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의 맛' 김효진에 왜 이리 분노할까

[엔터미디어=듀나의 영화낙서판] < 돈의 맛 > 을 보면서 나는 돈 많은 한국 남자들이 젊은 여자들을 데리고 노는 걸 구경하는 건 굉장히 재미없는 일이라는 것을 다시금 확인했다. 누군가에겐 그게 플레져일 수도 있겠지만 나에겐 그게 어떤 종류의 플레져에도 해당되지 않는다. 그리고 기자간담회에 날아든 질문들이 들어보면, < 돈의 맛 > 의 해당 장면이 지나치게 길고 장황하고 지루하다고 느낀 관객은 나뿐만이 아니었던 모양이다.
그런데 시사회가 끝나고 영화의 반응을 확인하기 위해 트위터에 들어갔을 때 나는 그 엑스트라들과 관련된 재미있는 트윗들을 발견했다. 최소한 두 사람 이상의 입에서 같은 의견이 나왔고 그 의견들이 꾸준히 리트윗 되는 걸 보면 이는 나름 보편화된 의견인 모양이다.
내용은 다음과 같다. < 돈의 맛 > 에서 노출을 하는 배우들은 모두 단역들이나 무명의 조역들이다. 김효진이나 윤여정 같은 스타들은 잠자리 장면을 찍어도 노출을 안 한다. < 돈의 맛 > 은 계급사회를 비판하는 영화지만 영화의 노출 정도는 영화가 비판하는 계급 사회의 논리와 닮았다.
그럴싸하게 들리는가? 하긴 그럴 수도 있겠다. 하지만 조금 꼼꼼하게 다시 한 번 생각해보자.
일단 < 돈의 맛 > 영화 안에서 각각의 노출들이 어떤 의미가 있는지 살펴보자.
가장 먼저 노출을 하는 사람들은 앞에서 언급한 지저분한 파티에 참가한 배우들이다. 이들은 대부분 벗고 있다. 하지만 바로 그 장면에서는 바로 그것이 내용이다. 이 영화의 남자들은 잠자리를 돈과 권력으로 산다. 주도권을 쥐고 있는 것은 남자들이고 거기에 봉사하는 것은 여자들이다. 당연히 여기서 노출이 많아야 하는 것은 여자들이다. 감독이 그 장면을 찍는 과정을 즐겼는지는 나 알 바 아니다. 중요한 건 그 노출이 장면의 주제와 맞아 떨어진다는 것이다.
이 영화에서 가장 노출이 많은 사람은 필리핀인 메이드 에바를 연기하는 마우이 테일러이다. 여기서도 권력의 논리는 바뀌지 않는다. 에바는 백윤식이 연기하는 윤회장과 불륜관계를 맺고 있는데, 윤회장이 아무리 로맨티스트 흉내를 내고 싶어도, 이들간의 관계가 돈 많은 늙은 남자와 젊은 고용인의 상하 관계라는 사실은 바뀌지 않는다. 약자는 에바이며, 당연히 신체가 많이 노출되어야 하는 쪽도 에바이다.
다음은 윤여정이다. 영화 중간에 윤여정이 연기하는 금옥은 김강우의 캐릭터 연작과 잠자리를 한다. 여기서 윤여정의 가슴은 노출되지 않는다. 하지만 왜 노출되어야 하는가. 이 장면에서 주도권을 잡고 있는 건 고용주인 금옥이고 연작은 약자이다. 당연히 신체가 더 많이 노출되어야 하는 쪽은 연작이고 실제로도 그 장면에서 가장 많이 드러나는 건 김강우의 몸이다. 완벽하게 논리가 성립된다. 그리고 성립이 안 된다고 쳐도, 윤여정이 굳이 관객들에게 가슴을 보여줘야 할 이유가 있나? 그 나이의 배우에게 그건 좀 심한 요구가 아닌가?
마지막으로 김효진이다. 김효진은 후반부에 김강우와 사랑을 나누는 장면이 하나 있다. 사실은 없어도 상관없었다. 그 상황까지 가는 과정 자체가 작은 코미디의 기승전결을 이루고 있어서 정작 그 장면 자체는 덤이기 때문이다. 하여간 이 장면에서 김효진은 가슴을 노출하지 않는다. 하지만 왜 그래야 하는가? 그 장면은 이 영화에서 계급이 반영되지 않는 유일한 노출신이다. 특별히 한쪽이 더 심하게 노출되어야 할 이유도 없다. 김효진이 노출하지 않아 분노한 관객들은 잘 눈치를 못 챈 모양인데, 그 장면에서는 김강우도 별로 노출이 없다. 그리고 그 상황을 고려해 보면 두 사람이 상대방의 옷을 벗기거나 할 여유도 없다.
다시 말해 < 돈의 맛 > 에서 노출은 극중 논리나 주제에 딱딱 맞아 떨어진다. 영화의 흐름 안에서 본다면 이들의 노출 정도가 이상하게 느껴질 부분은 전혀 없다. 그런데도 이런 비판이 동시에 나오는 걸 보면 은근히 일반론이 강한 모양이다?
그렇다면 한 번 일반론을 따져보자. 흠, 시작부터 어렵다. 대상이 뭔지 알 수 없는 것이다. 비슷한 주제를 다룬 다른 트윗에서는 < 하녀 > 에서 전도연이 '하녀 계급'이고 노출이 심하다는 것을 언급한다. 그런데 또 비슷한 주제를 다룬 다른 글에서는 < 간기남 > 에서 가슴을 보여주는 건 조연배우들 뿐이고 '주연배우' 박시연은 거기까지 가지 않는 게 불만이란다.
그럼 뭔가. 조단역배우들만 노출한다는 게 걸리는 건가, 아니면 하층계급 역할을 하는 배우만 노출을 하는 것이 걸리는 건가. 어느 쪽이건 반박의 예가 너무 많다. 전도연 한 명만 가지고도 가능하다. 전도연은 칸 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을 받은 일급 스타지만 노출 연기의 경력이 만만치 않다. 그리고 < 스캔들__조선남녀상열지사 > 에서 전도연이 연기한 숙부인 정씨는 당연히 당시 계급 사회의 꼭대기에 있는 사람이다. 그 외에도 반박의 예는 무궁무진하다.
물론 주연 단역을 가리지 않고 공평하게 벗기는 영화가 더 공정하다고 생각하는 것도 가능하긴 하다. 하지만 다시 한 번 생각해볼까? 이미 우린 그 시대를 거쳐 왔다. 7,80년대가 바로 그런 때였다. 당시는 영화에 출연하는 모든 여자배우들이 괴상한 신음소리를 질러대는 노출 연기를 해야 했고, 홍보를 위해 모두가 < 썬데이 서울 > 에 나가 비키니 사진을 찍어야 했다.
지금 한국 여자배우들은 그러지 않는다. 이게 무슨 뜻일까? 한 마디로 노동환경이 더 좋아졌다는 말이다. 여자배우들이 노출을 팔지 않아도 영화배우 경력을 이어갈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된 것이다. 이 상황에서 노출 연기는 선택이 된다. 물론 그 선택을 이용하는 사람들이 조단역일 경우는 늘어난다. 하지만 그것까지 이상하다고 할 수 있을까? 연예계는 단 한 번도 모두에게 평등한 곳이 아니었으며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슬슬 우리나라에서 '노출연기'에 대한 개념이 얼마나 괴상하게 일그러져 있는지 생각해볼 때가 되었다. 위의 주장들이 기준으로 삼고 있는 것이 모두 '가슴'이라는 것도 그리 정상적이지 않다. 안다. 우린 가슴부위 노출이 터부인 사회를 살고 있다. 하지만 오로지 가슴을 척도라고 생각하는 것은 괴상하다. 미안하지만 당신들은 그냥 여자 가슴을 보고 싶은 거다.
노출의 정도가 프로페셔널리즘의 유일한 척도라고 생각하는 괴상한 사고방식의 흔적도 있다. 어떨 때는 정말 그럴 수도 있다. 하지만 이미 몇 십 년 전부터 농담으로 굳어진 "작품을 위해서라면 벗겠어요" 운운의 소리가 정말 진지한 프로페셔널리즘의 표현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설마 없겠지? 노출은 영화를 만들기 위한 하나의 방법일 뿐이고, 얼마든지 다른 길은 가능하다.
예를 들어 요새 홍상수는 노출신을 찍지 않는데, 그렇다고 그의 요새 영화가 노출신이 나오는 옛날 영화들보다 떨어지나? < 내 아내의 모든 것 > 에서 임수정이 엉덩이 노출(기껏해야 1,2초 정도 나오고 지나간다)에 대역을 썼다고 물고 늘어지는 사람들을 봤는데, 그럼 그 사람들은 지금까지 영화에 나오는 배우 뒷모습이 모두 진짜였는지 알았나보다?
< 돈의 맛 > 에 나오는 노출신을 보고 할 수 있는 이야기는 많다. 연예계의 성적 착취에 대해 이야기할 수도 있고, 한국 사회의 성차별에 대해서도 이야기할 수 있고, 한국에서 동남아시아 여성의 이미지가 어떻게 활용되는지 이야기할 수 있으며, 맘만 먹으면 임상수가 얼마나 변태인지에 대해서도 이야기할 수 있다. 이들은 모두 의미 있는 토론으로 이어질 수 있을 것이다.
노출의 불평등도 여기에 해당될 수 있을까? 못할 건 뭔가. 다른 주제들보다 작아 보인다고 해서 토론의 대상이 되지 말라는 법은 없다. 하지만 그래도 이것이 진지한 논의보다는 김효진과 박시연이 가슴을 보여주지 않은 것에 대한 단순한 분노의 반영으로 보이는 게 나뿐일까? 왜 나에겐 이런 주장들이 "쟤들은 가슴을 보여줬는데, 너네는 안 보여줘!"로 읽히는 걸까? 왜 앞에서 가슴을 드러내는 여자 연기자들보다 그들에게 '노출의 평등성'을 강요하는 남성 시선이 더 잘 보이는 걸까?
칼럼니스트 듀나 djuna01@empas.com
[사진=영화 < 돈의 맛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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