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민종, 유부남 장동건 부럽지 않다

- 장동건은 고소영과 결혼했지만, 김민종은 여전히 오빠다- < 신사의 품격 > 김민종, 영원한 오빠의 품격
[엔터미디어=김교석의 어쩌다 네가] < 신사의 품격 > 은 각기 다른 캐릭터의 친구들이 모인 커뮤니티 속에서 사랑이 피어나는 이야기다. 그 어떤 에피소드가 진행되든 그 울타리 안에서 벌어진다. X세대라는 단어가 익숙한 사람이라면 뭔가 아련한 느낌이 들지 않는가? 그렇다. < 신사의 품격 > 은 90년대 청춘물의 코드가 흐르는 드라마다. 한때 신세대라는 수식어가 붙었던 청년이 중년이 될 만큼 긴 시간이 흐른 뒤에 찾아온 올드스쿨 청춘물이자 레트로 로맨스 드라마다. 여기서 90년대 청춘스타 시절 캐릭터와 별반 다르지 않은 최윤 역을 맡은 김민종은 일종의 힌트다. 90년대 청춘물에 대한 기억과 < 신사의 품격 > 을 잇는 연결고리로써 당시의 추억과 감성으로 시간여행을 보내주는 돈데크만의 주전자인 것이다.
김민종이 연기하는 최윤 캐릭터에서 1994년 여름, 대한민국 청소년들의 캠퍼스 라이프 판타지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청춘 드라마 < 느낌 > 이 떠오른다. 역시 20여 년 전 김민종이 출연했던 이 드라마는 한 줄로 설명하자면 좀 난감한데, 삼형제와 한 명의 이복 여동생 간의 사랑 이야기다. 설정만 보면 갸우뚱하겠지만 사랑의 아련함을 여린 감수성으로 그려낸 로맨스 드라마였다. 또한 손지창, 김민종, 이정재, 류시원, 이본 등 당대 탑 스타들이 대거 출연한데다가 신세대 캐릭터의 전형을 인테리어와 패션으로 표현해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또한 그 주인공들이 함께하는 커뮤니티에 대한 동경 덕분에 1990년대 트렌디 드라마의 정점이자 'X세대' 청춘물의 상징으로 자리매김 하게 됐다.
김민종은 80년대 마지막 하이틴 스타이자 90년대 첫 번째 아이돌 스타였다. 당대의 홍콩 스타들처럼 연기와 가요 무대를 두루 섭렵하며 '오빠'가 되었고, 드라마와 가수활동을 넘어 영화도 활발히 찍었다. < 느낌 > 은 그런 그의 전성기를 열어준 드라마였다.
평행이론을 신봉한다면 < 느낌 > 과 < 신사의 품격 > 의 연결고리는 여러군데서 찾을 수 있다. 화려하고 가장 큰형다운 빈(손지창)은 김도진(장동건), 냉철하고 지적이지만 지고지순한 순애보를 가진 현(김민종)은 최윤, 열정적이고 직선적인 준(이정재)은 운동 잘하고 남자다운 임태산(김수로)과 코믹하고 낙천적인 이정록(이종혁)을 합친 듯하다. 여성 캐릭터 배치도 비슷한데, 서이수(김하늘)는 청순가련한 유리(우희진)에 코믹을 코팅한 버전이며, 홍세라(윤세아)는 신세대 여성의 당당함을 묘사한 혜린(이본)과 주희(이지은)를 닮았다. 사실 이런 식의 유사성은 청춘물의 캐릭터 구성이 이 틀을 크게 벗어나지 않기 때문이라고도 할 수 있다.

< 느낌 > 에서 가장 대비된 캐릭터는 더 블루의 멤버였던 손지창과 김민종이었다. 여성적이며 자상한 성격에 벽에 온갖 잡지를 오려 붙이고 화려한 남방패션을 연출한 손지창과 달리 김민종은 깔끔하고 정돈된 방에 살면서 뿔테 안경을 쓴 냉철한 성격의 캐릭터를 연기했다. 사랑의 방식도 전혀 달랐다. 손지창은 두 여자 사이에서 갈팡질팡했지만 김민종은 그때 이미 차가운 도시남자의 순애보를 집대성했다. < 신사의 품격 > 의 최윤과 다른 게 거의 없다.
김민종은 < 느낌 > 에서 공부를 열심히 해 딜러가 됐던 것처럼 < 신사의 품격 > 에서는 친구 중 공부를 가장 열심히 해 변호사가 됐다. 마찬가지로 가장 사려 깊고 드러내지 않는 희생을 할 줄 알며 순애보로 살아간다. 연애에 있어서도 김도진처럼 나쁜 남자의 매력을 물씬 풍길 수도, 임태산처럼 남자다움으로 돌직구를 던질 수도, 이정록처럼 귀여움으로 어필하는 것 모두 어울리지 않는 남자다. 아니 여자에게 먼저 접근하는 것 자체가 어울리지 않는다. 예쁘고 어리고 돈 많고 배운 거 많은 임메아리(윤진이)의 애정공세에 방패를 드는 게 더 어울리는 남자인 것이다.
서브라인이긴 하지만 최윤과 임메아리의 이런 창과 방패의 로맨스에서 < 신사의 품격 > 의 매력이 드러난다. < 느낌 > 이 한 여자를 가운데 둔 세 남자의 캐릭터를 시청자들에게 펼쳐보였다면, < 신사의 품격 > 은 각기 다른 네 남자의 캐릭터를 각자 다른 여성과 짝을 지어 보여준다. < 신사의 품격 > 에 빠져드는 이유는 이런 각기 다른 캐릭터가 경쟁하지 않고 함께하는 '커뮤니티'에 있다.

신데렐라 스토리나 현대판 판타지 같은 로맨스물들이 대세가 되기 전까지 젊은이들을 위한 청춘물의 문법은 따로 있었다. 즉 '나도 저 커뮤니티 속에 속하고 싶다'는 감정 유발은 당시 신세대 청춘물의 1차 성공조건이었다. 실제로 90년대의 10대들은 좋은 대학만 가면 < 우리들의 청춘 > < 내일은 사랑 > < 카이스트 > < 남자 셋 여자 셋 > 처럼 사랑과 우정의 이름으로 젊음을 불사를 커뮤니티가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소년들은 우희진과 같은 첫사랑을 꿈꿨고, 소녀들은 더 블루의 두 오빠 중 어떤 선배가 더 매력적일지 미리 고민했었다. 이처럼 사랑과 우정이 피어나는 커뮤니티는 < 신사의 품격 > 에 빠져들게 하는 가장 중요한 장치다. 게다가 복잡한 삼각구도 대신 코미디가 있고 가슴 아픈 이별 이야기 대신 시작하는 연인들만 배치하면서 청춘물의 커뮤니티에 치정은 빼고 로맨틱 코미디의 감성을 더했다.
< 신사의 품격 > 과 90년대 청춘물의 연관성은 첫사랑의 설렘, 지고지순한 사랑과 우정이라는 순정만화다운 연애관에서도 찾을 수 있다. 김은숙 작가는 한국판 < 섹스앤더시티 > 를 염두에 두고 있다고 했지만 < 신사의 품격 > 의 사랑은 욕망이라기보다 로망이고 현실이라기보다 판타지다. 실제로 < 섹스앤더시티 > 같은 현실적 연애관은 같은 방송사의 < 짝 > 이 더 잘 구현하고 있다.
만약 < 짝 > 스러운 연애를 하는 와중에 콜린(이종혁)이 친부를 찾으러 간다는 < 맘마미아 > 의 설정이 더해졌다면, 게다가 첫사랑 김은희(박주미)까지 나타나 < 사랑과 전쟁 > 의 콘셉트까지 덧씌워졌다면 막장의 신기원을 개척했을 것이다. 콜린의 아버지 찾기가 절정에 이른 지난 주 방송에 많은 시청자들이 난감해한 것도 바로 이 청춘물의 코드를 이탈했기 때문이다.

< 신사의 품격 > 을 40대 중년의 사랑이나 신세대 중년의 탄생으로 표현한다면 그것은 표피만 봤기 때문이다. 40대를 강조하면 할수록 드라마 속 인물들의 화려한 설정과 여유만점의 일상이 오히려 더 거리감을 느끼게 만든다. 이 드라마를 향한 가장 큰 반감과 지적이 현실성 부족인 것도 40대를 내세웠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현실성 부족이 바로 < 신사의 품격 > 이 사랑을 받는 이유다. 90년대 중반 청소년들에게 캠퍼스 라이프의 판타지를 심어준 청춘물의 주인공들이 마흔이 된 지금, 배역의 나이에 맞는 판타지를 보여주고 있다. '40대가 되면 나도 저런 삶을 살고 있을 거야'와 같은 판타지는 더 이상 유효하지 않지만 90년대 청춘물을 봤던 시청자들의 추억을 충분히 자극할 만하다. 여기서 김민종의 존재는 무언의 메시지이다. 장동건은 고소영과 결혼했지만, 김민종은 여전히 오빠다.
칼럼니스트 김교석 mcwivern@naver.com
[사진=SBS, K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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