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ver Story] "혹한기 훈련 때 얼룩덜룩 위장 남편이 그모습에 반했었대요"

권경성기자 2012. 9. 22. 0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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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육해공·해병대 '여군들의 수다'"구보가 산책인줄 알았던 제가 전투기까지 몰게 될 줄이야소위임관후 소대장 부임때 껄끄러워 하던 시선 기억 생생 상관이 존대 난감했던 경우도"기혼 3명 모두가 군인과 결혼 "육아문제가 큰 고민거리죠"

지난 11일 오후 서울 용산 전쟁기념관에 육ㆍ해ㆍ공군과 해병대 등 각군의 장교 4명이 광주 경기 전남 등지에서 모였다. 육군 김성현(35ㆍ여군 46기), 공군 박지연(34ㆍ공사 49기) 소령과 해병대 이숙연(32ㆍ해사 57기), 해군 김귀미(29ㆍ해사 60기) 대위가 그 주인공이다. '여군 전성시대'가 열린 듯 여성의 군 진출이 활발해지고 있는 요즘 대한민국에서 직업 여군으로 살아간다는 게 어떤 것인지 들어보기 위해 한국일보가 마련한 자리였다. 모두 여성의 군 참여가 본격 늘기 시작한 2000년대 초ㆍ중반 임관한 여성 장교들로, 박 소령과 김 대위는 각각 여성 최초의 전투기 편대장과 함대 소속 고속정장이라는 타이틀도 갖고 있다. 이들을 군으로 이끈 것은 거창한 꿈이 아니라 사관학교에 대한 환상이었지만 "군 생활을 그만두고 싶었던 때가 없었다"고 했다.

이들은 왜 직업 군인이 됐을까. 가장 많이 들었을 법한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은 싱거웠다.

김성현 소령="군인이셨던 외삼촌 영향이 컸어요. 당당하고 강하지만 가족에겐 부드러운 외삼촌의 모습을 접하면서 제 미래를 설계했죠. 부모님도 적극 찬성해 주셨고요."

박지연 소령="저는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신데다 군인 가족도 없었죠. 고3 때 장학금을 준다는 것을 알고 공군사관학교에 지원했습니다. 그냥 용돈 주고 학비 주는 특수학교 정도로 생각했어요. 사관학교를 나오면 군인이 된다는 것조차 몰랐고, 식후 30분 구보가 산책인 줄 오해할 정도였죠. 그랬던 제가 전투기까지 타게 됐어요. 군인은 만들어지는 거라고 생각해요."

이숙연 대위="저도 비슷하게 해군사관학교 모집요강에서 '여생도 첫 모집'이란 말과 파란 바다를 보고 '내가 갈 곳이다' 싶었습니다. 주변 반대를 모두 무릅썼죠."

'잘 모르고' 입대한 만큼 남성이 절대 다수인 조직에 적응하느라 애를 먹었다. 가부장적인 상관의 과보호와 이에 따른 남군 동료의 질시가 모두 부담이다. 간부들뿐만 아니라 거느리는 병사의 인정을 받기도 어려운 일이다. 여군으로서의 자리를 찾는 과정은 여성성을 지워야 할지 강점으로 내세워야 할지 고민의 연속이다.

박 소령="(남군 동료들부터)'역차별 당한다'는 얘기가 많이 들렸습니다. 중위 시절 비행단에 처음 배치됐을 때 소령이 존대를 하기도 했어요. 남군 중위에겐 편하게 하대를 하면서요. 결론적으로 그들과 '동류'가 되기 위해 제가 먼저 다가가는 수밖에 없었죠."

김 소령="남자들의 세계는 술과 떼려야 뗄 수 없어요. 술자리에서 어울리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회식 자리에서 고민을 나누면 오해도 풀리고 인간적인 정도 들게 마련이죠."

이 대위="소위 임관 뒤 처음 해병대 소총중대 소대장으로 갔을 때 소대원들이 하필 여자 소대장이 와서 귀찮은 일이 생기면 어쩌나 걱정하는 것 같았습니다. 마침 당시 훈련이 많았어요. 외려 다행이었죠. 지휘관이 동고동락하면 부하가 잘 따른다고 하잖아요. 소대원들과 더불어 벌벌 떨거나 땀 흘리고 부상을 입은 발도 봐주고 함께 숙영하고 행군하다 보니 어느 샌가 여자 소대장이 아닌 5중대 3소대장이 돼 있었습니다. 여군이 군에 적응하려면 스스로가 여성이라는 인식의 벽을 먼저 허물어야 해요. 남자가 대다수인 군대 문화를 인정하고 그들과 함께 하려는 노력이 선행돼야죠."

김 소령="처음에는 '강한 여군'이 다인 줄 알았어요. 소위, 중위 때는 (부대원들에게) 뒷짐 지고 소리만 지르기 일쑤였죠. 하지만 지내다 보니 제가 가진 강점은 따뜻한 모습이라는 걸 깨닫게 됐어요. 큰 누나 같은 역할을 해야겠다고 마음 먹었죠. 군대가 강하고 카리스마 있는 사람들은 많지만 병사들이 편하게 의지할 사람은 상대적으로 적은 곳이니까요. 첫 아이를 낳은 뒤부터는 병사들이 아들과 겹쳐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다치거나 밥을 못 먹은 병사를 보면 안타까운 감정이 더 커지더군요. 엄마의 마음이랄까요."

하지만 결국 여군을 군인으로 만드는 것은 남성성도 여성성도 아닌 전문성이다.

김귀미 대위="병사들에게 '나는 고속정 정장이지 여군 정장이 아니다'라고 강조합니다. 그렇다고 남성처럼 보일 필요도 없다고 생각해요. 제가 정장이 될 수 있었던 건 교육을 받고 자격을 갖춰서이지 다른 이유는 없기 때문입니다. 적응은 성별이 아니라 개인 능력 차에 따른 문제일 뿐입니다. 전투 업무 투입과 관련해서도 여성의 평균적 신체 능력이 남성보다 떨어지는 건 사실이지만 전투력과 신체 능력이 반드시 비례하는 건 아니라고 봅니다. 현대전이 더 이상 육탄전이 아닌 만큼 전략과 전술에 능통한, 전문 지식을 갖춘 군인만이 승리를 가져갈 수 있겠지요."

"예쁘다"는 칭찬마저 "군복이 잘 어울리고, 군인으로서 멋지다"는 뜻으로 받아들이는 경향이 강한 여군들은 자신을 여성으로 보는 시선에서 벗어나기 위해 서둘러 기혼 여성이 되기도 한다. 김 대위를 뺀 기혼 여군 세 명은 모두 군인과 결혼했다.

김 소령="아무래도 평상시 봉寬?접촉할 기회가 많을 수밖에 없으니까요. 남편은 상급 부대에 근무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겨울 혹한기 훈련 때였죠. 지휘관이 제가 소속된 부대를 방문할 때 남편이 수행했어요. 군단장님 오신다고 위장을 얼룩덜룩 더 철저히 했는데 그 모습에 반했다고 하더라고요. 그런 모습을 좋게 봐주는 군인 배우자를 만난 게 행운이죠."

이 대위="저는 아들이 7살인데 아직까지 제가 직접 키워본 적이 없어요. 출산 후 석 달 만에 경기 의정부에 계신 친정 부모님께 아들을 맡기고서는 주말마다 경북 포항과 전남 장성 근무지에서 의정부까지 아들을 보러 차를 몰고 한 달음에 달려가곤 했죠. 그러다 중대장이 돼 연평도에 들어갔는데, 육지에서는 그나마 1~2주에 한 번씩 보던 아들을 아예 볼 수 없으니 너무 힘들더라고요. 친정 부모님이 아들을 데리고 연평도에 오셨다가 섬에서 나가던 날 배에서 4살배기 아들과 작별 인사를 나눠야 할 때 가슴이 너무 아팠습니다."

현역 여군 장교들은 "군인은 여성으로서 도전해볼 만한 매력적인 직업"이라고 입을 모았다. 그러나 당부도 잊지 않았다. 안정된 직장으로만 여겨선 군 생활이 어렵다는 것이다.

이 대위="군인을 여성으로서의 멋과 직업적인 측면에서만 보고 지원해서는 안 됩니다. 군인은 분명 전쟁을 대비하고 유사시 전투에 참가하기 위해 있는 존재인 만큼 언제든 국가와 국민을 위해 나 자신을 내던지겠다는 자세와 희생할 수 있다는 마음가짐이 꼭 필요합니다."

박 소령="경제난, 취업난 탓에 군대를 안정적인 직업군의 하나로 보고 지원하는 여성이 많은 것 같습니다. 하지만 군대는 단순히 월급 받는 회사가 아닙니다. 또 군인에 도전하는 여성들에게 욕심을 내라고 주문하고 싶어요. 남성과 동일한 기회와 계급이 주어지는 것에 만족하지 말고, 동일하거나 그 이상의 평가를 받고자 하는 성취욕을 가져야 합니다."

권경성기자 ficcione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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