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신참 조폭들, 대부분 고등학교 '일진' 출신

곽래건 기자 2013. 1. 17. 0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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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간 서울 강북구에 기생한 수유리파 판결문 봤더니

"맞담배는 1년 선후배끼리만, 형님을 부모로 동생을 자식으로…."

조직폭력단 '수유리파' 행동 강령 중 일부다. 수유리파는 서울 강북구 일대에서 1980년대 후반~2010년 초반 활동한 조직폭력단으로, 서울경찰청에서 추적하는 22개 폭력 조직 중 하나다. 서울북부지법 형사11부(재판장 김재환)는 수유리파 행동대장으로 활동하며 불법게임장·환전소 등을 운영한 혐의 등으로 기소된 정모(44)씨에게 징역 3년 6개월을 선고했다고 16일 밝혔다.

재판부는 판결문을 통해 "범죄단체는 그 자체만으로도 위험성이 크며 선량한 다수 시민에게 심각한 피해를 준다"며 "개인적인 범죄 행위에 비해 엄중한 처벌이 필요하다"고 양형 이유를 밝혔다. 이번 판결문에는 1980년대 이후 폭력 조직 수유리파의 각종 악행과 조직 운영방식의 변천사가 상세히 적혀 있었다. 다음은 판결문 내용을 요약 정리한 것이다.

수유리파는 1987년 '인디안파'로 시작했다. 서울 강북구 수유동, 노원구 상계동 일대에 유흥가가 번지기 시작할 무렵이다. 이들은 유흥업소를 돌며 보호비 명목으로 돈을 뜯어냈다. 유흥업소 출연 연예인도 이들에게 출연료를 내야만 했다.

하지만 '범죄와의 전쟁'이 선포된 1990년대 이후 수유리파는 쇠락을 시작했다. 1998년도엔 검찰 수사가 조여오자 부두목 등 5명이 일본으로 도피했다. 조직을 본격 재건한 것은 2007년부터다. 서울 강북구·성북구·도봉구 일대는 당시 재개발·경전철 등 사업으로 유동인구가 늘고 상권이 커지고 있었다. 이들은 재개발 조합 선거에서 유세장을 점거하고 폭력을 휘두르는 등 각종 이권에도 개입했다. 이어 사행성 PC방·게임장·도박장·퇴폐 유흥업소·사채 사무실 등을 직접 운영하거나 지분에 참여했다. 정씨를 비롯한 이들의 범죄 행각은 지난 2010년 경찰이 수유리파 조직원들을 일망타진(7명을 구속·12명을 불구속 입건)하면서 막을 내렸다.

이들은 조직 유지를 위해 매달 단합대회를 가졌다. 술집이나 식당에서만이 아니다. 경기도 가평 대성리 유원지에서 낮에는 축구·족구·산악 바이크·래프팅 등을 하고 밤에는 회식을 하는 2박 3일짜리 단합대회도 수차례 가졌다. "수유리파 파이팅! 흩어지면 죽으니 똘똘 뭉쳐 조직생활 하자"가 회식 구호였다. 명절 때마다 하부 조직원에게는 떡값과 과일박스를 돌렸다.

신규 조직원 양성을 위해 서울 강북구 한 빌라 지하층에 합숙소도 마련했다. 서른 살 아래로는 합숙생활을 했다. 2009년 충원된 20대 초·중반 신규 조직원 8명가량도 합숙 생활을 했다. 대부분은 고등학교 '일진' 출신이었다. 서른 살 이상 조직원은 매달 10만원, 행동대장급은 20만원씩 조직 운영비를 내 조직원들의 변호사비와 교도소 영치금(속칭 '옥바라지' 비용), 합숙소 운영비 등에 썼다.

행동 강령도 있었다. ▲선배들을 보면 90도로 고개 숙여 인사 ▲맞담배는 1년 선후배 간에만 가능 ▲다른 조직과 이권 개입 시 절대 밀리지 말 것 ▲형님을 부모로, 동생을 자식으로 생각 ▲선배 말에는 무조건 복종 등 여섯 가지다. 이를 어기거나 조직에서 이탈하려면 야구방망이나 쇠파이프로 일명 '줄빠따'를 맞았다.

경찰 관계자는 "최근 조폭 집단에 새로 가입하는 폭력배들은 대부분 고교 때 '일진' 출신으로 보면 된다"면서 "학교 등을 매개로 일진들도 선후배 관계가 있어 서로 끌어 주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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