요. 경기가 안 될 때는 더 심하게 나타나죠. 아마 지금 뛰는 선수들도 느낄 겁니다. 진짜 좋은 선수로 인정받으려면 이걸 이겨 내야 합니다."
차 감독은 분데스리가에서 말하는 성공은 꾸준한 활약이라고 강조했다. 찾아온 기회를 결코 놓치지 않고 한 번 잡은 기회를 커리어 내내 끌고 갈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한다고 짚었다. 최근 일본 선수들이 각광받고 있다고는 하나 현혹되어서는 곤란하다는 주장이다. 이 잣대는 한국 선수들에게도 마찬가지로 적용된다. 분데스리거로서 진짜 성공했다고 자부하기 위해서 여전히 헤쳐 나가야 할 숙제가 많다. 손흥민은 앞으로도 함부르크에서 보인 실력을 레버쿠젠에서도 과시해야 하고, 아우크스부르크의 수호신을 자처했던 구자철도 볼프스부르크에서 존재감을 떨쳐야 한다.

손흥민이 가가와보다 현명한 선택을 내린 이유는?
분데스리가 속 한·일 선수의 활약상에 대한 얘기가 깊어지자 묻지 않을 수 없었다. 가가와 신지와 손흥민에 대한 얘기다. 가가와는 도르트문트에서 보낸 두 시즌 동안 빼어난 활약을 펼쳐 세계적 명문 클럽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일원이 됐다. 분데스리가를 뒤흔든 '아시안 인베이전'의 선두 주자로 꼽힌다. 손흥민은 지금 분데스리가에서 아시아 최강의 선수로 평가받고 있다. 빅 클럽행에 관한 소문이 무성했으나 레버쿠젠에 자리했다. 레버쿠젠이 나쁜 팀이라는 뜻은 결코 아니나 가가와보다는 덜한 느낌이 드는 건 사실이다. 그래서 두 선수가 내린 선택 중 어느 쪽이 현명했냐고 차 위원에게 물었다. 이에 차 위원은 손흥민이 가가와보다 더 훌륭한 선택을 했다고 답한다. 단지 레버쿠젠 후배라서가 아니다.
"다른 결정을 내린 두 선수 중 어떤 선수가 좋은 결과를 맛볼지는 아직 알 수 없죠. 다만 자신의 능력을 잘 알아야 합니다. 에이전트들도 판단을 잘해야 하고요. 단지 목표가 좋은 팀에 가면 된다는 것이면 안 된다고 봅니다. 그만큼 경쟁은 더 치열할 테니까요. 그래서 큰 팀에 가려면 먼저 그에 걸맞은 '급'의 선수가 되어야 합니다. 아까 말했듯이 한두 시즌 잘했다고 그게 전부는 아니거든요. 그런 면에서 가가와는 잘못된 판단을 한 게 아닌가 싶습니다. 전 (손)흥민이가 이적을 결심할 때 프리미어리그를 가느니 차라리 함부르크에 남았으면 했습니다. 함부르크에서 더욱 기량을 연마하고 자신감을 끌어올려 커리어를 확실히 쌓은 후 빅 클럽에 도전하면 어려운 상황이 와도 쉽게 흔들리지 않으니까요. 더군다나 아직 어린 선수잖습니까? 어린 선수가 갑작스레 너무 큰 변화를 겪으면 힘들 수도 있습니다. 적은 변화 속에서 성숙시키는 게 좋다고 봅니다. 여기에 분데스리가는 재정 건정성이나 선수들의 기량으로 볼 때 현재 유럽 최고의 무대입니다. 관중 동원률은 말할 것도 없습니다. 그 분데스리가에서 우승을 넘볼 수 있는 팀으로부터 부름을 받았습니다. 이 자체만으로도 대단한 겁니다. 흥민이는 매우 현명한 선택을 내린 겁니다."
글=김태석 기자(ktsek77@soccerbest11.co.kr)사진=베스트 일레븐 DB/바이엘 레버쿠젠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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