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저 새로 읽기]디미트리 구타스 '그리스 사상과 아랍 문명: 번역운동과 이슬람의 지적 혁신'

곽차섭 | 부산대 교수·사학 2013. 4. 5. 2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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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은 혁명이다

1462년, 당대 최고의 철학자 마르실리오 피치노는 피렌체의 실력자 코지모 데 메디치의 의뢰로 플라톤 번역을 준비하고 있었다. 어느 날 그를 부른 코지모는 그리스어 필사본 한 묶음을 주면서 그것을 먼저 번역해달라고 부탁하였다. 그가 준 책은 < 헤르메스 서(書) > 의 14세기 사본이었다. 피치노는 플라톤 번역이라는 필생의 작업을 멈추고 주저 없이 이 제의를 받아들여 이듬해 번역을 끝마쳤다. 1471년 간행된 이 책은 이후 < 피만드로스 > 란 이름으로 알려졌다. 고대 이집트로부터 전승되어온 지혜의 정수를 담았다고 알려진(그리고 무엇보다 예수의 도래를 예언하고 있다고 믿어졌던) < 헤르메스 서 > 의 피치노 역본은, 17세기 프로테스탄트 신학자 이작 카조봉에 의한 위작설에도 불구하고, 19세기까지도 비학(秘學) 연구에서 거의 절대적인 영향력을 발휘했다. 한 권의 번역이 수세기의 학문 연구에 지대한 역할을 한 것이다. 이는 물론 르네상스기에 이루어진 수많은 번역작업에서 중요하지만 일부분에 지나지 않는다.

역사가 흘러온 여정을 살펴보면, 새로운 문화의 형성에는 거의 언제나 번역이 필수불가결한 조건이었음을 알게 된다. 서양의 경우 망각의 중세에 새로운 지성의 빛을 던진, 파리를 중심으로 한 12세기 르네상스, 일찍이 부르크하르트가 "망상의 베일을 벗어던졌다"고 표현한 피렌체와 이탈리아의 15~16세기 르네상스가 이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예이다. 서양뿐만이 아니다. 메이지유신을 통해 탈아(脫亞)를 꿈꾸던 일본이 단시간 내에 스스로를 바꾼 수단이 바로 서양서의 대대적인 번역이었음은 이미 잘 알려져 있다. 일본뿐인가. 아직 연구가 일천하지만, 19세기 말에서 일본 강점기 직전까지의 짧은 시간 동안 조선 역시 유사한 경험을 했다. 묵직한 사상서로부터 잡다한 가정소사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종류의 서양서가 한국어로 번역되었던 것이다. 아마 당시 지식인들 상당수가 이제는 유학적 전통이 끝났다는 점을 인식했던 것 같다. 사실 이 번역 과정이야말로 어쩌면 "근대 한국의 문화사적 기원"을 추적하는 실마리가 될지도 모른다.

최근 번역된 디미트리 구타스의 < 그리스 사상과 아랍 문명 > (글항아리) 역시 번역이 문화의 갱신과 확산에 얼마나 큰 역할을 할 수 있는가를 예증하는 흔치 않은 저작이다. 무대는 대략 8세기에서 10세기 사이 압바스 왕조하의 바그다드이다. 이 시기 동안 유럽에서 사멸해가던 거의 모든 그리스어 저작들이 아랍어로 번역되었다. 이는 전례 없는 규모와 속도로 이루어졌다는 점에서 획기적이었다.

구타스는 이 번역운동이 왕조 엘리트 전체의 지지와 동참하에서 일어난 하나의 사회현상 내지는 문화현상이라는 점을 강조한다. 압바스 왕조는 페르시아 사산 왕조를 멸망시키고 그 영토에 새로운 이슬람 신앙 체계를 세웠다. 하지만 도처에 잔존하고 있던 구세력과 문화를 무시하기는 어려웠다. 특히 페르시아의 주 신앙이었던 조로아스터교의 위세는 여전히 위협적이었다. 압바스 칼리프들은 그들이 옛 전통을 이어받고 포용할 태세가 되어 있음을 알릴 필요가 있었다. 그 수단이 바로 그리스어 전적(典籍)의 아랍어 번역이었다.

3세기에서 7세기까지 지속된 사산 왕조의 조로아스터 신앙에 따르면, 모든 학문의 정수는 경전인 아베스타에서 비롯되었다. 하지만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침입으로 이 지혜의 보고가 약탈되었고, 이후 그리스어 저작들 속에 흡수되었다. 그들이 그리스어 저작을 곧 아베스타의 일부라고 보는 것도 이 때문이다. 압바스가 벌인 대대적인 그리스어-아랍어 번역운동은 바로 이러한 페르시아-조로아스터교적 전통을 포용하려는 의도에서 나타난 것이었다. 구타스는 알 만수르, 알 마흐디, 알 마문에 이르는 칼리프 치세에서의 번역 과정을 이러한 이념적 배경하에서 검토하고 있다.

번역은 단순한 모방이 아니라 그 자체가 하나의 창조적 행위이다. "번역은 반역"이라는 이탈리아 속담에 담긴 또 다른 의미가 바로 이것이다. 어디 이뿐인가. 번역은 동시에 혁명이기도 하다. 대대적인 번역운동이 그 사회를 혁명적으로 바꿀 수 있기 때문이다. 압바스 혁명은 이런 의미에서 정치혁명이었을 뿐 아니라 동시에 문화혁명이었던 것이다.

< 곽차섭 | 부산대 교수·사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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