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인터뷰]이창호 "영웅시대 끝? 내 승부는 진행형!"



'영웅의 시대는 끝났다.'
중국 스포츠 주간지 체단주보(體壇週報)의 기자이자 바둑논객으로 유명한 셰루이(謝銳)는 최근 한국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단언했다. 한국의 이창호나 이세돌, 중국의 구리(古力)나 쿵제(孔杰) 같은 절대강자가 세계바둑계를 지배하는 시대는 지나고 군웅이 할거하는 춘추전국시대를 맞았다는 것이다.
인류가 수만년에 걸쳐 이뤄온 문명을 산업혁명기 100년이 따라잡았듯이 수천년 연구돼 온 바둑 수읽기가 최근에는 수개월 만에 신수로 재정립되곤 한다. 그런 만큼 이창호 같은 불세출의 영웅이 나타나 오랫동안 세계바둑계를 호령하기는 힘들다는 것이 셰루이 기자의 말이다.
그의 말이 맞는다면 이창호는 세계바둑계의 가장 위대한 영웅이자 마지막 영웅이 될 공산이 크다. 이창호를 만나 '사람의 얘기'를 들어보았다.
■1인자도 아마추어가 두렵다
'절대 강자'가 군림하는 시대는 지났다는 얘기에 대해서는 이창호도 공감했다.
이창호는 그 이유로 '아마추어들의 기력 신장'을 꼽았다. 예전에 프로와 아마추어 사이에는 넘을 수 없는 벽이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자신은 물론 이세돌 같은 새로운 강자들도 아마추어에게 한방 얻어맞는 일이 흔하다는 게 이창호의 얘기다. 그런 아마추어들이 프로에 들어오자마자 좋은 성적을 내는 일이 많아 요즘에는 프로의 단위가 무의미해졌다고 그는 덧붙였다.
실제로 국내는 물론 중국 바둑, 한걸음 더 나아가 세계대회에서도 프로에 갓 입문한 초짜 초단들이 내로라하는 9단들을 거꾸러뜨리는 일이 적지 않다. 과거 이창호가 스승 조훈현을 꺾으며 '청출어람' 소리를 듣던 것은 이제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의 얘기가 된 셈이다.
■승부는 현재도 진행형이다
이창호는 "내가 약해졌다기보다는 다른 기사들이 강해졌다"고 말하면서도 "하지만 승부에서는 물러나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최근의 기풍 변화도 그 때문이라고 이창호는 귀띔했다.
실제로 전성기 시절 정확한 끝내기로 승리를 이끌어내 신산(神算)이란 별명을 얻은 그는 요즘 반상에서 싸움꾼으로 180도 변신했다. 전신(戰神)으로 불리는 스승을 뛰어넘을 태세다.
이러한 기풍 변화를 두고 "예전만큼 정확히 계산이 되지 않는다. 그래서 확실히 이기기 위해 싸운다"고 말했다.
여기서 재미난 사실 하나. 그는 "지금은 더욱 심해진 것이고, 예전에도 전체적으로 유·불리를 직감하는 정도이지 100수 언저리에서 반집이나 한집을 이긴다는 것은 알지 못했다"고 말했다.
"이창호의 계산서가 나왔다는 식의 말은 대개 기자들이 지어낸 얘기다. 반집 승부를 알 정도면 바둑을 두면서 왜 고심하겠느냐"고 그는 반문했다.
■아직은 한국이 약하지 않다
이창호는 한국바둑이 중국바둑에 밀린다는 얘기에 고개를 저었다. 그는 자신이 세계 최강자로 군림하던 때도 한·중 고수 20~30명만 놓고 보면 중국이 앞서 있곤 했다고 전했다. 하지만 최상위 강자 5~10명만 겨룬다면 여전히 한국이 강하다고 했다.
그러면서 이9단은 몇몇 후배들에게 따끔한 충고도 들려줬다.
세계 정상을 지키려면 재능도 뛰어나야 하지만 술과 담배는 멀리 하고 운동을 가까이 하면서 좋은 컨디션을 유지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했다. 세계대회 중에 담배를 피우기 위해 금쪽같은 시간을 흘려 보내고, 술로 컨디션을 망치는 후배들에게 전하는 일침이다.
자신의 주량에 대해서는 "술을 마시는 자리는 나쁘지 않는데, 술을 마시면 머리가 아픈 게 문제"라며 "특히 소주는 한두 잔만 마셔도 몸에 이상이 온다. 그러나 고량주는 10잔도 넘게 마신다"고 얘기했다.
■한국바둑리그 출전은 고민 중
그는 "이창호는 TV대국을 부담스러워하고, 그 때문에 내년 한국바둑리그에는 불참할 것"이라는 소문에는 '일단' 고개를 흔들었다.
그는 "몸에 열이 많다 보니 TV로 중계되는 바둑이 부담스러운 것이 사실"이라면서도 "하지만 요즘에는 많이 적응됐고, 바둑리그에도 출전하지 않을 까닭이 없다"고 했다.
내년에 주장이 아니라 2장으로 밀리면 체면을 구기는 게 아니냐는 질문에는 "나는 이미 올해도 2장이나 마찬가지였다"며 웃음지었다.
■가장 껄끄러운 상대는 강동윤
자신의 1인자 시대를 종식케 한 이세돌 9단을 두고서는 "내가 이세돌 9단과 치열한 승부를 겨룬 끝에 패하면서 정상에서 내려온 것이 아니다. 그냥 시간이 흐르면서 이9단이 1인자가 됐고, 나는 밀려날 때가 돼서 밀려난 것 뿐"이라며 "이9단이 정상에서 오랫동안 활약해 주기 바란다"고 말했다.
이창호는 '소년 장사' 박정환 9단에게 큰 기대를 보였다. 중국의 신예 강자들에게 맞설 최강의 '한국 병기'로 박9단을 꼽는 데 주저하지 않았다.
자신에게 가장 껄끄러운 상대로는 강동윤 9단을 꼽았다. 강9단의 끈적함에 말려들어 좋은 바둑을 놓친 적이 많다며, 어려운 상대라고 지목했다.
실제로 강9단은 이세돌 9단이 "내가 10년 동안 모은 안티팬을 강9단이 1년 만에 다 뺏어 갔다"고 말할 정도로, 이창호의 천적으로서 이창호팬들의 '원성'을 사고 있다. 이창호의 부진을 불러온 장본인으로까지 불린다. 그러나 이창호는 "강9단의 수는 정상적이다"고 그를 두둔했다.
한편 이창호는 이날 인터뷰에서 '딸바보'의 면모도 충분히(?) 보여줬다. 요즘 아내가 딸을 돌보느라 '100점짜리 내조'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고 말하면서도, 지금은 딸에게 신경쓰는 게 맞는 것 같다며 웃음을 터뜨렸다.
<엄민용 기자 margeul@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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