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문10답 뉴스 깊이보기>조폭, '협객''정치깡패'거쳐 '3大패밀리' 분화

박준희기자 2013. 1. 11. 14: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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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촌 사망 계기로 본 조폭의 변천

최근 '범서방파' 두목 김태촌(64)이 사망하면서 양은이파, OB파 등 이른바 3대 전국구 폭력조직의 계보와 지형도가 어떤 방향으로 변화될지 세간의 관심이 몰리고 있다. 이미 기업형으로 진화한 폭력조직들은 서민 생활뿐 아니라 주식시장 등에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기 때문에 경찰 등 사법당국도 주요 폭력조직들의 향후 움직임에 주목하고 있다. 특히 학교 폭력과 외국 폭력조직의 국내 연계 여부도 향후 조직폭력계의 지형도를 결정짓는 주요 요소로 작용할 것으로 전망된다.그러나 금전적 실리를 추구하는 최근의 신흥 폭력조직들은 대형 조직으로 발전하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관측이 우세하다.

1. 조폭의 시초

이른바 '조폭'이라 부를 수 있는 폭력집단에 대한 기록은 이미 조선시대부터 나타난다. 조선시대 한양 뒷골목에는 '검계(劍契)'와 '왈짜'라는 무리들이 있었다. 군사조직과 같은 규율을 갖춘 검계나 왈짜는 몸에 칼자국이 없으면 가입할 수 없었다. 삿갓을 푹 눌러쓴 채 뚫어놓은 구멍으로 사람들을 내려다봤다. 이들은 도박장이나 기생들을 관리했고 이 권리를 두고 싸움질을 일삼았다.

조선왕조실록과 연려실기술 등에는 당시의 검계 같은 폭력집단에 대한 왕실과 사대부들의 우려가 기록되어 있기도 하다. 또 당시의 경찰청이라 할 수 있는 포도청에는 검계 가입의 증거로 볼 수 있는 '몸에 난 칼자국'을 단서 삼아 대대적인 검계 체포령을 내렸다는 기록도 있다.

2. 일제시대 조폭의 활동

조선 시대 검계나 왈짜와 같은 한량, 건달 부류의 폭력집단과 달리 일제 시대에는 조선의 상인을 보호한다는 명목으로 서울 명동과 종로 거리 등을 관리하는 본격적인 폭력조직이 등장했다. '장군의 아들' 김두한과 '시라소니' 이성순, '구마적' 고희경과 '신마적' 엄동욱 등은 드라마나 소설의 등장인물로 더 잘 알려져 있지만 활동 당시 맨주먹으로 일 대 일로 맞붙어 싸우는 '낭만 주먹'으로 이름을 날렸다.

김두한 등은 나라를 잃은 울분과 설움 속에서 일제에 대항하고자 조직을 만들었다는 점에서 해방 이후 조폭들과 차별화된 평가를 받고 있다. '협객'을 자처했던 이들은 조선 상인을 보호한다는 명분을 내세워 조직을 결성하고 일본계 조직과 대결을 벌였지만 당시 대표적인 국내 조폭이었던 김두환의 '우미관패'가 서울 수표교 인근에서 일본 '하야시패'와의 대결에서 패하면서 조선의 폭력조직은 한동안 와해됐다.

3. 조폭의 '정치깡패'화

1945년 광복을 맞으면서 혼란을 틈타 폭력조직들은 힘의 법칙을 내세워 또다시 세력화하기 시작했다. 또 좌·우익의 이념대립 속에서 조직폭력배들은 정치권과의 결합도 시도했다. 이승만 정권 이후 폭력조직들은 저마다 살 길을 찾아 이른바 '정치깡패'의 길로 접어들었다.

김두한과 이성순 등도 정계 인사들과 연계한 활동을 했으며 정치깡패의 대명사로 불리는 이정재와 그의 부하 유지광 등이 속한 '동대문 사단' 등이 벌인 정치테러 등도 역사에 기록돼 있다. 특히 우익단체로 위장한 폭력조직들은 이승만 정권을 옹호하는 유인물을 뿌리며 관제 데모를 벌이기도 했다.

1957년 5월 25일 서울 장충단공원에서 발생한 '장충단 민주당 시국강연회 방해 사건'으로 정치깡패에 대한 여론이 악화되자 검찰은 유지광 등 일부 정치깡패를 구속하면서 폭력조직들은 위기를 맞았다.

4. 군사정권의 대대적 단속

박정희 전 대통령은 1961년 5·16 군사 쿠데타 이후 정치깡패에 대한 대대적인 단속을 실시한다. 쿠데타 직후인 5월 21일 서울 거리에는 이정재를 비롯한 깡패들이 자신의 본명과 별명이 적힌 이름표를 가슴에 매달고 나타났다. 일행의 선두에는 '우리는 깡패입니다. 국민의 심판을 받겠습니다'라는 현수막이 세워져 있었다. 이정재가 범죄단체 수괴 혐의로 혁명재판에 회부돼 사형을 선고받고 같은 해 10월 형장의 이슬로 사라지며 정치깡패 시대는 종언을 고했다. 이정재의 부하이자 '영화계의 황제'로 군림하던 또다른 정치깡패 임화수도 두목의 뒤를 따랐다.

전두환 전 대통령은 '삼청교육대'를 통해 조폭 청산 작업을 이어갔다. 상당수의 조직폭력배들이 삼청교육대에 끌려가 와해되는 조직이 많았다. 노태우 전 대통령 역시 '범죄와의 전쟁'을 통해 조폭 소탕에 나섰다. 검·경의 대대적 단속으로 보스급들이 줄줄이 구속되면서 조폭들은 또다시 주춤했다. 최근 사망한 범서방파 두목 김태촌도 1986년 구속돼 폭력단체 구성 등의 혐의로 징역 5년과 보호감호 7년을 선고받았다.

5. 3大 전국구 조직의 형성과 와해

정치깡패에 대한 대대적 단속으로 무주공산이 된 1970년대 김태촌의 서방파와 조양은의 양은이파, 이동재의 OB파 등 호남 주먹들이 세를 키우며 서울로 진출했다. 이들의 등장에서 나타난 특징은 속칭 '사시미칼'로 불리는 회칼을 주무기로 삼는 폭력배들이 나타났다는 점이다. 이들 3대 조직은 회칼이라는 도구를 사용해 잔인한 방법으로 보복과 폭행을 감행해 세력을 전국으로 확대해 나갔다. 또 기존 사행산업과 유흥업소들에 대한 관리·갈취와 더불어 마약, 인신매매, 도박 및 고리대금, 청부살인 등 보다 죄질이 안좋은 범죄에 적극 가담했다.

1975년 양은이파가 기존 깡패 조직 출신인 신상사파를 습격한 '사보이호텔 습격사건'이 대표적 사건으로 꼽힌다. 1986년 김태촌의 지시를 받은 범서방파 행동대원들이 인천 모 호텔에 찾아가 나이트클럽 사장 황모 씨의 다리를 흉기로 난자한 사건과 같은 해 8월 서울 역삼동의 룸살롱에서 진석이파 조직원 8명이 범서방파 방계조직인 맘보파 조직원 4명을 흉기로 난자해 살해한 사건 등을 통해서도 과거와는 다른 이들의 범죄 양상을 엿볼 수 있다.

그러나 김태촌의 사망으로 범서방파는 과거와 같은 세를 형성하기 어려울 전망이다. 양은이파도 조직이 분해된데다 두목 조양은이 금융권 대출사기에 연루된 혐의로 경찰 수배를 받는 등 재기가 쉽지 않다. OB파도 눈에 띄는 활동이 없으며 두목 이동재는 해외에 머무는 것으로 알려졌다.

6. 김태촌 사망 이후 구도 어떻게

범서방파 두목 김태촌이 5일 사망한 것을 계기로 조직폭력계의 구도 변화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경찰에 따르면 지난해 8월 말 기준 전국 217개 폭력조직에 5384명의 조직폭력배들이 활동 중이다. 1개 조직당 평균 조직원 수가 약 25명에 불과해 3대 조직의 빈자리를 중소 규모의 기업형 조폭들이 채우고 있는 말 그대로 '조폭들의 춘추전국시대'다. 전국적 조직이 사라지고 중소규모 조직이 실리를 추구하는 형태로 점차 변화하고 있다.

향후 3대 조직과 같은 거대 전국구 폭력조직은 등장하기 어려울 전망이다. 경찰 관계자는 "과거 전국구 폭력조직은 지역 기반의 보스를 기점으로 조직원들이 뭉치던 방식이었다"며 "최근의 조폭들은 기업화되어 무력 충돌을 통해 조직이 통합, 흡수되거나 하는 현상은 나타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7. 기업화한 '3세대' '3.5세대' 조폭

검찰 등은 과거 정치깡패 시대를 1세대, 3대 전국구 조직 시대를 2세대로 칭한다면 최근에는 3세대, 3.5세대 조폭까지 등장했다고 구분한다. 1·2세대 조폭들이 주로 유흥업소 관리와 상가 갈취 등을 통해 활동자금을 마련했다면 최근에는 폭력조직들이 합법화된 법인 활동 등을 통해 적극적으로 돈벌이에 나서고 있다. 지난 1990년 범죄와의 전쟁 이후 거대조직이 와해됐지만 이후 부동산 경기의 활성화에 따라 중간급 보스들이 건축 시행사나 아파트·상가 분양 시장에 진출하면서 3세대 기업형 조폭이 2000년대 중반 이후 활개를 쳤다.

'돈맛'을 안 조폭들은 최근에는 금융과 기업 인수·합병(M&A) 시장까지 넘보고 있다. 이른바 '3.5세대' 조폭의 등장이다. 검찰 관계자는 "성공한 일부 조폭의 경우 여러 개의 상장회사를 운영하는 건실한 사업가로 위장하고 정·관계 유력 인사들과 친분을 쌓으며 비호세력까지 두고 있다"며 "조폭 수사를 위해 금융수사기법은 이제 필수"라고 말했다.

8. 경찰의 신흥조폭 대응

사법당국은 신흥 조폭들이 막대한 자금력을 갖추면 통제하기 힘든 수준까지 발전할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서울지방경찰청은 지난해 10월 서울 시내 31개 경찰서별로 '조폭척결 추진단'을 구성해 집중 단속에 나섰다. 경찰은 기존 주요 조직폭력에 대해 계보와 명단을 확보해 주기적인 관리를 하고 있지만 신흥 조폭에 대해서는 차별화된 대책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특히 최근 등장한 신흥조직들은 세력과 자금 확보를 통해 전보다 체계적으로 움직이기 때문에 보다 종합적이고 입체적인 단속이 필요하다. 해외로 진출한 조폭들에 대해서도 단속이 필요한 실정이다. 지난해에는 중국 마카오의 호텔 카지노 사업까지 진출한 폭력조직이 경찰에 적발되기도 했다.

9. 10代 '일진' 연계 우려

최근 학교폭력 사건 수사과정에서 성인 폭력조직과 연계된 10대 학생들이 드러나고 있다. 지난해 4월 경남지방경찰청은 축제기간에 중·고교생 12명에게 폭죽 장사를 강요한 고교생 이모(18) 군을 구속했다. 조사 결과 이 군은 지역 폭력조직의 일원이었으며 이 군 역시 조직의 성인 행동대원으로부터 이 같은 행위를 강요받았던 것으로 드러났다.

10대 학생들의 폭력조직 가담은 일선 학교의 불량서클을 모태로 하고 있다. 소위 '일진'으로 불리는 학생들이 학교 내에서 동료학생들을 상대로 금품갈취와 폭력 등을 행사하다 퇴학이나 정학 등을 통해 본격적인 조직폭력의 세계로 진출하게 된다. 이들은 조직에 가입한 뒤 또다시 학교 후배를 끌어들인다.

경찰 관계자는 "10대 일진 학생들은 조폭의 행동을 모방하려는 경향이 있어 성인 조폭의 영입 제의에 쉽게 넘어간다"고 지적했다.

10. 외국 조폭의 국내 진출

경찰은 국내 체류 외국인이 140만 명을 넘어서며 외국인 밀집지역을 중심으로 해외 조직폭력배들이 유입할 수도 있다고 경고하고 있다. 따라서 10일부터 오는 2월 11일까지 국제범죄수사대 등을 동원해 외국인 조직폭력배 집중단속을 실시하고 있다.

특히 전 세계에서 유통되는 히로뽕의 80%를 생산하는 태국과 라오스, 미얀마 3국 접경지대인 '골든 트라이앵글'의 마약 유통 허브로 한국이 급부상하면서 마약 유통과 함께 해외 폭력조직들도 함께 유입될 수 있다는 우려가 높다.

이미 지난 1995년 서울중앙지검 강력부가 중국 거점의 마약 밀수조직인 선양파와 창춘파, 웨이하이파 등의 조직원 35명을 검거한 사례가 있으며 최근에는 조선족 밀집지역에 중국 폭력조직인 흑사회 분파들이 유입된 것으로 알려졌다. 일부 해외 폭력조직들은 국내 기존 조직들과 연계를 통해 세력 확장을 노리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박준희 기자 vinkey@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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