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경이 만난 사람] 변영섭 문화재청장

대담 2013. 6. 2. 1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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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자체로 분산된 문화재 관리 문화재청으로 일원화
유·무형 문화재 DB·GIS 구축.. 지역개발 사업과 충돌 사전 방지
'훼손 논란' 반구대 암각화 보존
인근 댐 수위조절이 유일한 대안

"현재 지방자치단체에서 관리하고 있는 국가지정문화재를 모두 문화재청 관할로 바꾸기 위해 법과 제도를 정비하고 있어요. 문화재 관리에서 지방을 배제하겠다는 게 아니라 우리나라의 정체성과 민족성을 담은 문화재를 하나의 시스템하에서 관리하겠다는 생각입니다."

지난 3월 취임한 변영섭(62ㆍ사진) 문화재청장은 서울경제신문과 만난 자리에서 전국의 문화재 관리 체계를 일원화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문화재청은 원래 국가지정문화유산 중 궁궐만 관리해왔지만 5년 전 숭례문 사고 이후 숭례문ㆍ사직단 등 4곳을 추가로 관리하고 있다. 또 서울시 등 지자체에서 그 외의 11곳에 대해서 문화재청 관리를 신청, 이에 대한 검토를 진행 중이다.

"효율이나 실효성 측면에서 지자체가 관리하는 대부분의 국가지정문화재를 문화재청에서 직접 관리하는 게 맞다고 봅니다. 전국에서 재정이 가장 탄탄하다는 서울시가 관할해온 국가지정문화재 관리를 넘기는 것만 봐도 알 수 있지만 다른 지자체는 상황이 훨씬 어렵습니다. 보통 정부의 지원금에 지자체가 일부 예산을 더해 관리하는 데 쓰는데 실제로는 그나마도 여의치 않아 정부 예산이 집행되지 못할 때가 많아요."

그는 이어 "유형문화재ㆍ무형문화재ㆍ자연유산 등을 데이터베이스(DB)로 집대성하고 문화재 지리정보시스템(GIS)을 구축해 각종 지역개발사업과의 충돌도 사전에 방지할 것"이라며 "이미 문화재 GIS가 있지만 지역ㆍ단체ㆍ개인별로 저마다 진행해 서로 연계돼 있지 않다"고 지적했다. 워낙 방대한 분량이라 장기사업이 될 것으로 예상되지만 반드시 추진하겠다는 의지를 내비쳤다.

이외에도 경주ㆍ공주ㆍ부여ㆍ익산 등 4대 고도(古都)의 관리ㆍ보존, 문화재 국제교류 등을 통해 현 정부의 주요 국정 기조 중 하나인 문화 융성에도 힘쓸 예정이다.

"지금까지의 정책이 양적으로 팽창하는 데 집중됐다면 이제는 질적으로 내실을 높이는 방향으로 가야죠. 과거 지역개발 및 성장에 문화재 관리가 걸림돌이었는데 이제는 서로 도움이 될 수 있게 개선할 겁니다. 문화재ㆍ유적지도를 만들어 지역개발 때 참조하도록 하고 개발 중 우연히 발굴되는 유적이나 문화재가 사업에 지장이 없도록 최대한 신속히 조사를 진행하는 등 적극 협조하겠습니다."

문화재 관리에 대한 계획을 일일이 언급하면서 설명하는 변 청장은 최근 문화재와 관련해 가장 큰 쟁점으로 떠오르고 있는 울주군 반구대 암각화 보존 문제로 넘어갔다. 반구대 암각화는 문화재청이 유네스코(UNESCO)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신청 중인 유적으로 연중 절반 가까운 기간 수면에 잠기며 훼손이 진행되고 있다. 문화재청과 울산시는 각각 댐 수위 조절과 생태제방 건립 사태가 심각하다는 점에 공감하고 있지만 막상 구체적인 해결안을 놓고는 벌써 10년째 지루한 공방을 벌이고 있다. 변 청장이 취임 후 반구대에 대한 지속적인 관심을 보였고 반구대의 소중함과 보존 필요성이 널리 알려지며 이 문제가 전기를 맞고 있다.

그는 반구대 암각화를 '사경을 헤매는 아들'에 비유하며 인근 댐 수위를 낮춰 물에 젖지 않게 하는 것이 유일한 대안이라고 강조했다. "반구대 암각화는 발견된 후 40년 사이 전체 4분의1 정도가 추가로 훼손됐어요. 이암(泥巖ㆍ진흙암)으로 형성된 절벽이라 물과 만나면 망가질 수밖에 없습니다. 이암의 강도를 테스트할 때 물속에 넣었다 뺐다 반복하는데 이것을 지난 40여년간 시험해온 셈이죠. 조선왕조실록을 물에 넣었다 뺐다 할 수 있나요?"

그는 반구대 암각화는 오랜 기간에 걸쳐 우리 조상들이 그림으로 쓴 역사책이라고 강조했다. "해상ㆍ육상동물이 모두 그려진 그림으로는 세계 최고(最古)죠. 전세계 수백만 곳의 암각화 중에도 단일화면에 300여가지 그림이 그려진 것은 없습니다. 우리 민족의 유산이자 인류의 문화유산입니다. 숭례문은 다시 지을 수라도 있었지만 반구대는 훼손되면 그것으로 끝입니다. 늦게나마 반구대를 모범적인 보존 사례로 만들고 세계문화유산 등재 및 역사공원 조성을 통해 우리 국민은 물론 전 인류가 함께 향유할 수 있게 해야 합니다."

이번에 반구대 암각화가 등재되면 국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의 연대를 기존보다 3,000여년 앞당기게 된다. 가까이는 일본보다 등재유산의 연대가 올라가게 되는 것이다.

관할 지자체인 울산시의 생태제방안에 대해서는 "댐 수위를 낮춰 울산시가 물을 못 먹게 된다면 당연히 우리의 수위조절안을 포기할 수 있다. 하지만 울산시에 물이 부족하지 않다. 또 설사 댐을 그대로 유지한다 해도 어차피 오는 2025년이면 다시 맑은 물이 부족해진다. 지난 10여년 동안 보존운동을 펼치면서 지자체의 수자원 관리, 바위의 석질 연구 등 여러 전문가에게 확인한 얘기"라며 선을 그었다.

울산시가 수자원학회를 통해 발표한 조사 결과에 대해서도 사실관계가 다르다고 주장했다. 먼저 삼투압 현상으로 암석이 물을 빨아들여 수위를 낮춰도 소용없다는 주장에 대해서는 ▦반구대를 이루고 있는 이암은 삼투압 현상이 없는 암석 ▦그게 아니라도 삼투압 현상은 최대 80㎝ 등의 근거를 들며 반박했다. 유속이 빨라져 암석 침식이 가속화될 것이라는 주장도 수량이 줄어드는 상황에서는 말이 안 된다고 잘라 말했다. 그는 "최고의 산업도시가 최대의 문화도시로 변신할 수 있는 길"이라고 호소했다.

한편 박근혜 대통령이 새 정부 초대 문화재청장으로 변 청장을 임명한 것과 관련해 일부에서는 사실상 반구대에 대한 문화재청의 입장에 손을 들어준 것이 아니냐는 추측이 나오기도 했다.

변 청장은 "한국미술사학회장을 지내던 즈음 일부 연구자들이 반구대 암각화를 연구하는 과정에서 표면의 결로 현상을 유발하거나 슈미트 해머로 두드리는 등 오히려 유적을 훼손하는 일이 벌어졌다는 점이 이슈가 됐다"며 "그 계기로 반구대 보존운동에 뛰어들게 됐고 사방으로 도움을 요청하면서 당시 의원이던 박 대통령도 만났다"고 설명했다.

이어 "박 대통령은 반구대 암각화 문제에 대해 잘 이해하고 있고 그만큼 향후 이 문제가 잘 해결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최근 경복궁 야간개장 과정에서 벌어진 무질서한 관람으로 문화재가 훼손될 것이라는 비판에 대해서도 입장을 밝혔다. "이번에 인터넷 예약제도를 도입하면서 너무 많은 인파가 한꺼번에 몰려 이 같은 일이 벌어졌습니다. 당연히 들어야 할 질책이지만 문화재청 전체 직원 중 계약직이 60%에 달하는 상황에서 이를 통제할 추가 인원이나 예산 확보 모두 쉽지가 않습니다."

그는 이어 "숭례문보다도 더 중요한 경복궁인 만큼 완전한 대책을 세울 때까지 야간개장을 중단하고 고민할 것"이라면서 "이번 일이 국민들의 문화재에 대한 관심과 의식 수준이 높아지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한편 그는 북한과 중국에 산재해 있는 우리 문화재ㆍ유적에 대한 우려와 함께 적극적인 지원에 나서겠다는 의견을 내놓았다. "오래전에 고구려 고분벽화가 있는 개성에 다녀왔는데 크게 훼손돼 있어 가슴이 아팠습니다. 유적 보존을 위해 할 일이 많은데 문화재청이 나설 일이 있다면 구체적으로 돕고 싶습니다. 우리나라가 지난해 15억달러 규모의 공적개발원조(ODA)에 나섰는데 가까이 북한을 돕는 것은 당연하지 않나요?"

민감한 질문에 대해서도 그의 답변은 거침이 없었다. 최근 고등법원에서 판결이 난 한국전통문화대 교수의 성희롱 혐의에 대해서는 단호한 원칙론을 강조했다. "본인이 부인하고 있고 대법원에서 결론이 나지 않은 이상은 아직까지 '성희롱 혐의'일 뿐이죠. 반구대 운동하면서 몽골을 60여회나 다녀왔고 단 한 번도 관련 활동에 불참한 적이 없는 분이에요. 어느 쪽으로 결론이 나든 (당사자 모두에게) 원칙대로 대응할 겁니다. 공인으로서 일을 그르치는 일은 없을 것입니다."

■She is…

▲1951년 경북 봉화 ▲1966년 안동여고 ▲1971년 이화여대 사학과 ▲1987년 이화여대 사학과(박사) ▲1988년 동원학술상 ▲1991년~ 고려대 인문대 고고미술사학과 교수 ▲1993년 한국미술사 교육연구회 회장 ▲1994년 충청북도 문화재위원회 전문위원 ▲1999년 서울시 문화재위원회 위원 ▲2002년 한국미술사학회 회장 ▲2003년 문화재청 문화재위원회 전문위원 ▲2009년 국사편찬위원회 위원 ▲2013년~ 문화재청장

■저서

▲화안-동기창의 화론(시공사, 2003년) ▲미술인 강세황(한국문화예술진흥, 1995년) ▲장서각소장 회화자료(한국정신문화연구, 1990년) ▲표암 강세황 회화연구(일지사, 1988)

반구대 보존운동 취임후에도 지속… 닉네임은 '반 청장'

■변영섭 청장은

변영섭 문화재청장의 명함에는 울산시 울주군 반구대 암각화가 크게 그려져 있다.

그는 취임 전까지 10여년 반구대 암각화 보존운동에 앞장 서왔다. 취임식 때 "이 시대 후손의 불찰로 국보문화재가 긴 세월 '물고문'에 시달리며 무너져 내리고 있다"고 개탄하는 등 줄곧 반구대 문제에 대한 적극적인 행보를 보여 '반(구대) 청장'으로도 불린다.

그는 반구대 암각화 보존운동을 펼치며 보존 근거와 방법을 찾기 위해 지墟?전문가를 만나고 댐 수위를 낮추면 부각될 울산시 수원 부족 문제 때문에 지역 수자원 관리 전문가도 만나왔다. 그 가운데 당시 의원이던 박근혜 대통령과 정몽준 새누리당 의원도 만났다.

국보 285호인 울산시 울주군 반구대 암각화는 기원전 3,000년 고래 사냥이 이뤄졌음을 확인할 수 있는 세계에서 유일한 유적이다. 대곡천변 절벽 가로 10m, 세로 3m 규모의 바위면에 포경ㆍ사냥 장면과 고래ㆍ가마우지ㆍ호랑이ㆍ사슴 같은 동물 300여점의 그림이 새겨져 있다. 문화재청은 이 일대를 '울산 대곡천 암각화군'으로 묶어 유네스코(UNESCO)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신청 중이다. 이상목 울산암각화박물관장은 반구대 암각화의 중요성에 대해 "현재 인류의 고래 사냥(포경) 시기를 확인할 수 있는 유적 중 가장 오래된 것으로 기존 기록을 2,000~3,000년 앞당긴 기원전 3,000년 전 고래 사냥이 이뤄졌음을 확인할 수 있는 유일한 유적"이라고 설명했다.

최근에는 여당인 새누리당이 우선 임시 제방을 쌓아 보존에 주력한 뒤 해법을 찾는 '제3의 방안'을 제시하기도 했지만 변 청장은 "댐 수위를 낮춰 원형을 보존해야 한다"며 이를 거부한 바 있다.

대담=오현환 문화레저부장 hhoh@sed.co.kr정리=이재유기자 0301@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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