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교농구의 오렌지 군단, 양정고등학교

주황색 유니폼에 한자로 씌여진 養正(양정)이란 두 글자는 초기 한국농구 역사에서 빠지지 않았던 최강팀의 이름이다. 유구한 역사와 전통이 배출한 굵직굵직한 명성의 농구인들도 많다. 최근에는 그 명맥이 제대로 이어지지 못했지만, 박준용 코치와 선수들은 포기하지 않고 달리고 있다. 언젠가 재현될 '양정' 전성시대를 그리며.
옛날엔 우리가 甲이었지!
양정의숙은 구한말이었던 1905년, 교육가 엄주익이 '올바르게 길러서 깨우쳐 준다'는 '몽이양정(蒙以養正)'의 기치 아래 문을 연 학교다. 농구부는 개교 26년 뒤인 1931년 창단했다. 당시 양정은 휘문, 배재와 함께 명문 사립학교로 자리를 확고히 하던 시기였는데, 이승준과 김영완, 서광우, 박수종 등의 선수들을 주축으로 시작해 같은 해 5월 경성공업학교와 친선 경기를 가진 것이 첫 공식 활동이었다.
창단은 늦은 편이었지만, 성과는 누구보다 빨리 이루었다. 1934년 연희전문학교가 주최한 전국 중등부 선수권대회 우승는 그 서막과도 같았다. 양정고는 이 대회 2연패를 통해 이름을 알렸고, 같은 해 11월에 열린 YMCA동계리그에서는 강팀으로 꼽히던 휘문고보, 중동고보 등과 어깨를 나란히 하기도 했다. 한때 침체기도 찾아왔지만, 광복과 함께 팀 재건에 성공했다. 안영식과 김승기, 차득룡, 박영희, 김영태 등이 새로운 양정의 중심에 섰다. 덕분에 명문팀의 자존심도 되찾았다.
양정 농구는 1950년 후반 들어 더 빛났다. 안영식, 백남정, 장기춘 등이 국가대표 선수로 성장하면서 무시무시한 전력을 자랑했던 것. 덕분에 그 뒤를 잇는 후배들(모창배, 최경덕, 강호석, 이희택, 김춘수, 이명진 등)도 쟁쟁했다. 양정고는 1965년 쌍용기 우승을 시작으로 춘계연맹전 3연패(1966~1968년), 1968년 종별대회 우승, 1971년 3관왕(대통령기, 쌍용기, 전국체전) 등 나가는 대회마다 우승 트로피를 싹쓸이 했다.
양정고에서는 농구 관련 행정가들도 많이 배출됐다. 1967년 체코 세계선수권대회 단장을 역임했던 김철환, 대학농구연맹 산파 역할을 했던 정완석, 육군체육관 건립을 주도한 김근배, 대구 경북 지역 농구계의 '대부' 오상석 등은 양정고 농구를 이야기할 때 빠져서는 안 될 인물들이다.
그러나 이처럼 많은 농구인들을 배출했음에도 불구하고 양정 농구는 이후 우승과는 거리가 멀어졌다. 1970년대 들어 후발 주자였던 신일고가 무섭게 성장한데 이어 용산고와 경복고가 대형 선수들을 발굴하면서 양정고의 아성을 위협했다. 그 와중에도 양정고는 1979년 대통령기 대회 우승으로 건재함을 보였지만, 이후에는 트로피를 가져오지 못했다. 1983년 쌍용기대회 입상, 1990년대 쌍용기 3년 연속 3위(1994~1996년) 정도가 전부였다. 2000년 연맹회장기에서 에이스 최승태가 결승으로 이끌긴 했지만, 군산고에 가로 막혀 미래를 기약해야 했다.
그들이 기약했던 '미래'는 빨리 찾아오지 않았다. 그나마 2008년 5월, 두경민과 강영준이 활약하면서 5년 만에 전국대회 4강에 진출하긴 했지만, 갈증을 씻어줄 정도는 아니었다. 급기야 양정고는 변화를 모색했다. 2009년에는 박준용 코치를 임명했다. 양정고가 아닌 외부에서 코치를 찾아 변화를 꾀했던 것. 그 시도는 절묘하게 맞아 떨어져 양정고는 2010년, 추계연맹전 우승이라는 기염을 토하기도 했다. 박 코치의 양정고는 2011년, 서귀포 회장배 대회에서도 다시 우승하며 부활의 신호탄을 쏘았다. 비록 최근 2시즌은 우승에서 멀어졌지만, 결선만큼은 꾸준히 진출하면서 다시 정상에 설 날을 기다리고 있다.

새로운 도전을 위한 전초전
최근 양정고는 출전하는 모든 대회에서 꾸준하게 상위권을 유지하며 만년 약체라는 오명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하지만 성과는 오래가지 못했다. 팀을 이끌었던 대형 빅맨들이 졸업하면서 그 꾸준함의 매력을 잃은 것이다. 그러나 박준용 코치는 낙담하지 않은 채 돌파구를 찾았다.

"이대헌(동국대)과 유영환(건국대) 이 졸업을 하면서 팀 전력도 당연히 떨어졌습니다. 언제까지 과거만 회상해서는 안 된다는 것도 알게 됐습니다." 박준용 코치의 양정고는 새로운 색을 보여줬다. 기존의 양정고가 높이를 앞세운 빅맨 농구였다면, 박준용 코치는 강한 압박수비와 역습으로 도전장을 던졌다. 외곽에서는 오픈 찬스가 생길 때마다 정확도 높은 3점슛이 아름다운 포물선을 그렸다. 덕분에 8강 진출 조차 어려울 것이라 내다 봤던 2012 시즌 첫 대회, 춘계연맹전에서 양정고는 4강에 진출할 수 있었다.
하지만 한계도 분명 나타났다. 다른 팀에 비해 높이가 낮다보니 힘 좋은 장신 선수들이 많은 팀에게 속절없이 무너졌던 것. 설상가상으로 2012 시즌이 끝난 뒤 주전들이 대거 졸업하면서 양정고는 다시 한 번 전력 약화를 맞고 말았다.

이에 박준용 코치는 또 한 번 팀 색깔을 더칠했다. 압박 수비의 색채는 더 진해졌고, 수비 성공 후 이어지는 속공에는 세밀하을 더하고 있다. 다행히 선수들도 박 코치를 빨리 받아들이면서 팀의 조직력은 더 굳건해지고 있었다. 박 코치는 "선수들이 대견스럽다. 다른 한 편으로는 고맙기도 하다. 높이에 대한 약점이 커진 상황에서 힘겨운 훈련을 군소리 없이 잘 따라와 주고 있다. 덕분에 나 역시 지난 시즌보다 업그레이드 된 조직력의 팀을 만들 수 있겠다는 자신감을 갖게 됐다"며 고마움을 전하기도 했다.
양정고 베스트 5
양정고의 주축을 이루고 있는 선수는 신재영과 조병준이다. 신재영은 외곽슛이 좋은 선수로, 파이팅 넘치는 근성 역시 박준용 코치로부터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 다만 주전 포인트가드로서 세트오펜스 지휘와 볼 배급이 떨어지는 점이 아쉬운데, 이는 시간과 경험의 도움이 있다면 장차 극복 가능한 부분이라 할 수 있다. 조명준은 신재영의 백코트 파트너다. 역시 신장이 작다는 아쉬움이 있지만 스피드가 워낙 좋아 늘 껄끄러운 매치업 상대가 되곤 한다. 손도 빨라 스틸도 능하다.
2학년 강바일은 실질적인 양정고의 에이스다. 장신이면서도 스피드가 좋은 선수로, 돌파 실력이 수준급이다. 또 슈팅도 타점이 높은 덕분에 막기가 어렵다. 사실, 아직은 파괴력이 떨어지는 편이지만 아직 2학년이라는 점을 감안해보면, 앞으로의 성장세에 관심을 가져봐도 좋을 선수다. 골밑은 2학년 권순명이 책임진다. 세기는 부족하지만, 힘을 앞세운 골밑 공략은 양정고의 활력소가 되고 있다. 또 다른 주전인 이도형은 유연한 몸을 이용한 플레이가 강점이다. 공격은 물론이고, 수비에서 말 그대로 '소금' 역할을 해내고 있다. 다만 구력이 짧다는 점이 아쉽다.
이들과 함께 식스맨으로 뛰고 있는 1학년 김세창은 차세대 양정고의 주역으로 평가를 받고 있다. 기술 수준이나 경기운영 모두 선배들을 능가한다는 평. 아직 나이가 어려 강,약 조절에 어려움을 느끼고 있지만 경험을 쌓고, 부족한 외곽슛 성공률을 끌어올린다면 더 좋은 선수로의 성장이 예상된다. 그런가 하면 202cm의 센터, 김성현도 '미완의 대기'다. 신장이 큰 만큼 앞으로의 발전 방향도 궁금해지는 선수다. 일단은 힘부터 키우는 것이 중요하다. 만일 그가 상대 거친 수비를 힘으로 제압하고, 골밑 득점력을 키운다면 양정고 입장에서는 천군만마를 얻는 셈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MINI INTERVIEW_박준용 양정고 코치
새롭게 팀을 재편하고 있다.
당장은 성적을 거두는 것이 어려운 상황이다. 팀 사정상 많은 선수를 영입하지 못해 팀 구성면에서 다른 팀에 비해 부족한 점이 많다. 따라서 당분간은 있는 자원들의 기량 향상에 초점을 둘 생각이다.
올 시즌 운영에 있어 주안점을 두고 있는 부분은?
꾸준히 8강권에 머무르는 것이 중요하다고 본다. 갑자기 경기력이 확 좋아질 수는 없으므로, 일정 수준의 목표를 유지한 채 기량을 키워간다면 분명 좋은 결과가 올 것이라 본다.
전술적으로 중점을 두고 있는 부분은?
우리 팀은 장신 선수가 부족하다 보니 강력한 수비와 조직력을 이용한 플레이를 강조하고 있다. 아직 경험이 부족한 선수들이 많다보니 수비에 대한 선수들의 이해도가 떨어지기도 하지만 시간을 더하고 꾸준히 연습을 거듭한다면 수비 조직력과 더불어 공격력도 나아질 것으로 본다.
지도자로서 주목하는 선수가 있다면?
2학년 빅맨인 권순명과 1학년 가드 김세창에게 팀의 미래를 걸고 있다. 권순명의 경우 아직은 경험이 많이 부족하지만 골밑에서 최소한 상대와 대등한 싸움을 할 수 있는 신체능력을 가지고 있는 선수다. 김세창은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경기운영과 볼 핸들링 등 여러 면에서 재주가 탁월하다.
TEAM INFO
ROSTER
등번호 학년 이름 신장 포지션11 3학년 신재현 180cm G10 3학년 이도형 184cm F09 2학년 강바일 195cm F14 2학년 권순명 197cm C07 2학년 조병준 175cm G04 2학년 최석현 179cm G15 1학년 김성현 202cm C12 1학년 홍석현 195cm F05 1학년 김세창 179cm G08 1학년 안영준 183cm G
양정고 출신 선수들
모창배, 최경덕, 강호석, 최명상, 이원민이달순, 조성진, 최동명, 이희택, 김춘수이덕호, 심윤득, 구덕모, 박교순, 이명진김풍조, 조명선, 황상화, 김상식, 표명일송태영, 이우정, 최승태, 정세영, 강영준두경민, 이대헌, 유영환
저작권자 ⓒ 점프볼.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2013-07-05 글, 사진 한필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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