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국장바라기 마틴의 한식견문록

2012. 10. 31. 0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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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ef 이성민의 시크릿 레스토랑 4

전 세계인들이 가진 공통점 중 하나는 '먹는다'는 것. 하지만 각 나라에서 발전해온 음식의 재료, 조리법, 외형은 제각각이다. 그래서 다른 나라의 음식을 경험하는 것은 그 자체만으로 신선하다. 한국인이 맛보는 타국의 요리, 외국인이 말하는 한식은 어떤 느낌일까. 이성민 셰프와 그가 만난 사람들이 숨겨놓은 맛집에서 그 네번째 이야기가 시작된다.

'한상 차림'

작고 허름하지만 정겨운 모습이 인상적인 식당 안, 어색하지만 또박또박한 목소리가 들려온다. "청국장 주세요". 급하게 밥을 먹던 손님들도 잠시 식사를 멈추고 소리가 들리는 쪽을 바라본다. 목소리의 주인공은 영국 출신의 마틴 와츠(Martin Watts)다.

한식 매니아 마틴은 일부러 꾸밈없는 소박한 식당을 찾아 백반, 혹은 청국장을 자주 먹는다. 이유는 단순하다. 저렴한 가격에 푸짐하고 맛있는 한국의 가정식 한상 차림을 맛볼 수 있기 때문. 특유의 냄새가 나는 청국장을 맛있게 먹는 그의 모습은 한국인이 보기엔 매우 이색적이다.

마틴이 추천하는 식당은 강남 운전면허시험장 맞은편에 위치한 '백구식당'이다. 온돌바닥에 앉는 것이 불편해 테이블과 의자가 있는 식당을 찾다 우연히 들어오게 된 것이 첫 인연이다.

함께 방문한 백구식당은 솔직담백 그 자체였다. 불쾌하게 느껴질 수도 있는 청국장 냄새를 줄이기보다는 본연의 맛에 충실하기 위해 직접 담근 장으로 가감없이 찌개를 끓여 내놓는다. 밑반찬으로 나오는 음식들도 하나같이 맛이 좋다. 계란말이와 제육볶음은 어지간한 식당에서 단일메뉴로 시키는 것보다 푸짐하게 담겨 반찬으로 나온다.

가격도 착하다. 끼니마다 메뉴를 고민하는 직장인들을 위해 매일 찌개와 밑반찬이 바뀌는 점심메뉴를 구성해 5천원에 판매한다. 다른 메뉴들도 5천원을 넘는 법이 없다. 강남한복판에 위치한 식당에서 5천원 한 장으로 배를 채울 수 있는 곳이 얼마나 될까. 아마도 손에 꼽을 것이다.

청국장찌개를 한 국자 듬뿍 떠놓고 밥을 슥슥 비벼먹는 손놀림이 능숙하다. 마틴 와츠 개인의 생각은 진한 냄새가 날수록 깊은 맛이 난다고 한다. 실제로 발효가 잘 될수록 향이 강해지기 때문에 '냄새 나는 청국장이 맛있다'는 그의 생각은 틀리지 않다.

외국인에게 더 친숙하게 다가갈 수 있는 갈비, 불고기, 비빔밥 등이 아닌 청국장을 추천한 이유는 무엇일까. '한국의 색을 느낄 수 있어서' 라는 답변을 한다. 분명 갈비, 비빔밥 등은 너무나 맛있는 음식이다. 하지만 갈비를 먹을 때 드는 느낌은 '바비큐 요리처럼 맛있다'라는 것이다. 반면 청국장은 한식은 맛있다는 생각을 강렬하게 심어준다. 한국의 음식에서만 느껴지는 특유의 색을 알게 된다.

마틴은 해외에 소개되는 한식의 대부분이 쉽게 접근할 수 있는 무난한 요리들로만 구성된 것을 볼 때면 아쉬운 마음이 든다고 한다. 외국인들의 성향에 맞춘 코스요리나 단품요리가 진정 한식의 멋을 백퍼센트 발휘할 수 있을까 고개를 갸웃거리기도 한다. 그가 생각하는 한식의 아름다움은 다양한 반찬과 국, 찌개 등이 한곳에 어우러져 즐기는 한상 차림이다. 외국인의 입에 맞추기 위해 그들의 요리법을 따라 하는 순간 한식의 특색이 흐려진다는 것이다.

비빔밥 샐러드, 김치 피자 같은 퓨전요리들은 색다른 모습의 한식이라는 생각을 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근본적인 한식에 대한 이해없이 변형된 모습만 알려지는 것은 위험하다. 아류만 난무하게 된다면 분명 정체성을 잃어버릴 것이다.

뿌리 깊은 나무는 흔들리지 않는다. 한식이 세계에 깊은 뿌리를 내리기 위해서는 가공하지 않은 본연의 모습부터 알릴 필요가 있다. 청국장의 냄새 때문에 외국인들이 싫어하지 않을까 생각하는 것은 기우다. 음식의 좋고 싫음은 절대적 평가보다 상대적 취향이 크게 반영한다. 한국인들이 전세계 모든 음식을 좋아하지 않듯이 한식을 70억 세계인구가 좋아할 수는 없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자부심을 갖고 전통 한식의 맛과 멋을 다양하게 알리는 것이 아닐까.

백구식당

저렴한 가격과 푸짐한 양의 백반집주소: 서울 강남구 대치동 999-8 (강남운전면허시험장 맞은편)전화번호: 02-562-2529대표메뉴: 매일 바뀌는 점심백반메뉴 (찌개와 다양한 밑반찬으로 구성)가격: 1인당 5천원 이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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