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구계 거장들의 잊지 못할 명언들

LEGENDARY QUOTES WE NEVER FORGET거장들의 잊지 못할 명언들
"농구를 하면서 9,000개가 넘는 슛을 실패했다. 패한 경기도 300경기가 넘는다. 들어갈 것이라 생각했던 위닝샷도 26번이나 실패했다. 내 삶은 실패의 연속이었다. 그게 바로 내가 성공한 이유다." '농구황제' 마이클 조던의 코멘트 중 필자에게 가장 큰 영향을 끼친 말이다. 농구계에는 이처럼 팬들의 가슴속에 두고두고 남을 만한 명언들이 많다. 역사속 명장, 스타들의 명언을 정리해봤다.
"감독들은 그들이 패하는 이유가 전술적인 실패나 실수가 가장 크다고 생각할지 모른다. 그러나 그것보다는 공·수에서 감독으로서 선수들에게 기본적으로 숙지시켜줘야 할 부분들을 놓침으로써 패하는 경기가 훨씬 더 많다." - 냇 홀먼
→ 냇 홀먼은 원로 농구인들에겐 대단히 친숙한 이름이다. 1920년대 미국 프로농구 오리지널 셀틱스(Original Celtics)를 지도했던 그는 50년대 초청 감독자격으로 방한해 국내 농구인들의 기량 발전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미국에서는 주로 동부 뉴욕에서 활동했던 그는 '계약'이라는 개념을 도입한 최초의 감독이기도 했다.

"농구선수로서 어떤 활약을 했는가보다는 한 사람으로서 무엇을 했느냐가 더 중요하다." - 존 우든
→ 미 대학농구(NCAA)를 잘 모르는 이들도 UCLA와 존 우든 감독은 알 것이다. 루 앨신더(카림 압둘-자바), 빌 월튼 등 당대 스타들을 이끌고 무려 10번이나 우승했다. 이는 대학농구 역대 최다우승 기록이다. 하지만 우든은 승리 기록보다는 '진정한 리더'로 기억되고 있다. 선수들에게 학업 성적과 인성을 더 강조했으며, 실력 좋은 선수를 라이벌에게 뺏기더라도 UCLA와 자신의 철학에 맞지 않는 선수는 과감히 선발하지 않았다. 2010년, 99세의 나이로 타계한 뒤에도 그의 리더십을 칭송하는 책들이 여전히 나오고 있다.
"나는 수비를 상대의 공격 생산력을 제한하기 위해 감독이 사용하는 병법(兵法)이라 정의하고 싶다. 상대 득점을 줄이는 것이야말로 우리 팀이 승리할 가능성을 더 높여줄 수 있는 가장 중요한 방법이기 때문이다."- 잭 렘지
→ NBA에서만 864승을 거두었으며, 1996년 NBA가 선정한 「위대한 10인의 감독」에 이름을 올렸던 잭 렘지는 누구보다도 수비를 강조했던 지도자였다. 그는 "혹시나 수비하는 시간을 단순히 우리 팀이 다시 공을 잡아 공격할 때까지 지체되는 시간이라 생각한다면, 당신과 나의 생각은 전혀 다를 것이다"라며 말하기도 했다.
"한 사람이 팀에서 가장 중요한 일원이 될 수 있을 지는 몰라도, 그 사람 혼자서 팀을 만들 수는 없을 것이다."- 카림 압둘-자바
→ '스카이 훅슛'으로 유명한 압둘-자바는 1970~80년대 NBA 센터의 아이콘이었다. 1989년, 42살의 나이로 코트를 떠났던 그는 NBA 역대 최다 득점(38,387점)과 최다 출전시간(57,446분), 최다 올스타 선정(19회) 등 수많은 기록을 보유하고 있으며, 코트 밖에서는 신사다운 품격 있는 모습으로도 존경을 받았다. 특히 나이가 들어 팀내 주도권을 후배 매직 존슨에게 넘겨줘야 했던 시점에서도 (고민은 많았지만) 주저 없이 자신의 처지를 인정하고 매직을 서포트하기도 했다. 덕분에 레이커스도 80년대를 화려하게 보낼 수 있었다.

"농구는 신장이 아니라 심장으로 하는 것이다." - 앨런 아이버슨
→ 아이버슨의 전성기 활약을 본 분들이라면 누구든 그의 말에 동조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신발을 벗으면 180cm도 안 될 정도로 작은 체구였지만, 코트에서 그는 누구보다 용감했다 거인들이 득실거리는 NBA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던 원동력은 바로 그의 '열정'에 있었다. 아이버슨은 "내 심장(heart)이 내 키(height)보다 더 크다"고도 말했다.
"프로가 된다는 것은, 내가 하기 싫어하는 일들을 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줄리어스 어빙
→ 프로선수들의 삶은 화려해 보이면서도 고달프다. 일요일도, 크리스마스도 없다. 하지만 프로선수라면 이를 당연히 받아들여야 한다. 1970년대 미국 최고의 농구스타였던 'Dr.J' 줄리어스 어빙은 선수들에게 "하기 싫은 날에도, 당연히 해야 하는 것이 바로 프로다"라고 강조했다.
"열정도 능력이다. 열정이 없다면 성취도 없다. 도전을 사랑할 때 경기를 갈망하게 되고, 경기를 갈망하면 연습은 더욱 쉬워진다." - 마이클 조던
→ 조던은 NBA 역사상 최고의 '연습 벌레'였다. 우승을 한 뒤에도 그는 발전을 갈망했다. 조던은 자신이 이겼던 경기는 다시 보지 않는다고 한다. 훗날 그는 커리어를 통틀어 가장 많이 본 경기는 디트로이트 피스톤스와의 경기였다고 고백했다. 이유는? 디트로이트가 플레이오프에서 자신에게 가장 많은 패배를 안긴 팀이었기 때문이었다.
"농구는 다섯 명이 하는 팀 게임이다. 하지만 그것이 모든 선수들이 동등한 수의 슛을 던져야 한다는 말은 아니다." - 딘 스미스
→ 마이클 조던의 노스캐롤라이나 대학 스승인 딘 스미스는 NCAA 디비전 I에서 36년간 879승을 거둔 명장이다. 그러나 존 우든 감독과 마찬가지로 그의 위대함은 비단 '성적'에서만 나타나는 것이 아니다. 그는 팀의 첫 번째 선수만큼이나 12번째 선수에게도 깊은 관심을 가졌다. 선수로서의 성공 가능성 뿐 아니라 '한 사람'으로서의 진로에까지 관심과 애정을 쏟았다. 또 그는 많은 스타를 거느렸음에도 불구, 한 명에게 의존하는 경기보다는 많은 패스를 이용한 공격을 강조하기도 했다.
"배짱이 있다는 말은 두려움을 못 느낀다는 의미가 아니다. 두려워도 꿋꿋이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 바로 배짱이다." - 팻 라일리
→ 1980년대 LA 레이커스의 '속공 환상곡'을 연주했던 명 지도자. 현재 마이애미 히트의 경영을 책임지고 있는 라일리가 처음 '감독'직을 맡았던 것은 겨우 36살 때였다. 그러나 그는 거침이 없었다. 기라성 같은 대스타들을 한데 모아 레이커스에서만 4번 우승했다. 사람들은 '레이커스'하면 속공만 생각하나, 그 대부분의 속공이 강력한 수비와 리바운드에서 나왔다는 사실을 잊곤 한다. 배우 뺨치는 수려한 외모 뒤에는 늘 거칠고 질긴 수비만을 강조했던 라일리만의 타이트한 지도도 있었다는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다른 코치들이 한다고 해서 따라할 필요는 없다. 여러분들 스스로의 코칭 철학을 찾아야 한다. 지금 여러분이 처한 상황과 스타일을 제대로 아는 사람은 오로지 여러분뿐이기 때문이다." - 텍스 윈터
→ 많은 지도자 및 NBA 단장들은 윈터를 "농구하는 과학자"라 불렀다. 그만큼 많은 연구와 노력을 기울였다. 시카고 불스에 트라이앵글 오펜스를 도입한 주역도 윈터였다. 트라이앵글 오펜스가 없었다면 '필 잭슨 신화'도 존재하지 않았다. 그는 틈날 때마다 후배들을 위해 "자신의 색깔을 가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는 오늘날 국내 농구지도자들도 많이 강조하는 대목이다.
"블록을 잘한다는 의미는, 모든 슛을 저지한다는 것이 아니다. 상대로 하여금 자신이 슛을 던질 때마다 블록 당할 지도 모른다고 겁먹게 만드는 것이다." - 빌 러셀
→ 1950~60년대 NBA에서 빌 러셀이 뛴 보스턴 셀틱스는 유일하게 100득점을 넘겼던 팀이었다. 고득점의 원동력은 바로 속공. 그리고 그 뒤에는 빌 러셀의 강력한 수비가 있었다. 러셀은 수비와 궂은일을 즐겼다. 당시 흑인이었던 그가 동료들로부터 인정받고, 그들이 의지할 수 있는 선수가 되기 위해서는 그것만이 유일한 방법이었기 때문이다. NBA는 그의 공로를 기리기 위해 NBA 파이널 MVP 트로피의 이름을 「빌 러셀 트로피」라 지었다.

"최고의 팀-워크는 대화에서 시작되어 대화로 끝난다." - 마이크 슈셉스키
→ NCAA에서 '리더십'하면 빠질 수 없는 인물이 바로 듀크대의 슈셉스키 감독이다. 현재 대학농구 최다승 감독으로서, 2006년부터는 미국대표팀 전임감독을 맡아 세계선수권대회와 올림픽 우승을 이끌었다. 그는 대표팀에서도 기라성 같은 NBA 선수들을 하나로 뭉치게 해 미국농구 자존심 회복에 성공했다. 듀크 팬들은 그를 기념하게 위해'홈코트를 '코치K 코트'로 부르고 있다
< 논란 속 그 말들 >
스타들이 항상 바른 말만 하는건 아니지!
"나에겐 부양해야 할 가족이 있다." - 라트렐 스프리웰
→ 감독 폭행사건으로 악명을 떨친 스프리웰. 그는 2004년, 미네소타 팀버울브스가 3년, 2천만 달러 계약을 제안한 것에 대해 "그 돈으로는 가족을 부양하기 힘들다. 더 필요하다"고 말해 비난을 받았다. 이후 그는 태업성 플레이로 일관하다가 갈 곳 없는 신세가 됐다. 개인사업도 파탄이 났다.
"당신은 마이클 조던처럼 될 수 없을 것이다. 아마도 나중에 자라면 당신의 아버지나 어머니처럼 살고 있겠지. 그게 현실이다." - 찰스 바클리
→ 어딘가 모르게 씁쓸해지는 말이다. 르브론 제임스도 '리얼 월드(real world)'라는 단어를 골라 같은 맥락의 말을 했다. 바클리가 선수로 뛰던 시대에 인터넷이 존재했다면 참 볼만 했을 것 같다.
"신께서는 누구도 완벽한 사람은 없다고 말씀하셨다. 내 자유투 성공률이 40%인 이유다." - 샤킬 오닐
→ 오닐의 언변은 데뷔시절부터 청산유수였다. 골밑에서 위력적이었던 그였지만, 자유투 성공률이 60%도 되지 않아 늘 언론과 상대의 조롱거리가 됐던 오닐. 그는 자신의 자유투 실력을 이렇게 변호했다.

"나의 재능을 사우스 비치(마이애미의 유명한 해변가)에 가져갈 것이다." - 르브론 제임스
→ 2010년, 마이애미 히트로 이적을 발표하면서 르브론 제임스가 했던 말. 따지고 보면 틀린 말은 아니다. 그렇지만 조용히 이적해도 됐을 것을 '디시전 쇼(Decision Show)'라는 TV 생중계를 만들어 이런 말을 한 탓에 그는 공공의 적이 되고 말았다. 무엇보다 재계약을 희망했던 클리블랜드 팬들은 배신감에 격분했다. 전문가들은 "제임스가 클리블랜드 팬에게 가장 직접적인 방법으로 비수를 꽂았다"고 평가했다.
#사진 - NBA 제공
저작권자 ⓒ 점프볼.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2012-08-20 손대범 기자( subradio@jumpbal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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